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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내게 허락한 손길에 감사한다

by Chong Sook Lee
(사진:이종숙)


강이 보고 싶어 강으로 간다. 사시사철 흐르는 강물은 지치지도 않는지 오늘도 변함없이 흐른다. 강물이 예쁜 초록색이다. 강을 건너기 위해서 다리를 걷는다. 숲은 오색으로 물이 들었고 바람은 차다. 그래도 멋진 강을 나중에 다시 보기 위해 사진을 몇 장 찍는다. 멀리 보이는 다운타운의 크고 작은 빌딩들이 사이좋게 서있고 강가에서 자라는 나무들이 나란히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고 있다. 반대쪽에서 할머니와 손자가 걸어오고 개와 함께 걸어오는 여자도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걷는 다리도 아닌데 여름 동안 보수공사를 해서 말끔하게 고쳐져 있다.


강물을 내려다보며 흐르는 물을 본다. 언제 적부터 흐르던 강물인가? 비가 와도 눈이 와도 그냥 흐른다. 여름에는 사람들이 배를 타고 놀았는데 오늘은 아무도 보이지 않고 강물만 심심하게 흐른다. 다리를 건너 수십 개의 계단을 내려가서 강가로 이어진 숲 속의 오솔길로 걷는다. 강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오고 먼저 떨어진 낙엽들이 오솔길을 노랗게 덮고 있다. 가을이 깊어간다. 한국 같으면 밤나무 대추나무 감나무 등 먹을 것이 쌓여 있을 텐데 이곳은 그저 나무들만 무성하게 서있다. 밴쿠버 만 해도 날씨가 따뜻해서 여러 가지 과일나무들이 많은데 이곳은 겨울이 길고 봄이 늦고 여름이 짧아서 인지 과일 나무라고 하면 사과나무와 자두나무가 있을 뿐이다.


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강을 바라보며 앞으로 걷는다. 어쩌다 지나치는 사람들이 있을 뿐 아주 조용하다. 오른쪽으로 골프장이 있고 왼쪽으로는 강이 흐른다. 강물이 햇살을 받아 반짝인다. 자연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진다. 이게 바로 천국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남편과 함께 오손도손 이야기하며 오솔길을 걷는다. 지나간 이야기도 하고 고국에서 있었던 이야기도 한다. 고생하던 이야기도 하고 어젯밤 꿈 얘기도 하며 걸어간다. 남편과 함께라서 좋다. 그림자도 좋고 반쪽도 좋다.


같은 하늘 아래에서 함께 걸으며 나무를 보고 강을 보며 서로를 공유할 수 있어 좋다. 욕심내지 않고 큰 기대 하지 않으며 하루하루 같은 곳을 보고 살아갈 수 있어 좋다. 더 많은 것을 바라지 않고 작은 것에 감사하며 살 수 있어 좋다. 멀리 보이던 다리가 가까워진다. 바람이 더 세게 분다. 멀리 보이던 다운타운 도 더 가까이 보인다. 차들이 다리 위로 지나가서 다리가 마구 흔들린다. 그래도 이렇게 나오니 정말 좋다. 가을이 가기 전에 나오길 잘했다. 며칠 지나면 저 고운 단풍잎이 다 떨어지고 말 텐데 바람이 불어도 날씨가 청명해서 좋다. 이렇게 한 바퀴 걸어서 주차한 곳까지 걷는 시간은 1시간 반 정도가 걸린다.


(사진:이종숙)


가다가 너무 힘들면 돌아서 가지 생각하며 나왔는데 걷다 보니 반이 지났다. 강도 보고 단풍도 보며 걸어가는 발길이 가볍다. 좁다란 오솔길을 걷기도 하고 오르막길을 걷기도 한다. 살아있다는 것을 느낀다. 어디 멀리 여행을 가지 않아도 이렇게 좋은 곳이 있다. 코로나 이전에는. 체육관에서 수영을 하고 걷고 줌바를 하며 시간을 보냈는데 코로나로 체육관이 문을 닫게 되면서 숲을 찾아 걷기 시작했다.


처음에 수영장으로 다시 가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는데 지금은 아니다. 다시 체육관을 열어도 숲이 더 좋다. 걷고 또 걸으며 나를 비우고 욕심을 버리며 자연과 친구 되어 가는 자신이 좋다. 자연 앞에서 나는 자연을 닮아간다. 계절에 순응하며 내게 온 것들을 끌어안고 산다. 좋은 것도 나쁜 것도 계절이 왔다 가듯 지나가고 강물처럼 흘러간다.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좋은 아름다운 자연이다.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지구 끝까지 가고 싶다.


오늘따라 유난히 짙푸른 강물이다. 남편과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걷다 보니 우리를 기다리는 차가 보인다. 햇살과 바람과 구름과 강이 어우러진 산책으로 몸과 마음이 새로 태어난 듯 새털처럼 가볍다. 남편과 가을이 가기 전에 한번 더 오자는 약속을 하며 집으로 가는 길이 행복이 넘친다. 오늘이라는 시간을 내게 허락한 보이지 않는 손길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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