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저귀는 새소리를 들으며 키보드를 타닥타닥
낯선 곳에서의 아침이 밝았다. 어제저녁, 남편의 동료들과의 1박 2일 모임을 위해 우리 가족은 양평에 왔다. 순전히 남편을 위해서였다. 내가 일로 바쁜 탓에 남편이 육아 공백을 메우느라 애쓰고 있는데, 이런 시간이 그에게 휴식이 될까 싶었다. 혹시 민형이에게도 추억이 된다면 더욱 좋고.
아이가 전날 어설프게 낮잠을 많이 자 버려서, 밤잠이 늦어지겠구나 생각은 했다. 그런데 새벽 1시 20분에야 잠들 줄이야. 양평 숙소에 온 저녁 7시 반부터 내내 육아만 한 셈이라, 나는 집에서의 주말보다 더 고단했다. 주말 사이 밀린 일도 해야 하고, 글도 써야 하는데. 그리고 아이를 챙기느라 밥도 제대로 못 먹어서 배도 고픈데. 자정을 넘긴 시간, 내 복잡한 마음을 모르는 듯 아이는 동물 피규어를 만지작거리며 조잘거렸고, 본인의 기력을 다 소진하고 나서야 잠이 들었다. 어른들의 노랫소리와 힘찬 대화로 시끄러운 환경 속에서도 자기가 잘 준비가 되니 아랑곳 않고 잠드는 기특하고 야속한 꼬맹이.
그러다 새벽 6시, 아이는 잠자리가 불편한지 40분을 뒤척이며 울었다. 가족단위로 방을 나눠 쓰고 있지만, 문 하나로만 나뉘어 있기 때문에 분명 누군가는 자는 데 방해를 받을 텐데. 그러나 그 걱정을 위로한 건 다름 아닌 남편. 빽빽 울어대는 아이 옆에서도 곤히 자는 남편을 보고, 다른 사람들도 이럴 수 있겠다 싶어 조금이나마 걱정을 덜었다.
지금은 아침 8시. 새벽에 깬 아이를 잘 재우고, 내 이부자리와 주변을 정리하고 간단히 양치만 한 뒤 글을 읽고, 쓰고 있다. 우리 가족을 제외하고 이곳 숙소에 아이 포함 10명이 함께 머무르고 있는데, 나는 이곳에서 별다른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어젯밤 남편의 개인 시간을 위해 내가 아이를 보느라 동떨어져 있었던 것도 그 이유지만, 아직은 무슨 이야기를 나눠야 할지 모르겠어서.
요즘 내 머릿속은 온통 지금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를 잘 마치는 것과 부모님에 대한 생각뿐이다. 삶과 죽음 등에 대한 가치관 재정립 욕구도 물론 포함이다. 주변 사람들은 내심 나를 걱정하기도 하고, 위로의 말을 건네기도 하지만 그들과 모든 이야기를 나눌 순 없다. 그래도 시간이 될 때면 머릿속의 이야기의 대부분을 남편이 잘 들어주니까 해소가 되고 있는 것 같기도.
이런 이야기를 누구와 나눌 수 있을까 싶어서 책을 읽는다. 바쁜 와중 호프 에델먼의 <슬픔 이후의 슬픔>, 폴 칼라나티의 <숨결이 바람 될 때>를 읽고 있고, 그와 별개로 <뒤라스의 말>을 읽고 있다. 그리고 내 손길을 기다리는 새 책들이 책장에 빼곡하다는 것도 내가 이번 겨울을 기다리는 이유.
1994년에 출간된 호프 에델먼의 <Motherless Daughters>도 읽어야 할 책 중의 하나인데, 한국어판이 출간되던 2008년 이 책을 읽었더라면 어땠을까? (아직 읽기 전이라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는 없지만.)
그런데 아마 그럴 일은 없었겠지. 당시 스무 살이던 나는 상실감을 나만의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있었고, 그때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하지 않았다. 대화를 나누고 싶단 생각도 없었기 때문에, 엄마 잃은 슬픔을 달래려 책과 소통할 일은 더욱 없었을 테다.
양평에서의 아침은 여전히 나와의 대화로 시작된다. (대화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사색.) 읽던 책을 챙겨 왔다면 사색이 아니라 정말 대화의 시간을 보냈겠지만, 나는 책을 읽는 것 이상으로 내 마음과 머릿속을 유영하며 글로 정리해 나가는 사색의 시간이 좋다.
그러나 올해를 잘 마무리하고 내년 봄 어느 시기에는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부모와 사별한 사람들, 혹은 삶과 죽음을 능동적으로 바라보고자 하는 사람들과 말이다. 아마 그런 기회가 생길 리 만무하고, 그것이야말로 능동적으로 기회와 자리를 만들어야겠지.
나는 호프 에델먼처럼 엄마 잃은 딸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각자 상실감을 견디는 방법, 그리고 그를 통해 어떻게 성장하고 변화하는지 담아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매일 일기를 쓰고, 글로 무언가를 남기기를 좋아하시던 엄마를 위해 엄마의 일기와 나의 글을 엮어 모녀의 이름으로 한 권의 책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 그리고 아빠의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수집해 인터뷰집 혹은 시나리오 형태로 엮어 아빠 생전에 의미 있는 선물을 드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느리지만 한 발 한 발 나아가고 있었는데...)
내가 쓰려는 글과 만들려는 책은 엄마와 아빠를 위한 거였다. 그리고 그 기록은 고스란히 나에게 치유와 충만을 줄 것이고, 내 아이에게는 유산이 될 것이기에.
이제는 좀 더 많은 사람, 특정 다수들과 호흡하는 글을 쓰고, 기회를 만들고 싶다. (나와 같은 아픔을 겪은 아이들에게 위안을 주는 동화 원고는 이번 여름에 썼고 내년에는 그것을 책으로 엮을 계획이지만) 좀 더 생생한, 생동감을 가진 대화와 글을 나누는 자리를 마련하려 한다. 나 혼자서 마침표를 찍는 시간이 아닌, 여럿이 방점을 찍어가는 시간과 과정을 겪기 위해서.
양평에서의 아침, 9시가 되어간다. 전주 본가에는 우리의 어릴 적 사진들이 가득하다. 늘 사진을 찍어주시던 엄마 덕분이고, 그것을 잘 보관해 주신 아빠 덕분이다. 나는 기억나지 않는 어린 시절 부모님과의 추억은 오로지 사진을 통해 느낄 수 있다. 우리 아이에게도 어제와 오늘, 양평에서의 시간이 그랬으면. 오늘은 아이가 일어나면 예쁜 사진을 더 많이 찍어줘야지.
"엄마, 이때 저 몇 살이에요?"
"아빠, 여기 계신 분들이 다 아빠 기자 친구들이에요?"
"준이 형은 어릴 때도 잘생겼었다. 건민이 형은 키가 진짜 컸네요? 그리고 저는 무지 귀여웠네요?"
"우와, 엄마 아빠도 진짜 젊었네."
이런 말들을 우리가 나중에 나눌 수 있는 그런 사진들 말이다.
이제 다들 일어나 복도를 누비고 있는데, 우리 남편과 아이는 여전히 꿈나라구나. 그 덕에 나는 글 한 편을 남겼지만, 같은 포즈로 잠든 남편과 아이를 번갈아 바라보자니 웃음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