Mark Twain Boyhood Home & Museum,
Mississippi River,
Hannibal, MO
“지금부터 20년 후, 당신은 했던 일보다 하지 않았던 일 때문에 더 실망할 것이다. 그러니 밧줄을 풀고, 안전한 항구를 떠나라. 무역풍을 타고 항해하라. 탐험하고, 꿈꾸고, 발견하라.”
- 마크 트웨인
어디선가 날아온 꽃향기로 설레었다. 쭉 뻗은 도로 옆으로 서있는 상점들은 가지런히 빗어 넘긴 머리카락처럼 단정했다. 첫 데이트를 하는 듯한 마음을 안고 달려왔다. 마크 트웨인의 숨결이 어딘가 남아 있지 않을까 해서. 코로나 팬더믹은 길 위에 관광객을 지워버렸고, 한낮에도 차분한 아침 같은 정적이 내려앉아 있었다. 미지의 세계를 향한 기대는 푸른 날갯짓이 되어 날아다녔다.
도시 건립 200주년인 2019년에 찍힌 기념 스탬프가 바닥에 여전히 선명했다. 마을 영웅들은 저마다의 환한 미소를 가로등 배너에 담아 휘날리고 있었다. 역사를 다정히 품고 있는 마을은 봄볕처럼 부드럽고 포근했다. 파란 하늘은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깊었고, 구름은 맘껏 춤추는 날이었다. 초록빛 잔디 사이로 걸으며 우리의 영혼도 갓 피어난 새싹처럼 파릇해졌다.
싱그러운 나무에 둘러싸인 톰 소여와 허클베리 핀의 동상을 만났다. 톰의 심술궂은 장난과 그 책을 읽고 있는 나의 어린 시절이, 무의식 속에 잠들어 있다가 타임머신을 타고 현재의 인지세계로 훅 들어왔다. 톰의 얼굴과 그의 이름을 떠올리자마자 0.000001초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오래된 기억이란 언제든지 이렇게 나를 만날 준비가 되어 있었단 말인가. 어제 일처럼 생생하지만, 그 사이 나는 얼마나 많은 밥그릇을 비워냈는지 셀 수 없었다. 기억이 아니라 나의 시간이 초고속 열차를 타고 지나간 것만 같았다.
1876년부터 줄곧 책 속에서 살아 있는 듯 내 앞에 서 있는 톰과 허크에게 인사를 건넸다. 마치 티브이에서 보던 영화배우를 실제로 만난 듯 기분이 묘해졌다. 드넓은 태평양을 건너 딸아이의 손을 잡고 여기까지 올 줄은, 내가 이들의 이야기를 읽던 꼬마 시절에는 상상도 못 했었다. 이 아이들이 열광해 마지않았던 모험처럼, 인생이라는 것 역시 흥미롭지 않은가.
잡화점 가게에 들렀다. 온 동네 사람들이 여기 다 모여 있었다. 다양한 기념품과 사탕 같은 간식거리를 구경했다. 줄을 서서 무료로 받은 소프트 아이스크림은 그렇게나 달콤했다. 우리는 딸아이 얼굴을 다 가릴 만큼 커다란 도넛을 세 개 샀다. 가게를 나오며 이미 배부른 듯 마음이 가득 찼다.
길을 걷다가 어느 여인과 사진을 찍었다. 파란 바탕에 빨간 땡땡이 드레스를 입고 노란 안전모를 쓰고 있었다. 두 팔을 벌리고 우리를 환영하는 듯한 포즈였다. 파란 눈동자와 빨간 립스틱이 드레스와 잘 어울렸다. 그녀는 나의 딸보다 조금 작은, 보도블록 위의 소화전이었다. 펜스에 페인트칠하는 노동을 특별한 경험으로 바꿔버린 톰처럼, 잔잔히 위트가 흐르는 이 마을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얀색 펜스가 햇빛을 받아 눈부셨다. 마크 트웨인이 4살 때부터 살았던 집은 박물관이 되었다. 소설 속 베키와 허클베리의 모델이 된, 마크 트웨인의 실제 친구들의 집도 여전히 골목길 따라 서 있었다. 마을 옆 미시시피강이 예나 다름없이 흐르듯이, 시간이 멈춘 이 공간도 어린 마크 트웨인과 친구들이 문을 열고 장난스럽게 뛰어나올 것 같았다.
19세기에는 배가 강을 따라 이동할 때 계속 줄을 던지며 수심을 측정했다. 물살이 세고, 퇴적물이 많아서 수심이 자주 변하는 미시시피강에서 배를 안전하게 운행하기 위해 필수적이었다. 수심을 소리로 외쳐 선장에게 알렸는데, 한 길(1.8m) 일 때 “By the mark, one!”, 두 길(3.6m) 일 때 “Mark Twain!”이라고 외쳤다. 두 길이면 배가 안전하게 지나갈 수 있는 깊이라는 뜻이었다.
새뮤얼 랭혼 클레멘스(Samuel Langhorne Clemens)는 여러 필명을 썼지만 마크 트웨인으로 가장 유명해졌다. 증기선에서 수로 안내원(pilot)이었던 그에게 “Mark Twain!”이라는 외침은 배를 안전하게 조종하는 중요한 신호였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뿌리인 미시시피강을 떠올리며 마치 배를 타고 항해하듯 모험의 세계로 독자들을 안내했을까.
마크 트웨인이 어릴 적 뛰어놀던 마을을 우리 가족은 두 번 찾아왔다. 처음에는 설레는 마음으로 미국 생활을 막 시작했을 때, 두 번째는 아쉬움을 안고 한국으로 돌아가기 직전에. 코로나 때문에 오랫동안 문을 닫았던 박물관을 보기 위해 다시 왔지만, 실은 그게 아니었다. 이 광막한 바다 같은 미시시피강이 우리를 다시 부른 것만 같았다. 너비와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거대한 강이 쉼 없이 흐르면서도, 새벽 공기처럼 고요했다.
수많은 증기선이 드나들던 강을 곁에 두고 선원을 꿈꿔왔던 마크 트웨인이었다. 지금 이 마을의 아이들은, 저 멀리 파란 하늘과 이어지는 강물을 보면서 어떤 세계를 꿈꿀까 궁금해졌다. 자유로운 바람 냄새를 맡고 강을 따라 펼쳐질 모험을 그리고 있을까. 아니면, 열 길 물속과 달리 알기 어려운 한 길 사람 속을 들여다보는, 마크 트웨인 같은 작가를 꿈꾸고 있을지도.
어린 마크 트웨인에게 미시시피강이 있었듯, 어린 나에게는 팝송이 있었다. 영어를 발음할 때 한글과 다르게 소리 나는 게 신기했다. 나의 생각을 다르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게 오묘했다. 영어 팝송의 세계는 미시시피강처럼 거대했고, 언제든지 그 강물 따라 흘러가고 싶게 만들었다. 다른 언어와 문화를 지닌, 내가 미처 닿지 못했던 세계 어딘가가 언제나 궁금했다.
나의 오래된 열망은 시간이라는 강물을 타고 미국 미주리로 흘러왔다. 기대와 설렘이라는 배를 탔지만, 갑자기 찾아온 코로나 팬더믹처럼 모든 순간이 예측할 수 없었다. 나란 사람의 고지식한 한계는 끊임없는 실험대상이었고, 나의 상식이라는 얇은 벽은 쉽게 깨지기를 반복했다. 내게 깊이 박혀있던 갈증의 실체를 마침내 마주하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지도에 점을 찍어가며 매번 새로운 시선을 만났다. 계획에서 어긋나는 여정은 그 만의 이유가 있었고, 예상치 못한 곳에서 꽃봉오리처럼 숨겨진 자연이 피어났다. 재미를 추구하는 딸아이의 열정은 태양보다 더 뜨거웠고, 현실적인 남편에게도 작은 풀잎에게 애정을 건네는 뜻밖의 감수성이 있었다.
자연의 눈부심은 전지전능한 신과 같았고, 그 속에서 우리는 우주에서 보는 지구처럼 작고 푸른 점 하나였다. 사고의 폭과 감동의 깊이는 무한대로 늘어갔고, 물리적인 내 몸을 벗어나 하늘을 떠다니는 구름처럼 자유로운 영혼을 느꼈다.
이곳에서 처음 본 미시시피강은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벅찼었다. 하지만 두 번째 왔을 때, 마크 트웨인의 자유와 진실을 향한 모험이 나의 이야기와 맞닿아 흐르고 있음을 비로소 보았다. 새로운 세계로의 항해가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에 대해 생각했다. 미국을 오기 전, 한국에서 삶을 시작하기 전, 내가 이 우주에 온 의미에 대해서.
강은 똑같아 보이지만 같은 물이 아니듯이, 다시 이곳을 찾은 나는 그전과 달라져 있었다.
저 높은 곳에 마크 트웨인 동상이 서 있다. 파란 하늘 아래, 그를 둘러싼 나무들이 우아하다. 먼 곳을 응시하는 눈길을 따라 나도 바라본다. 그의 시선 끝자락에 광활한 미시시피강이 흐르고 있다. 세상을 향한 끝없는 그의 탐험은 여전히 강물 따라 흘러간다.
“인생에는 가장 중요한 날이 두 번 있다.
하나는 네가 태어난 날이고,
다른 하나는 네가 왜 태어났는지 깨닫는 날이다.”
- 마크 트웨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