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도 나와 똑같다는 걸 인정했다

남들과 다른 힙스터는 나뿐인 줄로만 알았는데

by 현의


사람들과 교류할 때 가장 즐거운 순간은 세상에는 다양한 삶이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될 때이다. 때로는 ‘와 이런 사람이 다 있냐’라는 경악을 할 때도 있지만 그 찰나의 순간을 견디고 나면 ‘저 사람이 내가 아니라서 다행이다’라는 긍정적인 생각이 싹튼다. 그러나 나 또한 누군가에게는 ‘와 이런 사람이 다 있냐’에 속하는 인물이었다.



생긴 거랑은 다르네요



내 외형과 성격이 서로 부조화를 일으킨다고 지적하는 사람이 여럿 있었다. 그들은 모두 다 다른 사람이었지만 내가 그들 앞에서 만만치 않은 모습을 보여줄 때 내게 실망했다는 티를 팍팍 냈다는 점은 모두 동일했다. 어떤 사람은 심지어 내가 생긴 것과는 다르게 장난을 순순히 받아주지 않고 웃어주지 않는다며 자신에게만 유난히 싹수없게 군다고 헛소리를 하기도 했다. 본인도 내게 선을 넘는 말을 했다는 걸 생각하기에는 지능이 부족했던 모양이다.


다행인 점은 내가 다른 사람의 말에 크게 연연하지 않고, 주변 사람들도 그 사람의 말에 그다지 연연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타인의 말에 따라 나에 대한 평가를 다르게 내리는 사람이 주위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혹은 조직에서 네 편, 내 편을 나누는 것이 절대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걸 오랜 경험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어떻게 세상에 이런 사람이 다 있냐’는 생각이 들게 하는 사람도 다른 사람을 똑같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건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납득할 수 있었다. 가장 오랫동안 인정할 수 없었던 건 내가 부러워하는 대상이 나와 똑같은 이유로 다른 사람을 부러워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 와, 금수저네요
- 진짜 금수저는 나 같지 않아요



외국에서 나고 자랐지만 한국어와 외국어 모두를 유창하게 하고, 유머감각이 있고, 설령 그것들이 모두 없더라도 전혀 문제 되지 않을 정도의 사람을 알게된 적이 있었다. 그 주변에는 어떻게든 그 인물을 즐겁게 하려고 갖가지 칭찬을 덧대며 그 사람을 추켜세우는 사람도 있었는데 그때마다 그 사람은 이런 말을 했다.


“진짜 금수저는 나 같지 않아요.”


그 증거로 그 사람은 주위에 있는 ‘진짜 금수저’의 일상을 소개했다. 그리고 자신은 그런 걸 엄두도 낼 수 없기 때문에 절대로 부자가 아니라고 펄쩍 뛰었다. 집안 대대로 ‘사’ 자 직업을 가졌다는 인물의 입에서 그런 말을 들으니 어이가 없었고, 그런 사람도 남들을 재정적으로 부러워한다는 게 믿기지가 않았다. 설령 그게 원만한 사회생활을 위해 적당히 꾸며낸 말일지라도 어느 정도의 진심은 섞여있을 것 같았다.


그때 비로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재정적으로 남을 부러워하지 않아도 될 자격을 가진 사람은 딱 한 명밖에 없겠구나.



모두가 열등감을 가진 세상에서
어떤 자세로 살아가야 할까



그 사람이 줄줄 꿰고 있는 진짜 금수저의 삶에는 별로 관심이 가지 않았다. 자기가 부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정작 나와 같은 계층이 된다면 그 삶을 견딜 수 있을까 하는 호기심만 들었다. 그러다 보니 나도 열등감 덩어리가 되어버린 것 같아서 짜증이 났다.


살다 보니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많은 것을 갖지 못했다는 이유로 스스로 비참한 삶을 자처한 사람들을 몇 명 더 만나게 되었다. 그 사람 앞에서는 나의 삶에 만족하는 것이 일종의 정신승리처럼 느껴졌다. ‘아니야, 그렇지 않아’라는 위안을 상대방의 입에 넣어주는 것이 정말로 도움이 되는 걸까 의문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러게, 사는 게 그 모양이라 어떡하냐.’라는 말을 꺼내기에는 최소한의 사회화는 되었기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왜 인간은 항상 더 많은 걸 원하는 걸까? 왜 다른 사람의 것보다 나의 것이 더 초라하게만 느껴질까? 왜 나보다 타인의 삶을 더 열망하는 걸까?


나도 때때로 이런 생각을 하곤 한다. 그리고 아직도 이런 생각에서 완벽히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어느 팟캐스트에서 들은 말이 생각을 바로잡는데 도움이 되었다.


‘부유한 사람 입장에서 보면 다 똑같은 거지다.’


펜트하우스에 살든, 라면과 삼각김밥으로 끼니를 때우든 빌 게이츠 입장에서 보면 다들 똑같이 자신보다 못한 거지일 뿐이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순수한 칭찬의 말보다 이런 시니컬한 말이 더 마음에 와 닿는 이유는 어쩌면 이것이 덜 추상적이고 현실적인 말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내가 남들보다 초라한 사람은 아닐까 하는 자조적인 생각이 들 때면 곧장 빌 게이츠를 떠올리는 습관을 갖기로 했다. 실제로 빌 게이츠의 얼굴보다 그 이름이 주는 상징성을 더 선명하게 떠올리긴 하지만.


그래도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는데 쓰는 시간이 점차 줄어들었다. 전에는 내가 일생에서 꼭 성취하고 싶었던 점을 마치 키링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사람을 보면 나 자신이 한심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하지만 빌 게이츠와 그의 재산을 떠올리다 보면 내가 타인을 비교하는데 시간과 에너지를 쓸 필요가 없다는 걸 빨리 깨우치게 되었다.


진심으로 누군가의 삶을 원한다면 내 주변 사람의 삶을 원하기보다 차라리 부유한 1 세계 백인 상류층 남성의 삶을 원하는 편이 훨씬 나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내 삶을 얽매는 어떤 문제들이 전혀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다시 태어나지 않는 이상 절대로 나는 그들이 될 수 없다는 생각에 이를 때, 아무런 소득 없는 공상을 하며 스스로 비참해지는 것보다 차라리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빠르게 해내는 일이 낫겠다는 결론까지도 내리게 된다.


다른 사람의 삶을 원하는 건 도움이 안 된다. 나는 절대로 타인의 삶을 이해할 수도 없고 받아들일 수도 없으니까. ‘너같은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면 너보다 못한 나는 어떻겠냐’라는 방어적인 말보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편이 내가 원하는 삶을 찾는데 훨씬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이 글을 쓰는 와중에도 빌 게이츠의 얼굴은 잘 생각나지 않지만 그래도 앞으로도 계속 내가 초라해질 때마다 빌 게이츠를 떠올리며 한층 더 강인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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