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로운 나날이다. 몸은 가장 한가로운데, 정신은 그렇지 못한 요즘. 육체와 반대로 바쁘다거나 힘들다거나 하는 그런 감정이 아니다. 지금 1월의 날씨 같달까. 너무나 건조해서 쩍쩍 갈라지고, 거칠다 못해 따갑고 간지러운 1월의 내 피부처럼. 최근의 내 정신이 딱 그러하다.
사춘기 이후 내 삶의 여정은 나에 대한 탐구와 회고로 가득 차 있다. 나에 대해 나만큼 잘 아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며 지냈는데, 그 확신에 균열이 생긴다. 나를 나 다음으로 잘 알고 있다 인정하는 남편을 통해 새로운 시각을 얻었고, 한가로운 시간이 주는 지루하고 초조한 허공 속 내 시선이 자꾸만 물음표를 던진다.
나는 좋은 어머니가 되고 싶다. 그 바람에는 변함이 없는데, 정작 그 바람의 의미가 무언지 모르겠다. 겨울바람 앞에서 힘 없이 흔들리는 촛불처럼 사정없이 나부낀다. 모처럼 한가로운 1월의 시간들을 아이에게 쏟아야 한다는 마음과, 나를 위해 소비해야 한다는 마음이 거세게 충돌한다. 두 파도가 양보 없이 부딪쳐 만들어내는 멈출 줄 모르는 물의 움직임이 윤슬이 되고, 잔상으로 남아, 내 마음에 삐딱하게 얹힌다. 체증이 느껴진다.
그렇다 보니 주체성 없이 시간의 손님으로 멍청하게 지내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읽고 싶던 책들을 한가득 사 두었다는 것. 생각이 복잡하고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을 때, 아이의 웃음소리를 묻어두고 나만을 위한 생각에 잠길 때, 그 생각을 멈추고 싶을 때, 영어 공부를 하고, 책을 읽고 있다. 사실 나는 써야 할 것들이 잔뜩인데.
나는 왜 글을 쓸까? 왜 글을 쓰고 싶어 할까? 왜 글이어야 할까?
30대 중반을 넘어서는 나는 시대의 SNS를 모두 거쳤다. 기록이 좋았고, 소통이 좋았고, 표현이 좋았고, 그 속의 내가 좋았다 싫었다 해서. 그런데 요즘에는 재미가 없다. 남의 일상이 궁금하지 않은 지는 오래고. 사회와 소통의 끈 정도로 여기면서 그 안에 시시콜콜한 콘텐츠들을 유희로 삼으며. 그것들을 소비했고, 또 나의 순간을 나누거나 알렸다. 그런데 내 순간을 알리는 것조차 재미가 없고 의미가 없고 인상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그렇구나, 그렇게 됐나 보구나' 해도 될 일이었지만 궁금하지 않은 것과 별개로 이유를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SNS에 게시글을 올리는 목적이 나의 근황을 알리거나 모습을 보여주려는 것보다, 나의 글과 생각을 기록하기 위함이었고. 짧은 글이라도 그곳에는 남기고 싶지 않을 만큼 내 생각이 진지해졌다는 것이 이유다. 하루하루, 순간순간 아이가 사랑스럽고 예쁘지만, 너무 예쁘고 너무 소중한 나머지 SNS에 선전하기 싫어지는 그런 마음. 그것과 같은 결의 마음. 사실 내 근황이나 생각을 궁금해할 사람도 많지 않을 테고. 정말 궁금하면 따로 안부를 물으면 되는 거니까.
왜 글이어야 하는지, 왜 글을 쓰고 싶은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하나둘 깨닫고 있다. 언제였을까, 중학생일 때였을까 고등학생이었을까.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격언이 굉장히 강렬하게 다가왔다. 생각하면 웃기지만 사춘기의 막바지를 차분하게 정리하던 나는 죽기 전에 꼭 흔적을 남기겠노라 다짐했다. 마치 숙명이라도 되는 듯이, 나의 가치를 알리겠다 다짐했다. 알릴 것도 없으면서 무엇으로 나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도 모르면서, 한두 사람이라도 좋으니 내가 죽고 나서도 나를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당장, 아주 작고 볼품없는 내가 여기 작은 도서관 구석 자리에 있노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아마도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에 여러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중학생의 나였을 테고, 나를 알리는 무언가를 꼭 해내겠다고 생각한 것은 고등학생의 나였을 테다.
그래, 인생은 고독하지. 인간은 쓸쓸하지. 그럼에도 난 인간임이 좋았지. 인생을 살 수 있음에 감사했지. 흐릿해졌던 원초적인 생각이 다시 선명해진다. 안타까운 사람들, 상처받은 사람들, 다시 웃는 사람들, 행복한 사람들, 지친 사람들, 울컥하는 사람들, 그렇게 쓰러져도 다시 내쉬어지는 숨, 그리하여 살아가는 인생사. 내 속을 긁어낸 차가운 생각들이 뜨겁게 데워져 다시 들어찬다.
나의 1월을 조금 더 뻔뻔하게 보내련다. 미친놈처럼 읽고, 생각하고, 괴로워하고, 다시 읽고, 생각하고, 정리하고, 또렷해지거든 무언가를 써내려 갈 수 있겠지?
아이와 남편이 잠든 조용한 집에서 먹고 싶던 나초칩에, 따뜻하게 데운 보리차에, 요즘 푹 빠진 몇 권의 책에, 또 심금을 울리는 잔잔한 멜로디와 격정적인 노랫말에, 적당히 졸리운 눈꺼풀이 참 조화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