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zark National Scenic Riverways -
Alley Spring & Mill,
Eminence, MO
내비게이션이 안내를 종료했다. 깊은 숲 속에 뱀이 춤을 추는 듯한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 속이 울렁거릴 즈음이었다. 우리가 탄 자동차의 엔진이 멈추자 한낮의 텅 빈 주차장은 다시금 고요해졌다. 7월의 작렬하는 태양이 온몸에 와닿았다. 초록으로 넘실대는 잔디 사이로 정갈하게 놓인, 가늘고 하얀 길을 따라 우리는 걷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세이렌의 노래 같은 아름다움 파동이 물결치듯 울려 퍼진 건 그때였다.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앨리 샘물(Alley Spring)이 폭포수처럼 흐르고 있었다. 청아한 투명함이 쏟아져 나왔다. 얕은 물가는 바닥에 작은 자갈 하나까지 고스란히 다 내보이고, 샘물이 깊어질수록 영롱한 청록빛으로 반짝거렸다. 그 옆으로 보이는, 나무로 지은 3층짜리 앨리 제분소(Alley Mill)는 모두부처럼 반듯했고 빈틈없는 빨간색이 잘 어울렸다. 벽면으로 줄을 지어 가지런한 창문에는 연두색 나뭇잎이 비쳐 들었다.
새소리가 상큼하게 가득 찬 주변을 둘러보았다. 온통 눈부시게 푸르른 초록 숲이 지금 이곳에 막 도착한 우리마저 동그랗게 감싸는 듯했다. 에메랄드 샘은 시간을 잊은 채 다정히 흐르고 있었고, 빨갛고 오래된 방앗간은 애틋한 부부사이처럼 백 년이 넘도록 샘물 옆에 고즈넉이 자리 잡고 있었다.
우리는 큼직한 나무 그늘 아래에 앉았다. 커다란 숨이 저절로 나왔다. 숨통이 트였다. 나의 딸은 물가에서 손을 넣고 찰랑거렸다. 우리는 시계 보는 법을 잊은 사람처럼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몰랐다.
이윽고, 샘물을 포근히 둘러싸고 있는 트레일을 걸었다. 폭신한 흙길이 정다웠다. 어제 내린 비로 젖어든 땅은 눈부신 햇살에 빨래가 마르듯 보송해지고 있었다. 성벽처럼 샘을 에워싸고 서있는 절벽에는 나무들이 빼곡히 자라나고 무성한 초록잎으로 가득 찼다. 햇빛은 뜨겁고 습기가 끈적하게 올라왔지만, 싱싱한 나무들이 내뿜는 맑은 공기로 차츰 몸과 마음이 청량해졌다.
나는 최면술에 걸린 사람처럼 샘물을 계속 보았다. 책이나 휴대폰 화면이 아니라 지금 직접 보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한국에서 살면서 물의 색깔로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는 색이었다. 이 오묘한 빛깔은 백운암 기반석에서 용해되어 나온 미네랄 함량 때문이라고 했다.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물은 바닥에서 우러나온 특유의 색을 그대로 비추고 있었다.
어릴 적 셀 수 없이 많은 사소한 문제로 엄마와 다투고 나면, 나는 화해가 항상 어려웠다. 부엌에서 바쁜 엄마한테 다시 쭈뼛쭈뼛 다가가면, 엄마는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웃으며 다정히 날 대해주셨다. 그러면 나는 마음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며, 어떤 일도 없었다는 듯 엄마와 다시 수다를 떨었다. 나에겐 다툼이었고 철없는 미안함의 후회였지만, 엄마에겐 포옹하듯 보듬어 줄 수 있는 소중한 딸의 작은 투정이었는지도 몰랐다. 추운 겨울의 부드러운 담요처럼 엄마는 늘 그렇게 포근했고, 나는 언제나 받아들여지는 존재였다. 엄마의 커다란 사랑의 끝이 어디인지 도무지 알지 못했다.
내가 존경하는 작가 웨인 다이어(Wayne Dyer)는 <인생의 태도>에서 말했다. 오렌지를 짜면 오렌지즙이 나오듯 그저 우리 안에 있는 것이 나오는 것이라고. 나의 엄마는 그런 사람이었다. 짜내고 짜내도 사랑이 나왔다. 누가 짜든 언제 짜든 어떻게 짜든, 아낌없고 끝이 없고 진하고 뜨거운 사랑. 앨리 샘물은 엄마의 사랑처럼 저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빛깔을 냈다. 오렌지즙처럼 그저 샘 속에 있는 것이었다. 그뿐이었다. 엄마에겐, 그리고 샘물에겐 그게 당연한 것이었다.
샘물은 둥그렇게 모였다가 잭스 포크 강을 향해 흘러내려갔다. 굉음을 내며 쏟아지는 물은 마라톤 대회에서 막 출발선을 떠난 선수들 같이 패기가 넘쳤다. 연중 13도 정도를 유지하며 질주하듯 흘러가는 샘물 앞에서 내 얼굴의 찐득한 땀방울은 날아가고 내 머리카락도 흔들렸다.
딸아이와 남편은 작은 폭포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그들 뒤에 서서 나도 물의 흐름을 마냥 지켜보았다. 순식간에 무념무상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앨리 샘에서 매일 8,100만 갤런의 물이 흘러나가고, 내 머릿속에서 매일 8만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가는데. 샘이 물을 끊임없이 내보내듯 내 머릿속 복잡하게 얽힌 생각들도 그렇게 스쳐 흘러가는 듯했다. 좋든 싫든 기쁘든 나쁘든 무엇이든지, 물이 흐르듯이.
가을하늘이 한없이 높은 11월이었다. 우리는 물빛이 좀 더 그윽해진 이곳을 다시 찾아왔다. 나무들은 어느새 겨울 준비를 하며 잎을 떨구고 있었고, 샘물 주변에 가득 쌓인 낙엽은 우리의 발걸음마다 바스락거렸다. 냉기를 머금은 한줄기 바람에 우리는 외투를 더 여미며 서 있었다. 차가운 물속에 손을 담글 용기는 내지 못한 채. 샘이 흘러나오는 소리는 여전히 차갑고 씩씩했다. 추위로 잔뜩 웅크린 우리와 달리, 여름이나 가을이나 변함없는 그의 모습에 웃음이 났다.
가을의 물빛은 하늘만큼 깊어 보였다. 심연에서 우러나온 빛깔과, 마주 보고 있는 하늘을 거울처럼 비쳐주는 빛깔이 만나, 겹겹이 짙은 푸른색이었다. 언제나 나를 보고 미소 짓는 엄마가 생각났다. 수면 위에 구름도 잔잔히 미소 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