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이 틀렸다는 걸 인정했다

내가 보는 내 모습만이 다가 아니었다

by 현의


나는 다른 사람에게 내 이야기를 자주 하지 않는다. 사실 사람들이 날 몰랐으면 좋겠고, 알게 되더라도 금세 잊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아무리 내가 진실을 얘기해도 그 말은 타인의 생각을 거칠수록 왜곡될 수 있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으니까. 이런 생각이 100% 타당한 진실이 아니라는 걸 28년 만에 깨달았다.



- 언니는 잘 될 거예요
- 아니, 그렇지 않아



나는 나에 대한 모든 걸 알고 있는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삶을 살아가면 살아갈수록 내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순간을 많이 접했고,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 뭘 원하는지 확신하지 못하는 때도 많았다. 하지만 그 모든 순간에도 ‘그래도 나는 내가 잘 알지’라는 생각을 버리지 못했다.


이 모순된 생각이 크게 충돌했던 순간은 친한 후배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을 때였다. 그 후배는 내게 참 살가웠고 늘 듣기 좋은 칭찬을 해주어서 함께 있으면 참 즐거웠다. 그때 나는 취업을 준비하고 있었고 준비한 기간이 무색할 정도로 마땅히 이룬 것이 없었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후배가 내게 해 준 말은 “언니는 정말 잘 될 거예요.”였다.


그 말을 들어도 고맙다는 생각보다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그 생각을 진짜로 입 밖으로 내어서 네가 알지 못하는 실패를 얼마나 많이 겪었는지 읊어주며 불행을 전시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늘 내게 힘을 주는 상대의 기를 꺾어버리고 싶지 않았다. 그 칭찬에 뭐라고 응답했는지 지금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 내 머릿속을 아주 강렬한 패배의식이 지배했다는 건 잊을 수 없었다


다른 사람이 보는 나도
나의 일부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는 그 순간 내가 느낀 감정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내가 볼 때 나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게 확실하다는 생각, 그리고 그게 정말 사실이라는 걸 어떻게 확신하느냐는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지나온 경험에 따르면 내 결점을 굳이 나서서 드러내 봤자 나아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원하는 동정이나 공감, 위로를 받기보다 그것을 무기로 서열을 나누려는 사람들을 훨씬 많이 만났다. 그렇다면 설령 진실이 아니더라도 타인이 바라본, 사실이 아닌 내 모습을 진짜로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그때 문득 후배가 본 내 모습도 나의 일부라는 걸 알아차렸다. 후배는 내가 갖지 못한 걸 억지로 찾아내서 칭찬하지 않았다. 그저 내가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던 삶의 일부를 유독 가치 있게 생각했던 것뿐이다. 내게는 별 의미가 없었던 성취가 그 후배에게는 오랫동안 원했지만 도전할 엄두를 내지 못하였던 것일 수도 있었다.


나는 여태껏 내가 가진 것이 어떤 가치를 지녔는지 생각조차도 안 했다. 그 대신 나의 실패에만 연연했고 그래서 매사에 당당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내가 잘 알기 때문에 나의 생각은 무조건 확실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는 첫 단추부터 잘못 채운 어그러진 논리였다.



내 생각이 진실인지
끊임없이 의심해보다



언젠가부터 내 머릿속의 세상은 디스토피아적인 모습을 띠게 되었다. 어떤 사람이든 자신의 아래에 둘 다른 사람을 찾기 위해 추하게 버둥거리기 때문에 감히 건들 수 없도록 호락호락하지 않은 사람이 되어야만 세상을 살아가기 쉬워진다고 생각했다.


아직도 나는 이것이 어느 정도 사실이라고 생각하긴 한다. 그러나 관점을 아주 살짝만 바꿔보기로 했다.


무조건 남들보다 우위에 설 필요는 없다. 남들과 비슷한 위치에 있기만 해도 꽤 나쁘지 않은 삶이다. 그래서 나를 좋아하는 사람을 만난다면 굳이 그 앞에서 나를 깎아내리고 ‘나는 그만한 대접을 받을 사람이 아닌데’라며 납작 엎드리지 않기로 했다. 그 사람이 받아들이는 내 모습을 인정하고 내게 이런 가치도 있다는 걸 배워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상대방의 말에 반박하는 건 나를 깎아내리려는 사람들 앞에서만 하기로 했다.


평생 동안 ‘나는 내가 잘 알아’라는 생각에 갇혀있던 내게는 매우 커다란 도전이었다.



그래서 그 도전의 결과는



1. 세상에 나를 좀 더 드러내게 되었다.


현실에서는 아니지만 인터넷 상에서의 나는 약간의 결벽증이 있다. 이용하는 사이트의 아이디와 닉네임은 모두 다 다르게 설정하고 비밀번호도 각기 다르다. 누구도 나를 특정할 수 없도록 늘 모호한 글을 쓰고 업로드하는 사진에는 손가락조차 드러내지 않았다.


이러한 행동의 이유 역시 사람들은 나를 100% 진실되게 바라볼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내가 드러낸 일부 정보만 본 타인이 그것만으로 나를 판단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남들에게 사실과 다른 인상을 심어주느니 차라리 아무런 정보도 드러내지 않기를 선택했다.


하지만 내 손가락이 함께 찍힌 사진을 올리고 심지어 내 목소리까지도 온라인에 노출시킨 결과 놀랍게도 나를 둘러싼 세상은 그 이전과 달라진 점이 하나도 없었다. 남들이 나를 삐뚤어진 시선으로 볼 수도 있겠다는 점이 인생의 큰 두려움 중 하나였는데 실제로는 내 삶을 조금도 바꾸지 않았다. 그래서 안심했고 조금 부끄러웠다.



2. 다른 사람들에게 더 많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다.


나에 대한 모든 걸 굳이 숨길 필요 없다는 생각이 든 이후로 나는 사람들과 더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이전에는 내가 하는 모든 언행이 평가의 대상이 되고 그로 인해 내 가치가 추락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타인에게 나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줄수록 나도 미처 그 가치를 깨닫지 못했던 소중한 요소를 찾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또 많은 일에 도전할 수 있었다. 어떤 일은 그저 ‘남들에게 이런 일도 해봤다고 말해주기 위해’ 시도하기도 했다.


여전히 내가 세상 밖으로 드러낸 모습이 나를 깎아내리는 무기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은 있다. 하지만 식칼을 무기로 쓰는 사람이 잘못되었을 뿐, 지레 겁을 먹고 식칼을 과일 깎는데 이용하는 사람까지 멀리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다. 28년 동안 겁에 질려 살았으니 앞으로 마주할 시간 동안은 그 두려움을 조금씩 내려놓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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