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쌓인 숲은 요염하도록 아름답다. 온갖 다른 모습으로 앉아 있는 눈들이 어서 오라며 유혹한다. 아무도 걷지 않은 하얀 오솔길을 걷노라면 가슴이 설렌다. 미지의 세계가 한없이 펼쳐진다. 어제 본 곳이 보이지 않고 새로운 세상이다. 나무기둥에 곱게 내려앉은 눈이 바람에 파르르 떨며 떨어진다. 누가 눈을 초대했는지 숲은 요정이 되어 있다. 하늘을 뚫을 듯이 솟아있는 나무들 사이로 파란 하늘이 보인다. 바다를 닮은 하늘이다. 올려다보는 눈으로 바닷속이 보이는 듯하다. 세상은 거꾸로 보면 더 아름다운지도 모른다. 어릴 때 허리를 숙이고 다리 사이로 본 세상이 생각난다. 전혀 다른 세상의 매력에 빠져 자꾸만 보다 보면 어지러웠던 기억이 난다. 살면서 힘들면 누워서 하늘을 보면 모든 고통이 사라지고 평화가 온다. 하늘은 그냥 그곳에 잊지 않고 인간을 감싸 안으며 위로해 준다. 마음이 괴로우면 하늘을 보고, 살다가 외로우면 하늘을 보면 된다. 아무것도 없는 하늘엔 모든 것이 있다. 눈길을 따라가다 보니 넘어진 나무들 위로 눈이 곱게 쌓여있다. 자연이 만들어 놓은 작품이다. 다람쥐 발자국이 선명하게 보인다. 급하게 먹을 것이 필요했는지 빠르게 뛰어간 발걸음이 선명하게 찍혀있다. 숲 속은 침묵하지 않고 무언가를 속삭인다. 아무런 움직임이 없어 보여도 자세히 들어보면 숲은 바쁘게 움직인다. 나무에서 눈 떨어지는 소리 가 들리고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도 들린다. 다람쥐가 나무를 오르내리는 소리가 들리고, 얼어붙은 계곡 속에 물 흐르는 소리도 들린다. 무성했던 풀들이 누워 하얀 담요 같은 눈을 덮고 하늘을 보고 있다. 지나간 많은 날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간다. 들꽃이 피어 들판을 덥던 여름날, 온 숲의 나무들이 노랗게 물들어 있던 가을날들의 가슴 설레던 추억이 새록새록 꽃처럼 피어난다. 눈이 쌓인 숲 속을 걷노라면 숲과 나는 하나가 되어 바람 따라 흔들거린다. 동네 아이들이 나무로 지어 놓은 집이 눈이 너무 많이 와서 인지 허물어져 있다. 계곡옆으로 난 작은 길 옆으로 돌아서 올라가면 평지가 나온다. 넓은 장소로서 바비큐를 하기도 하고 앉아서 간식을 먹으며 놀기도 한다. 지난가을에는 새들이 잔치를 하던 모습이 생각난다. 먹이를 찾아온 새들이 나무 가지마다 새까맣게 앉아서 열매를 따먹는데 사람이 가까이 가도 모르고 열심히 먹어서 놀란 곳이다. 배가 너무 고파서 인지 사람들이 해치지 않는 것을 알아서 인지 알 수는 없지만 이상한 기분까지 들었다. 이제는 날이 추워서 어딘가 에서 추위를 피하며 사는지 새들이 보이지 않는다. 새들은 날이 풀리는 것을 기가 막히게 안다. 추운 겨울날 새들이 나와서 놀면 날이 따뜻해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겨울이 깊어가면 봄도 멀지 않으니 새들의 눈치를 보며 겨울을 보내면 된다. 빌딩 사이에 있는 작은 틈새에 참새들이 사는 것을 본다. 아주 더울 때나 비가 오고 추울 때는 틈새 어딘가로 깊이 들어가 있으면 더위도 추위도 견딜 수가 있나 보다. 나뭇잎이 다 떨어진 겨울 숲은 휑하다. 여름에는 보이지 않던 건너편 숲이 훤히 보인다. 누군가가 개 한 마리를 데리고 열심히 언덕을 내려가고, 그 뒤로 노인 하나가 숨을 헐떡이며 뒤쫓아 간다. 숲에서 만나서 몇 번 이야기를 한 사람들이다. 한동안 보이지 않아 궁금했는데 보이니 좋다. 여름에 보이던 사람이 겨울에 안 보이면 어딘가 따뜻한 나라로 여행을 가는 경우가 많다. 겨울이 길은 이곳에서 웅크리고 살지 않고 멕시코나 하와이를 찾아 겨울을 나는 사람들이 많다. 여전히 바람은 차고 바람이 불 때마다 눈이 날린다. 춥다고 가만히 있으면 점점 꼼짝거리기 싫어도 나오면 좋다. 남편은 좋다 좋다를 연발하며 앞장서 열심히 간다. 자연과 함께 하는 시간에는 마음이 평화롭다. 집에서 가만히 앉아서 스마트폰을 붙잡고 있다 보면 이게 뭐 하는 짓인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남이 사는 이야기를 보고 들으며 시간만 낭비하는 것 같은데 이렇게 나오면 너무 좋다. 이제 걷는 것이 하루의 일과가 되어 안 걸으면 무언가 할 일을 하지 않은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면 그냥 집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도 후다닥 나와 걷는다. 우리를 기다리는 자연이 있는 한 올 수 있을 때까지 오고 싶다. 숲에 오면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아 나도 모르게 자연의 매력에 빠져든다. 봄에는 온갖 새싹이 피어나고, 여름에는 해당화와 딸기 그리고 이름 모를 풀들이 자라고, 가을에는 들꽃들이 바람 따라 춤을 추는 숲 속은 알지 못하는 보물이 넘쳐난다. 오면 올 수록 좋은 숲 속에는 기쁨과 행복이 가득하다. 여름애는 오리가 계곡에서 헤엄을 치고 까치와 까마귀들이 같이 노는 곳이다. 싸움도 언쟁도 없이 저 할 것 하며 살아가는 평화로운 곳이다.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숲 속의 친구들이 그리워지는 날이다. 눈이 녹으면 새 생명의 봄이 태어나겠지만 겨울에는 겨울 대로의 맛이 있기에 오늘도 나는 숲에서 사랑하는 겨울을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