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 알 수는 있을까
엄마와 아빠의 사랑 아래 유년기와 소년기를 보낸 나는, 아빠의 책임과 보호 아래 청년기를 보냈다. 아직 몇 해가 남았지만, 다가올 중년기는 어느 아래 발 디딜 곳 없이 태양 밑에 바로 서야 한다.
나는 제법 독립적인 편이라 부모님이 계실 때에도 내 주관대로 미리 마음의 결정을 내리거나 행동에 옮겨왔다. 그래서 아마 겉으로는 내가 얼마나 부모님을 믿고 따르는지 알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나보다 인생을 먼저 경험한 어른의 자리가 텅 비었다는 사실이 날 불안케 한다. 무언가를 물을 수 있고, 내가 갈 길을 일러줄 이가 없다는 서운함이 아니다.
나에게 부모란 롤모델이자 살아있는 교보재이며, 지혜였다. 어느 벽에 가로막혀도 큰 걱정 없었다.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벽을 뚫어줄 이들이라서가 아니라, 내가 다른 길을 찾는 모든 과정을 묵묵히 바라보고 응원해 주는 이들이라는 믿음과 신뢰가 굳건했다.
결국 와버리고 만 두 분과의 이별의 시작에서, 나는 또 마음이 아프다. 엄마는 아내이자 엄마로서 살아가는 동안 아버지와 어머니가 없다는 사실이 얼마나 아리고 허전했을까. 늘 애써온 아빠는 (할머니가 오래 계셔주시긴 했지만) 할머니에게 기대는 쪽보다는 할머니가 기댈 수 있게 어깨를 내어주는 쪽이었으니, 얼마나 버겁고 고단했을까 싶어서.
아마 두 분이 함께 사는 동안 엄마는 아빠에게 의지했을 것이고, 아빠는 엄마에게 의지했을 것이다. 엄마가 떠났을 때 아빠가 그토록 힘들어했던 이유를 알 것 같다. 그 이후부터는 의지할 곳 없이 어디에 몸 뉘이고, 어디에 마음 털어놓으며 사셨을까 싶어 가슴이 아려온다. 누구에게나 지탱할 기둥은 필요하다. 기둥의 강도는 중요치 않다. 아마 아빠에게도 하나의 기둥이 있었다면, 우리였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은 금방 확신이 되어 나를 더 아프게 했다. 내가 아빠, 동생을 보며 지낸 그 마음과 아빠가 나와 동생을 보며 버틴 그 마음이 같다는 게 안타까웠다. 작고 여린 우리 자매가, 크나큰 아빠가 기댈 유일한 곳이었다니.
산다는 것은 뭘까. 삶이라는 것은 뭘까. 살아가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잘 산다는 것은. 못 산다는 것은 뭘까.
오늘 오후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는 상황을 끌어안고, 혼자 덩그러니 육아를 하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누구를 향한 원망도, 서글픔도, 자책이나 자기 연민이 아니라. 그냥 좀 지쳐서. 삶의 조각조각이 때로 너무 버거워서.
내 젖은 눈가보다 더 촉촉한 눈으로, 보석이 박힌 듯한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나를 바라보며 미소 짓는 아이. 행여 엄마의 감정을 읽고 위로하려 보내는 눈빛인가. 또 안타까운 엄마의 마음. 단단한 울타리로 내가 평생을 품어주겠노라 다짐하게 한 작은 존재.
그런데 이 존재만이 나를 움직인다. 내 세포를 자극하고, 더 세차게 피가 도는 느낌을 주는 유일한 존재. 그 존재를 보며 느끼는 이 작지만 넘칠듯한 감정. 한참을 가만히 그 감정에 젖었다.
아.
산다는 것은 이런 걸까. 아직은 너무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