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겨울엔 눈이 많이 왔다.
오랜만에 내린 눈이 반가웠는지 눈사람을 만들어 인증샷을 찍어 올리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올라프 눈사람, 엘사 눈사람 등등... 종류도 무척 다양했다. 나는 차마 눈사람을 만들진 못하고... 그 귀여운 눈사람들이 우리 동네에는 없는지, 우리 아파트에는 얼마나 많은 눈사람들이 있는지 찾아다니기만 했다.
골목을 걷다 눈사람을 발견하면, '어 저기 또 하나 있다!'라며 마치 보물찾기 놀이에서 보물을 찾은듯 기뻤고 카메라를 켜 그 순간을 남겼다. 이 작고 소중한 존재가 다 녹아서 사라지기 전에 사진으로 남겨줘야 해. 이들을 기억하는 마지막 사람이 바로 나야!라는 이상한 사명감을 가진 채로. 우리 동네에는 총 23개의 각기 다른 눈사람들이 있었다.
그날 밤, 페이스북에 이런 글이 올라왔다.
누군가 아침 출근길에 사람들 기분 좋으라고 버스정류장 앞에 올라프 눈사람을 만들었는데, 부수지 말아달라는 팻말을 준비하러 간 그 짧은 10분 사이에 산산조각이 났다는 글. 미간이 먼저 찌푸려졌다. 그리곤 내가 다 속상한 마음에 한동안 기분이 좋지 않았다. 슬프다고 표현하기엔 애매하고, 안타깝다고 말하기엔 결이 조금 다른 것 같고. 딱 속상하다는 감정이 맞는 것 같았다. 모르는 사람들의 아침 출근길을 위해 눈사람을 열심히 만든 그 사람의 마음이 공감이 가서.
세상엔 이렇게 무언가를 열심히 만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것을 쉽게 부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걸까. 시린 손 참아가며 눈사람을 만드는 사람, 그 마음을 쉽게 부수는 사람. 세상을 이롭게 하려는 사람과 어떤 이유에서든 그것을 망치려는 사람. 그럼에도, 눈사람을 다시 망쳐버릴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또다시 예쁜 눈사람을 만들어내는 이들로 이루어진 건 아닐까 세상은.
그렇다면 나는 그 사이 어디 즈음 그것을 기록하는 사람이려나. 처음으로 사진을 남기는 일이, 없어질지도 모르는 작은 행복을 나름대로 지키는 일이 될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P.S.
내년엔 나도 올라프 눈사람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지!
21.0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