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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음의 바다 Dec 06. 2024

낭만에 대하여

Echo Bluff State Park,
Eminence, MO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딱히 내가 뭘 열심히 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가만히 서 있는 쪽이었다. 분주히 바쁜 사람은, 33도의 뙤약볕 아래 새로운 놀이터를 탐험하는 나의 딸이었다.


8월 대낮에 심신단련하는 그녀를 뜨거운 경외심으로 지켜보았다. 이글거리는 태양은 서서히 나를 무아지경에 빠져들게 했다. 그녀보다 30년은 더 낡은 몸으로 이 날씨에 서 있는 내가, 더 엄청난 수양을 하는 게 분명했다. 1분이 1시간처럼 더디게 흘러가는 고난의 시간이었다.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마침내 딸아이가 놀이터에서 내려와 땅에 발을 내디뎠을 때, 남편과 나는 그녀를 데리고 날아가듯 개울로 이동했다. 숙소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있는 계곡까지 가는 데 우리 가족의 땀 한 바가지가 소요되었다. 남아있는 힘을 다해 쏜살같이 달려가니 얼굴의 땀방울도 공중으로 힘차게 날아갔다.








아무도 없었다. 오직 개울물 흘러가는 소리만이 절벽의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따땃해진 몸을 내던지다시피 물속으로 들어갔다. 마치 피식 소리와 함께 불이 꺼지듯, 보이지 않는 연기가 몸에서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흐흐흐 울음 같은 웃음이 입에서 새어 나왔다.


내 몸속에 늘어져있던 세포들이 냉동실의 각얼음처럼 반듯하게 정신이 들었다. 그제야 주변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연한 파란색 하늘에 하얀 구름이 얇게 펼쳐져 있고, 푸른 나무들 사이로 거대한 절벽이 정면에 우뚝 서있었다. 밝고 어두운 색이 섞인 바위의 거친 표면에는 세로줄이 선명했다. 절벽은 직선과 곡선이 조화로웠다. 에코 블러프 주립공원 이름의 주인공이었다.


맑은 개울가는 바닥에 깔려있는 자갈이 훤히 보였다. 투명한 물은 안으로 갈수록 깊어져서, 절벽 바로 아래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짙은 녹색으로 넘실거렸다. 물은 한없이 부드럽고 차분해 보였지만, 흘러가는 힘 속에는 그 무엇에도 꺾이지 않을 강력함이 있었다.





첫 번째 가족이 왔다. 중년 커플은 의자를 가지고 와서 여자는 앉고 남자는 물속을 걸었다. 서로를 보며 대화하는 모습이 멀리서도 다정함이 느껴졌다. 주변 탐색을 마친 우리 가족은 얕은 곳에서 본격적으로 물놀이를 시작했다. 월마트에서 사 온 대형 타이어 디자인의 튜브와 아이용 유니콘 그림의 튜브를 소중히 껴안은 채. 모든 게 완벽하다는 향기가 어디선가 났다.


절벽 앞 개울, 싱킹 크릭(Sinking Creek)은 절벽을 마주 보았을 때 왼쪽방향으로 흘렀다. 남편이 딸아이에게 먼저 시범을 보여주었다. 오른쪽 상류 적당한 곳에서 출발하자 아주 쉽게 떠내려 갔다. 가만히 떠있다 보면 커런트 강(Current River)까지 흘러갈 것 같았다. 아이는 감탄하면서도 아빠가 정말 떠내려가는지 걱정을 했다. 그는 팔을 휘저어 물의 흐름을 깨트리고 나왔다. 돌아오는 그의 얼굴에는 10대 소년에게 볼 수 있을 법한 환한 미소가 가득했다.


두 번째 가족이 왔다. 엄마와 어린 아들 두 명이었다. 그들은 우리보다 조금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 자리 잡았다. 엄마가 개울바닥에 앉으니 그녀의 어깨 아래쯤에서 물이 찰랑거렸다. 큰 아이는 수영하며 놀고 팔에 튜브를 낀 더 어린아이는 엄마 옆에서 첨벙 댔다. 이제 남편과 딸아이는 각자의 튜브를 탄 채, 남편이 딸의 튜브를 잡고서 같이 떠내려갔다. 남편은 얼굴로 웃었고 딸은 소리로 웃었다. 청명한 자연 속에서 우리 모두는 순수한 어린아이였다.








미국에 온 지 한 달여 만에 모든 걸 뒤바꾼 코로나19 팬데믹이었다. 미용실을 갈 수 없는 상황에서 남편의 머리카락은 잘도 자랐다. 나는 기르면 그만이었지만 그는 상황이 달랐다. 길어질수록 지켜보는 모두를 힘들게 하는 마법의 머리카락이었다. 더부룩하다 못해 버섯갓처럼 부풀기 시작하자 대책이 시급해졌다. 미용도구 세트와 커트에 필요한 기타 용품을 주섬주섬 구매하기에 이르렀다.


남편은 수년간 고수해 온 투블록을 요구했다. 투블록은 윗앞머리를 길게 하고 옆뒷머리를 짧게 미는 스타일인데, 나는 영상을 몇 개 찾아 대충 보았다. 딸의 머리카락을 잘라봐서 쉽게 시작했다. 윗머리를 집게핀으로 집어 올리고 시원하게 밀었다. 그다음 윗앞머리를 내려 가지런히 잘랐다. 버섯갓은 밤송이가 되었고 그는 만족해했다. 고객은 까다롭지 않았다.


세 번째 이발의 날, 더워진 여름 날씨에 나의 고객은 더 짧게 치기를 요구했다. 처음에 9-6mm로 시작했는데 이젠 1mm도 괜찮다고 했다.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프로 헤어 디자이너였으면 고객의 두상과 스타일 등을 고려하여 뜯어말렸을 텐데, 나는 원하는 대로 해주었다. 시원해진 머리에 고객은 아주 흡족해했다. 나도 잘 자른 줄 알았다. 이것이 3일 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오늘 물가에 쉬고 있는 남편의 뒷모습을 우연히 찍었는데, 자연의 눈부신 조명을 받아 더 잘 보였다. 그의 윗머리가 완벽한 바가지였음을. 뒤통수는 윗머리와 아랫머리를 자연스레 연결해야 된다는데, 대충 시작한 내가 알 턱이 없었다. 길게 밀 때는 몰랐는데 짧게 치고 나니 뚜껑머리가 여실히 드러났다. 본인 뒤통수의 현주소를 알게 된 남편은 충격의 도가니에 빠졌고, 나의 웃음은 불꽃놀이처럼 터져버렸다.


내가 남편의 머리카락을 잘라 준다고 하자, 미국인 친구는 너무나 로맨틱하다고 버터 녹아내리는 듯한 소리로 말했었다. 나는 의아해했다. 초보인 나에게 커트의 시간은 도무지 감상적인 분위기가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었기에. 한 시간 동안 지구가 태양 주변을 돌듯 앉아있는 그를 맴돌며 이리저리 머리를 매만져도 다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이대로 계속하다간 영구가 될지 모른다는 경고의 느낌이 드는 순간이 가위를 내려놓을 때였다.


나의 고된 노동의 대가가 오늘 빛나는 햇살 아래 바가지 머리를 확인하고 터져 나온 웃음보인가 싶었다. 이렇게 즐거울 수 있다면 이런 것도 결이 다른 낭만이 될 수 있을까. 나는 지금 남편의 머리가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럽게 느껴지기 때문이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나에게 고마워했던 남편의 마음을 떠올려 보니, 우리는 잠깐 로맨틱 드라마의 주인공이 된 것도 같았다. 지금도 그새 까먹고 딸과 놀기에 바쁜 남편이 저기 있었다.


절벽의 거친 벽면이 남편의 짧게 친 머리와 겹쳐 보였다. 1mm로 밀어버려 까슬해진 뒷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어졌다. 절벽 위 나무의 무성한 나뭇잎처럼 그의 머리카락은 금방 자랄 것이다. 다음 커트 날엔 영상을 제대로 보고 뒤통수 뚜껑 연결을 잘해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사랑을 담아서 좀 더 로맨틱하게 말이다.








몸이 금방 차가워진 나는 의자에 앉아 발만 담근 채, 이제는 따스하게 느껴지는 햇빛을 받으며 남편과 딸아이의 흘러가는 모습을 몇 번이고 찍어주었다. 나에게 연신 손을 흔들어주는 그들의 신난 표정과 웃음이 한아름의 꽃다발처럼 향기로웠다. 그러다 지친 남편은 내 옆에 와서 자갈바닥에 대자로 드러누웠고, 허기진 아이는 간식을 냠냠 맛있게도 먹었다. 아빠와 딸은 그렇게 놀다가 쉬다가를 반복했다.


고요한 절벽 아래 세 가족이 있었다. 첫 번째 가족은 오붓하게 휴식을 하고, 두 번째 가족은 아이들이 엄마 곁에서 물장난을 쳤다. 우리 가족은 개울물 따라 둥실둥실 떠다녔다. 저마다의 파장으로 만들어낸 사랑이 메아리가 되어 공원 안에 울려 퍼졌다. 오후 내내 뜨거웠던 태양의 열기 같이 은근한 여운이 남았다.



하늘에 구름 한 점 흘러가고
우리의 낭만도 물 따라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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