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우리 아빠 06화

순환, 영생, ... 내가 가야할 길.

아스파라거스가 내게 알려주는 것들

by 풀 그리고 숲

식물을 좋아하지만, 여러 개를 가꿀 여력이 안 되어 몇 가지 식물만을 기르고 있다. 꽤 오래 우리 집에서 자라고 있는 아스파라거스 메이리라는 식물의 화분이 있는데 마치 여우꼬리처럼 풍성하고 길게 뻗어 자라는 것이 특징이다. 메이리는 여우꼬리 같은 굵은 줄기가 여러 개 나는데, 어느 날 문득 바라보면 자구(모체, 즉 모구 옆에 새롭게 자라나는 새싹)가 솟아 있어 나를 놀라게 한다. 자구는 빠른 속도로 길게 올라오고, 또 풍성해진다. 새로운 줄기들이 메이리의 모양을 바꿔나갈 때, 기존의 자리를 지키던 줄기들은 점점 시들어간다. 초록의 줄기가 옅은 갈색으로 변해가면, 남은 싱그러운 줄기와 새로 돋은 자구에게 영양분이 가도록 기존의 줄기를 잘라준다. 그렇게 메이리는 주기적으로 모양을 바꾸어내며 초록을 유지하고 있다.


(며칠 전 그것을 바라보며, 남편에게) "오빠, 메이리는 진짜 안 죽는다? 저거 봐. 줄기가 시들어가길래 잘못되었나 싶었는데, 또 자구가 올라오잖아. 이럴 때 시든 줄기를 잘라내면 또 한참 푸르게 유지돼."


"그러게, 새로 자랐네. 근데 그게 영생 같아. 사람도 마찬가지야. 장인어른이 가셨지만, 장인어른의 유전자가 담긴 민형이가 또 그 자리를 채우듯이."


우리 아이 민형이는, 외할아버지의 눈웃음을 똑 닮았다. 아빠가 떠나신 지도 어언 한 달이 되어가는데, 누군가는 나에게 '아빠가 보고 싶을 때 민형이를 보면 위로가 되지 않겠냐'는 말을 건네기도 했다. 지금은 금요일 새벽 5시를 지나고 있다. 이달 말까지는 특별히 업무가 많아 매일 바쁜데, 사람이 일정 시간 일정 주기의 일을 반복하다 보면 잠을 줄이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는 걸 깨닫는다. 어젯밤 아이를 재우면서 덩달아 어찌나 힘들고 졸리던지, 밤을 새워 일하기는커녕 꾸벅꾸벅 졸다가 어느덧 4시 반을 넘겼다.


프리랜서라 집에서 일하는 나는, 보통 지금처럼 가족들이 모두 잠든 시간이나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서 조용한 시간에 집중해서 작업한다. 일이 많거나 고도의 집중이 필요할 때는 그 어떤 음악도 소음에 지나지 않기에, 대체로 고요 속에서 일을 하게 되는데, 그때 아빠 생각이 참 많이 난다. (엄마 생각도 당연하고.) 그러다 보면 타이핑을 하는 건지 눈물을 흘리는 건지 모르게 두 가지가 동시에 이뤄질 때도 많고, 혼잣말을 하거나 시선을 허공에 둘 때가 많은 요즘이다.


지금도 얼른 몰입해서 밀린 작업을 해야 하는데, 도무지 마음이 잡히지 않아 잠깐 머리를 비우려 글을 남긴다. 4시 40분부터 집중하려 했으나, 잠든 아이가 칭얼거리길래 20분을 도닥이고 나와 5시를 넘겼다. 민형이는 잠들 때에도 잠에서 깼을 때도 늘 바로 엄마부터 찾는다. 내 목소리를 들려주거나, 도닥여주거나, 안아주고 쓰다듬어주면 금세 진정한다. 그토록 지금 아이 세계의 중심에는 민망할 정도로 내가 우뚝 서 있다.


새벽에 깨서 칭얼거리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고, 배를 도닥여주고, 안고 등을 쓸어내리며 생각했다. 민형이를 보듬듯이, 어린 미경이와 상영이를 보듬고 싶다. 내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눈을 맞추고, 따뜻하게 웃어주고 싶다. 꽉 껴안고, 사랑의 말을 해 주고 싶다. 오늘 어떤 일이 있었는지, 뭐가 즐거웠는지, 속상한 일은 없었는지 들어주고 싶다. 먹고 싶은 게 있다면 사주거나 해 주고 싶고, 혹시 축 처져있다면 힘이 나게 해 주고 싶다. 그렇게 종종 만나 어른이 될 때까지 기댈 곳이 되어주고 싶다. 그리고 어른이 되어 사회에 나가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중년이 되고, 노년기를 맞을 때까지 종종 만나서 고민을 들어주거나 포근한 사랑의 말을 해 주고 싶다.

... 나는 엄마와 아빠의 부모가 되어주고 싶은 걸까.


그러다 문득, 아차 싶었다. 그렇게 자란 내 어린 시절이 눈앞을 스치면서, 지금 잠들 듯 말 듯 내 손길을 느끼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어둠 속에서 선명해졌다. 그러면서 내가 어릴 때 느낀 감정들. 엄마와 아빠가 내 세상의 전부이던 그때, 친가와 외가를 꽉 채우던 젊은 우리 가족들. 이모, 삼촌, 큰아빠, 작은 아빠, 할머니, 그리고 사촌 오빠, 언니, 동생들. 그 안에서 내가 느끼던 꽉 찬 어떤 감정이 포개졌다. 뒤 이어 민형이의 세계가 그려졌다. 지금 나와 남편, 내 동생과 제부, 언니들(형님들), 어머님과 아버님, 아주버님, 조카 은비, 우리 이모와 사촌오빠까지. 그 안에서 충만함을 느끼며 웃고 떠들고 신나 하는 민형이의 모습. 앞으로의 모습들.


그래, 이제 세상은 전환되는구나. 세상의 중심이 어느 시대도, 시기도, 어느 인물이 될 수는 없지만. 내가 집중해야 할 세상은 민형이의 세상이구나 싶어졌다. 나는 지난 윤미경의 세상, 마상영의 세상, 그리고 그들을 잃은 나의 세상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지금 한창 펼쳐지는 민형이의 세상을 더 견고하게 만드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금 느낀다. 내가 사랑하는 미경과 상영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냥 삶은 이렇게 흘러가는 게 아닐까 싶어지는. 오늘도 복잡한 머릿속, 마음속.


수요일 저녁, 촬영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소란스러운 마음을 정돈하려 유튜브에서 불교의 법회 영상을 찾아보았다. 스님의 설법을 들으며, 무언가를 깨닫고 싶었다. 말씀을 듣고 싶은 스님 옆에 '사별', '죽음' 등의 키워드를 더해 몇 가지 영상을 찾았고, 말씀을 들어보았다. 그러다 법상 스님의 말씀이 내 마음에 콕 박혔다.


무너진 신념을 다시 쌓는 일, 죽음관을 다시 정립하는 일, 나의 중심을 다시 찾고, 흔들리지 않는 마음으로 걸어 나가는 그 순간을 다시 맞이하려면, 이제는 도움이 필요하다. 선대와 선인들의 말씀에 귀를 기울인다거나,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들 중 멘토를 찾는 것, 내 마음을 수련하는 방법을 새롭게 찾는 것 등이다.


몇 가지 방법은 계속 이어나갈 것이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그 과정으로부터 내 마음을 돌보고, 자연스럽게 어떤 의미를 만나는 일. 거기에 몇 가지를 더하려 한다. 자연을 더 가까이하고, 요가로 나를 정화하며, 불교로 깨달음을 얻는 것 말이다. 그리고 내가 느끼고, 배우는 모든 것들을 집약하여 다시 나누는 일에 집중해야겠다. 나는 글을 좋아하지만, '좋아한다'는 말로 다 표현될 수 있을까. 글은 언제나 나를 살린다. 글을 쓸 수 없다면 더는 살아갈 수 없을 지경으로. 어떤 마음으로 쓰든, 필시 써야 하는 어떤 숙명을 가진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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