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요즘
49재의 사재를 지내러 절에 다녀왔다. 장례를 마치고 아빠 집의 9월 달력을 10월로 넘기고 온 게 엊그제 같은데, 10월의 마지막 토요일인 오늘, 달력을 한 장 더 넘기고 왔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아빠가 살아계셨는데, 흘러버린 한 달이라는 시간이 어색하다. 한 달이나 되었나 싶다가, 한 달 밖에 안 되었나 싶다.
지난달 일요일에 떠나셨기에, 토요일마다 절에 가서 재를 드리고 있다. 매주 토요일이라 도로에서 보내는 시간이 평일보다 길지만, 그래도 일정의 제약 없이 인사드리러 갈 수 있어 다행이다. 오늘은 10월 25일 토요일, 9월 25일은 특히 아빠가 우리 집에 와 계셨던 날이다. 한 달 전만 해도 같은 공간에 계셨는데. 같이 호흡하고, 눈을 맞추고, 대화를 나누고, 식사도 같이 하고, 웃기도 하며 서로의 온기를 나눴는데. 그날 밀린 일이 너무 많아서 아빠를 모시고도 키보드만 두드렸던 게 지금껏 마음에 사무치지만, 그래도 한 달 전에 우리가 함께 있었다는 사실이 큰 위안이다. 그날 아빠는 민형이의 재롱에 즐거워하시며 내내 흐뭇한 미소를 보이셨다. 아마 내가 바쁘지 않았더라면 아빠 손을 맘껏 어루만지고, 아빠에게 폭 안기기도 하고, 머리칼이나 얼굴도 쓰다듬고, 사랑의 말을 더 많이 했겠지. 그래도 단둘이 거실 소파에 나란히 앉아 TV도 보고, 며칠 뒤 큰일이 날지는 꿈에도 모른 채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고, 늦은 밤에는 출출할 아빠에게 피자 한쪽과 우유를 내어드렸다.
'이럴 줄 알았다면, 그때 밥 한 끼 제대로 챙겨드릴걸.'
아빠와 함께한 저녁, 돼지고기 김치찜을 배달해서 나눠먹으며 "제대로 못 챙겨드려 죄송해요" 말씀드렸다. 일과 육아를 핑계로 자주 뵙지도, 자주 모시지도 못하는데, 하필 너무 바빠서 어느 근사한 식당에도 못 모셔가고 배달음식으로 끼니를 챙겨드렸던 날. 얼마나 대단한 커리어를 쌓겠다고, 얼마나 대단한 돈을 벌겠다고 나는 아빠와의 하루를 일하는 데에 대부분 허비해 버린 걸까. 그게 내가 아빠께 챙겨드린 마지막 끼니가 될 줄은 정말 몰랐다. 하긴, 이별 앞에 예측되는 일이 있으랴. 엄마가 사고 나던 날, '나는 사춘기 중학생이에요' 티라도 내듯 심드렁한 목소리로 통화하던 게 마지막 통화가 될 줄은 그때도 몰랐으니.
그런데, 3일 뒤 아빠와 헤어지게 될 줄 알았더라면 뭐가 달랐을까 싶어진다. 그럼 난 후회 없는 하루를 보냈을까?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고, 아빠께 따뜻한 피자 한 조각을 내어드리고, 민형이의 귀여운 모습을 보여드리고, 민형이와의 소소한 에피소드, 발달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을까. 아마도 내내 울었겠지. 오히려 웃을 수 없었겠지. 세상을 더 원망했겠지.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되었다며, 내가 아빠 장례 내내 지었던 그 표정을 지었겠지. 입관식 때 했던 그 말들을 내뱉었겠지. 무수한 사랑의 말을, 무수한 감사의 말을 토하면서도 더 말할 수 없어 아쉬웠겠지. 그리고 아빠는 내가 전하는 사랑의 말, 감사의 말에 위안을 얻는 것이 아니라, 슬퍼하는 나를 보며 더 많이 슬퍼하셨겠지. 발걸음이 무거웠겠지. 우리에게 미안했겠지.
이별은 그런 거다. 갑작스럽더라도, 또는 갑작스럽지 않더라도, 다 같은 거다. 어떻든 아쉽고, 어떻든 죄송하고, 어떻든 슬픔이 뼈에 사무치는 그런 것이니까.
소중한 이의 죽음은, 그 존재가 휩쓸고 간 빈자리는 도무지 대체할 수 있는 게 없다. 21년간 나는 엄마의 죽음의 의미를 찾아왔다.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 몇 가지 의미를 발견할 수 있었고, 눈부신 터널의 끝에는 아빠와 동생이 있었다. 그런데 아빠의 죽음은 도무지 의미를 찾을 수가 없다. 앞으로 억겁의 시간을 겪어야겠지만, 어렴풋이 느낀다. 그동안 엄마와 이별한 일의 의미를 찾아왔다면, 앞으로는 아빠와 이별한 일의 의미가 되어야 하겠다고. 우리는 아빠 삶의 의미다. 이 죽음의 의미는 아직 모르겠지만, 존재의 의미는 우리라는 것을.
존재의 의미는 너무나 확실하고 위대하다. 아빠와 함께한 만 36년의 찬란했던 시간들이 그 증거니까. 엄마와의 만 15년이란 세월이 아련한 꿈같았다면, 아빠와의 시간은 지독한 현실이었다. 아빠가 내뿜는 강렬한 생명력 안에서 우리는 씩씩하게 자랄 수 있었다. 치열했고, 행복했던 영화의 시간.
아빠와 36년을 함께했음에 감사하다. 그는 정말이지 멋졌는데. 우리 아빠라 참 좋았는데. 부족한 점마저 매력으로 승화하던 대단한 사람이었는데. 그런 아빠를 겪어낼 수 있어서, 평생을 아주 가까이 두고, 가장 순수한 사랑을 나눌 수 있어서 행복했고 행복하다.
김상욱 물리학자가 어느 방송프로그램에서 했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죽음을 물리학 관점으로 바라보며 한 말인데, 우주의 가장 자연스러운 형태가 죽어있는 것이고, 생명은 예외적인 현상이라고 했다. 그리고, 인간의 몸을 구성하는 것은 원자인데, 원자는 우주의 시작부터 존재했으며 물리학의 보존법칙에 따라 영속한다는 것. 그래서 소멸되지 않고 여러 형태로 재배열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사랑하는 이가 죽더라도, 과학적으로는 이 우주 안에서 함께하고 있는 것이라는 말로 이별한 이들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었다.
얼마 전 영상으로 접한 법상스님은 죽음은 관념일 뿐이라 말씀하신다. 우리는 태어나지도 않고, 사라지지도 않으며 삶과 죽음은 본래 없는 거라고. 존재는 공하며, 내가 아닌 것들이 모여 잠시 유지되는 거라고. 그러니 세상을 생각으로 해석하며 무상한 것에 집착하지 않고, 지금 이 순간 생생한 것에 집중하며 진실에 뛰어드는 삶을 살라고 하셨다. 워낙 어려운 이야기라 아직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 세상'을 살다가 죽으면 '끝'이 난다고 생각하는 건 잘못되었다면서. 나라는 존재 앞에 '지금 이 세상'이 지나가는 거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게 이상하게 납득이 갔고 위안이 되었다. 죽은 게 아니라, 한 세상이 지나간 거라는 새로운 시각을 얻는다.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을 다시 점검하고, 죽음관을 다시 세우는 앞으로의 과정 안에서 나는 더 많은 이야기를 접하게 될 테지만. 김상욱 물리학자와 법상스님의 이야기로 새로운 관념에 발을 들이고 있다. 지금 나는 지금의 인물로, 이 세상을 경험하는 중이란 생각이 들면서 말이다. 그러니 더욱 뜻깊고 감사해졌다. 슬픔보다는 안도의 마음이 들었다. 우리 엄마라는 사람, 우리 아빠라는 사람을 만나고 경험해서 다행이라는 마음. 그리고 내 곁을 지키는 하나뿐인 동생, 소중한 남편과 내 아이. 그리고 또 다른 가족들, 친구들까지. 잠시 이 세상을 지나가는 동안 이들과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더없는 축복이라는 마음이 스쳤다.
잘 살아야겠다. 미련 없이.
이 세상을 지나는 것은 아마 한 번 뿐일 테니까. 그 이후의 세상은 지금 내 모습으로서 숨이 다하는 날까지 결코 알 수 없을 테니, 지나는 이 세상을 가뿐한 마음으로, 귀한 자세로 살아가야지. 그럴 수 있을 거란 자신감, 믿음이 피어오른다. 이 세상 속의 지금 내 존재에게 감사해진다.
내게 한 폭의 그림 같던 사람, 엄마.
내게 한 편의 영화 속 주인공 같던 사람, 아빠.
먼 훗날 나는 한 권의 시집 같던 사람으로 남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