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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풀 그리고 숲 May 24. 2024

중요한 것은 지속가능성

스트레스가 극심할 때마다 브런치를 찾는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이 든다. 넘치는 행복을 주체하기 어려울 때에도 브런치에 들러 글을 쓰며 행복을 곱씹지만, 나에게 글이란 확실히 두통이 왔을 때 먹는 타이레놀과 같은 존재에 더 가까운 것 같다.


우리 아기는 오늘로 251일이 되었는데, 나는 아기가 200일이 될 무렵 다시 일을 시작했다. 수입에 대한 고민과 갈증도 있었지만, 더 이상 아이만을 바라보며 하루를 보내기에는 내가 견디기 힘들 것 같아 내린 결정이었다. 감사하게도 바로 좋은 제안이 들어와, 원하는 시기였던 4월부터 업무를 맡게 됐다. 미리미리 대비하는 스타일은 아니라 다소 타이트한 일정 속에서 베이비시터를 구해야 했는데, 운이 좋게도 모시고 싶던 분이 우리 아기 보육을 맡아주시게 됐다. 모든 게 순조로웠다.


평소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어려워하지 않고, 낯가림도 없는 편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필요 이상 타인과 접촉하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 개인의 시간이 꼭 필요한 타입이다. (MBTI 'E'를 가진 모든 사람들이 언제, 어디서나 타인과 함께하길 바란다는 것은 일반화의 오류...) 그래서 보육 선생님의 근무 시간도 평일 오후 1시부터 6시까지로 요청을 드렸다. 재택근무 형태로 일을 하기 때문에 오전에만 조금 분주하게 보내면 점심 이후부터 집중해서 일을 처리할 수 있겠다 싶어 만족스러웠다. 마음속에 '우리 아기는 순하니까, 얌전하니까'라는 믿음과 기대가 있었기에 그런 결정을 할 수 있었는지도?


그리고 일을 시작한 지 두 달이 되어가는 오늘. 아침부터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다. 우선 어제 늦은 밤까지 야근을 한 터라 피곤했다. 오늘 작업할 자료를 보면서 자느라 심리적으로 편안한 상태가 아니었고, 오전 중 처리해서 넘겨야 할 일이 있었는데 남편은 아침 이유식을 도와주지 못할 정도로 일찍 출근해야 해서 더욱 기댈 곳이 없게 느껴졌다.


이제 8개월에 접어들어 자아가 생긴 우리 아기는 내내 떼를 썼다. 그나마 밥 먹는 시간은 즐거웠는지 이유식을 받아먹을 때는 아주 얌전했고, 맛있게 남김없이 먹어줬다. (그 부분은 정말 고마워!) 이유식과 수유를 마치고 아기 배변까지 처리해 준 다음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두드렸다. 아기는 혼자 놀기 싫었는지 계속 칭얼거렸다. 늘 그렇듯 아기를 안고 타이핑을 해 봤지만, 이젠 호기심도 많고 힘도 좋아진 아기는 나와 같이 키보드를 두드리고 싶어 했다. 놀이매트에 앉히고 그 옆에 좌식 테이블을 두고 다시 노트북을 펼쳤지만, 쉽지 않았다.


"미뇽아 엄마 할 일이 있어. 이 장난감 어때? 곰 세 마리 불러볼까? 바스락바스락 곰 세 마리 책 한번 보자~ 아빠곰, 엄마곰, 애기곰!"


"미뇽아 엄마가 너랑 놀아주고 싶지 않은 게 아니라, 엄마도 할 일이 있어서 어쩔 수가 없어. 우리 이렇게 나란히 앉아있잖아. 엄마 옆에 있잖아~ 엄마가 미뇽이한테 관심이 없는 게 아니라는 거 알지? 엄마 옆에서 조금만 일 볼 수 있게 도와줘~"


갖은 노력에도 아기는 내가 노트북 화면으로 눈을 돌릴 때마다 떼를 썼고, 답답함에 한숨이 나왔다. 그리고 그냥 노트북을 덮었다.


"그래 그래. 미뇽이는 아직 아기인데. 아기는 당연히 엄마랑 눈 맞추고 싶고 모든 걸 함께하고 싶은 게 당연한데. 그렇지? 근데 엄마가 자꾸 이런 아기한테 조금만 도와달라고, 이해해 달라고 말하고 있었네. 아기가 엄마 상황을 이해하고 도와준다는 건 불가능한 건데. 엄마가 불가능한 것을 바라고 있었다. 그렇지?"


졸려서 눈을 비비는 아기를 안고 침실로 들어왔다. 오늘 하루 업무 스케줄은 이미 다 꼬여버렸다. 오후에 독촉을 받을 게 분명했다. 그럼 난 지금보다 더 스트레스를 받겠지. 오후는 더 분주하겠지.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아기 옆에 나란히 누워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노래도 불러주고, 아기가 좋아하는 곰돌이 부채로 살랑살랑 부채질도 해 주었다. 침실의 공기는 평화로웠는데,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다.


남편에게 메시지를 남겼다. '아기 보느라 일 하나도 못 하고 있어서 너무 스트레스야. 지금은 그냥 체념하고 방에 같이 누워 있어. 오늘 넘겨야 하는 기획안은 나도 모르겠다.' 그냥 전형적인 하소연이었다. 우린 한 팀이니까. 팀원에게 공유해야 서로 이해하고 위로받을 수 있는 거니까.


남편은 어머님이라도 오시라고 연락드려볼까, 누나한테 오전만 도와달라고 해볼까, 이런저런 제안을 하며 내 어려움을 해결하려 노력해 주었다. 마음은 고마웠지만 오늘은 그냥 그러고 싶지가 않았다.


얼굴을 타고 또르륵 흐르는 눈물을 보고 아기가 어떤 생각을 할까 싶어 나지막이 설명해 주었다.


"엄마가 일도 육아도 씩씩하게 하고 싶은데,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오늘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것 같아. 다 잘하고 싶어서 그런 건가 봐. 그래서 엄마 기분이 조금 안 좋아."


아기는 그 말을 가만히 듣더니, 인형을 꼼지락꼼지락 만지며 걱정 없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어렸을 때, 사회 경험이 부족했던 때에는 가장 중요한 것은 불꽃 튀는 열정과 속도를 낼 수 있는 동력을 갖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아닌 것 같다. 초기의 다짐, 거창한 목표, 중간중간 혹은 막판 스퍼트를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지속가능성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결국 지속할 수 있어야 한다. 지속해야 하는 동기가 확실해야 하고, 지속할 만한 명분이 있어야 하고, 지속할 수 있는 환경, 에너지가 갖추어졌을 때 과정과 끝이 건강할 수 있다. 무조건 버티는 것은 한계가 있다. '앗, 이제 한계다. 그럼 잠시 멈춰야지.' 하고 기계적으로 깔끔하게 중단하거나 선회할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보통은 그렇지 않으니까. 한계까지 버티느라 몸과 마음이 망가지고, 그것을 복구하느라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시간을 허비해야 할 수도 있으니까.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야지.


'보육 선생님을 오전부터 모시면 어떨까. 점심시간을 1시간 드리고,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정도로?'

'오후에 선생님 오시면 일하다가 잠깐 나가서 맛있는 거라도 먹어. 저번에 먹고 싶다던 더핏짜 같은 거.'


오늘도 남편의 메시지에 힘을 얻는다. 가장 분주한 시간이 오전부터 오후 3~4시까지니까, 남편 말대로 보육 선생님 업무 시간 조율이 가능하실지 한번 여쭈어봐야겠다.


개선할 게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지금보다 더 좋아질 수 있다는 신호이고, 가능성이니까.


우리 아기에게도 평생 좋은 엄마가 되어주고 싶고, 올바른 인격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돕고 싶다. 그 기나긴 여정 안에서 무너지지 않으며, 더 많은 순간순간 행복을 느끼는 것이 나의 목표. 지속가능성은 이미 검증 됐다. 누구보다 나를 사랑하고 신뢰하는 아기의 눈빛, 내 곁에서 단단한 울타리가 되어주는 남편, 그들의 마음을 너무도 잘 아는, 유연하게 대처할 줄 아는 내가 있으니까! 지금 이 순간도 칭찬해. 나를.



나를 가장 잘 아는 내가 있으니까.

2024.5.24 오전 10:45 [나] 이러다 눈물 또르륵 흘리면 금방 괜찮아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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