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을 소유하는 게 대단해 보였기 때문에
향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들은 향을 실체화하는 데 성공했다. 형체가 없는 향을 소유할 수 있고 심지어 언제 어디서나 내가 원할 때 끄집어낼 수 있다는 점이 어느 순간 대단히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사회생활을 하며 얻게 된 돈으로 나는 향수부터 사기 시작했다.
향수를 좋아하게 된 계기는
이제는 더 이상 좋아하지 않는
어떤 매력적인 상대 때문이다
어느 한 사람을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향수에 별 관심이 없었다. 영구적으로 쓸 수도 없는 데다 시간이 지나면 변질될 우려도 있는데 용량에 비해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성애자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좀처럼 타인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던 나의 앞에 태어나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매력적인 상대가 등장했다. 그 상대와 안면을 트고 조금씩 친해지게 되자 비로소 나는 옷차림은 물론이고 액세서리까지 신경을 쓰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향수를 구매하기까지 이르렀다.
상대에게 특정한 인상을 줄 수도 있기 때문에 향수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눈으로 볼 수도 없고 쉽게 통제할 수도 없는 향을 손쉽게 사용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더 좋아졌다. 외출할 때뿐만 아니라 집에서도 좋아하는 향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 무척 기분도 좋았다. 꼭 비싼 향수가 아니더라도 룸 스프레이나 바디 미스트, 방향제, 캔들 등 여러 가지 수단을 동원해 내가 원하는 향을 나의 주위에 흩뿌릴 수 있으니 재정적으로 엄청 큰 부담이 되지도 않았다. 보관할 자리가 마땅치 않아서 방안 곳곳에 숨은 그림 찾듯 끼워 넣어야 하긴 했지만 말이다.
히노끼 향은 대체 뭘까?
여러 가지 향수를 사본 결과 분홍색 패키지에 든 향수는 대부분 무난한 향이 난다는 걸 깨달았다. 심지어 샴푸나 바디워시에서도 말이다.
하지만 그런 향은 너무 흔하고 무난하기 때문에 은근한 관종인 나와 함께 다닐 동료로는 적합하지 않았다.
그래서 최대한 다양한 매장을 둘러보며 여러 가지 향을 맡아보았다. 향수 마니아들이 모이는 커뮤니티에서 정보를 얻기에는 그들이 묘사하는 향이 도대체 어떤 느낌인지 감이 안 왔다. 발품 파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이었지만 향수를 좋아하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말하는 히노끼 향, 스모키 향, 시트러스 향, 스파이스 향 등등 예전에는 관심도 두지 않았던 향을 직접 찾아다녔다. 어떤 향은 깜짝 놀랄 정도로 마음에 쏙 들었지만 어떤 향은 지독히도 싫었다. 특히 많은 사람들이 입을 모아 칭찬하는 향이 내게는 최악으로 다가올 때가 가장 실망스러웠다.
그렇게 닥치는 대로 향을 맡아본 결과 내게 가장 잘 맞는 건 시트러스 향이었다. 어릴 때부터 레몬색을 좋아하고 연두색의 벽지로 도배된 방에서 생활했기 때문인 걸까? 시트러스 향으로 몸을 두를 때의 순간이 너무나도 좋았고 이 상큼한 향과 함께라면 뭐든지 다 해치울 수 있을 것만 같은 발랄한 기분마저도 들었다.
그래서 그 도전의 결과는
1. 향수는 라벨이라도 붙이고 있으니 속을 알 수 없는 사람보다는 훨씬 더 믿을만하다는 걸 깨달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 사람에게서는 꼴도 보기 싫은 구석이 보였고 나는 싫은 걸 싫다고 표현하길 꺼리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 사람의 눈에 들기 위해 안절부절못했던 시간이 한심하게 느껴질 정도로 그 사람과의 관계는 더 이상 다시 진전될 여지없이 완벽하게 박살 났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 때문에 알게 된 향수의 매력도 희석된 건 아니었다. 이 안에 내가 좋아하는 향이 담겼는지 아닌지 향수는 처음부터 아주 정직하게 드러냈으니까.
2. 그러나 코로나 때문에 더 이상 향기를 자랑할 수 없게 되었다.
심지어 나도 마스크 때문에 내가 뿌린 향수를 제대로 맡을 수 없었다. 향수를 온전히 즐길 수 있는 장소는 오직 내 방 화장대 앞뿐이었다.
때때로 화장대를 보며 다 쓰지도 못할 각양각색의 향수들을 이렇게나 많이 구비한 내가 짜증나기도 한다. 하지만 억울한 점은, 예전의 나는 전 세계적인 전염병이 우리의 삶을 바꿀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아예 상상할 수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도 이왕 이렇게 같이 살게 된 거 어쩔 수 없다. 이제 내게 남은 애정은 향수를 향한 애정뿐이니. 이제는 타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나를 위해서 향수를 뿌리는 것도 무척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