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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규 Jul 24. 2023

감성적인 사람

내가 만들었던 3가지 변화에 대하여


 그로기 상태는 권투에서 ‘상대에게 큰 가격을 당해 정신이 몽롱해지거나 다리가 후들거리는 상태 또는 몹시 피곤하거나 술에 취해서 비틀거리는 상태’를 의미한다. 꼭 권투가 아닐지라도 감정에 민감한 사람은 말 한마디에 그로기 상태에 빠질 수 있다. MBTI가 ENFP인 본인은 검사할 때마다 F 비중이 90% 이상이다. 옛날엔 감정에 민감하다는 사실이 큰 약점으로 느껴졌다. 남자 아이들 사이에서 흔히 주고받는 과격한 농담들에 쉽게 상처를 받았기에 나는 ‘쿨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친구들과 놀다가 장난으로라도 도를 넘은 말을 들으면 그로기 상태에 빠진다. 표정 관리를 하지 못해 멍하니 친구를 바라본다. 그럴 때마다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아니 차라리 시간이 멈췄으면 했다. 그저 시간을 움직이는 시계 초침 소리만 원망스러울 따름이다. 많은 생각을 했다. ‘농담이니까 그냥 넘기자’, ‘그들의 의도는 나를 욕하려는 게 아니야’라고 생각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와중에도 ‘왜 꼭 그 말을 그렇게 하지?’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런 성격과 악재가 겹친 중학교 2학년부터의 삶은 지옥이었다. 지금 생각해봐도 중2와 중3은 그 숫자가 어색해질 정도로 힘든 시기이다. 하지만 위기는 기회가 되는 만큼, 혼자 보내는 시간이 길었기에 나의 성격에 대해 여러 방면에서 생각해 보았다. 그 시작은 마술이었다. 평소에 마술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이 시기 즈음부터 사람의 마음을 다루는 ‘멘탈 매직’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사람의 마음을 알아맞히고 원하는 대로 유도한다는 것은 마음 때문에 고통받던 나에게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분야의 고수가 되면 떠난 친구들을 붙잡고 힘들게 했던 친구들에게 복수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열심히 멘탈 매직을 연습했다. 마술 서적을 사서 여러 번 읽으며 사람의 마음을 다루는 법을 배워갔다. 처음엔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돌리고 싶었다. 그리고 해답을 멘탈 매직이 줄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연습할수록 이는 사람의 마음을 바꾸거나 들여다보는 ‘척’을 하는 법을 배우는 것임을 알았다. 가족이나 지인에게 마술을 보여주면 그들은 놀라긴 했지만, 그 이상의 것을 기대하긴 힘들었다. 당연하게도 아무리 암시를 하고 최면을 해도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사람의 마음을 바꾸진 못했기 때문이다. 사람의 마음을 바꿀 수 있다고 믿고 멘탈 매직에 뛰어든 나는 어쩌면 우울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마법을 기대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마술을 공부하면서 많이 읽었던 ‘당신도 멘탈리스트가 될 수 있다’라는 책이 나에게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었다.      


 3가지 큰 변화가 있었다. 우선 첫째, 책 읽는 것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당신도 멘탈리스트가 될 수 있다’를 10번 정도 반복해서 읽으면서 텍스트에 익숙해졌다. 그러면서 처음으로 줄글을 읽고 마음이 고양되는 것을 느꼈다. 마치 저자와 대화하는 느낌을 받았고 그러다 보니 해당 책에서 언급한 개념이 궁금하면 다른 책들도 찾아보기 시작했다. 이시이 히로유키의 ‘콜드리딩’과 폴 에크먼의 ‘얼굴의 심리학’이 그러한 책들이었는데 ‘콜드리딩’과 ‘얼굴을 심리학’ 이 두 권의 책에 관심을 가진 것은 두 번째 변화를 이끌었다.      


 두 번째 변화는 멘탈 매직에서 공감하는 태도에 기반한 콜드리딩과 화술이 중요함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더 나아가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기 위해선 마술보다 대화와 공감이 중요함을 알게 되었다. 콜드리딩은 상대방의 신체 언어, 말투, 표정 등을 민감하게 관찰하고 상대방이 제공하는 힌트를 잘 활용하여 정보를 유추하여 마음을 읽어내는 기술이다. 이를 위해선 우선 상대방이 힌트를 제공하도록 유도해야만 했고 유도의 과정은 대화와 공감이었다. ‘당신도 멘탈리스트가 될 수 있다’에 보면 눈동자의 위치에 따라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는 대목이 있다. 예를 들면 사람을 봤을 때 눈동자가 오른쪽 위로 향하고 있으면 과거의 체험을 상기하고 있다는 식이다.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기 위해 마술보다 대화와 공감이 중요하다는 점’을 깨달은 이후로 이러한 방법들을 마술이 아닌 대화에 응용해보기 시작했다. 평소에도 대화하는 방식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고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알아내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마술에 응용하던 기술들을 실제 상황에 적용해보기 시작하여 현실을 보는 시선이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바뀐 시선은 사람들을 보는 시선이었다.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들은 어떤 사연이 있었을까?’, 그때 처음 생각해 보았다.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인터넷 서핑을 하던 중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을 접하게 되었다. 꿈의 해석은 나에게 커다란 충격이었다. 무의식의 존재는 그간의 모호했던 심리 현상을 완벽하게 설명해내는 개념이었다. 그제야 왜 멘탈 매직에서 암시가 가능한 건지, 사람들은 왜 상기 기억을 떠올릴 때 오른쪽 위를 쳐다보는지 그리고 그러한 단서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나름의 개념을 정립할 수 있었다. 또한, 꿈을 분석한 사례들은 사람이 모두 거기서 거기라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사람들은 모두 살아온 궤적에 따라 서로 다른 자아를 구성하고 있었고 그래서 말하는 방식이 모두 달랐지만, 그들도 결국 인간이었다. 이러한 사실은 나와 다른 사람과 대화하는 방법과 태도를 알려주었고 너무 흔들리지 않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마지막 세 번째 변화는 또 다른 책인 ‘철학 콘서트’를 접하며 일어났다. 이전까지 사람에 대해 이해하고 타인을 대하는 연습을 해왔지만 정작 나를 다루는 법을 몰랐다.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하는지 왜 살아야 하는지, 왜 타인에게 공감해야 하는지에 대해 궁금하지조차 않았다. ‘철학 콘서트’를 접한 뒤 유명한 고전들을 하나씩 찾아보기 시작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수사학으로 시작해서 정치학, 소크라테스 변명, 크리돈, 파이돈, 향연, 니체, 스피노자, 공자, 맹자 등 철학책을 읽기 시작하였다. 또한, 이 시기에 사피엔스나 총균쇠와 같은 현대 교양서들도 읽기 시작하여 점차 ‘나’라는 사람의 사고방식을 갖춰나가기 시작했다. 카를 구스타프 융은 기억, 꿈, 사상에서 이렇게 말했다. ‘상처받은 사람만이 다른 사람을 치유할 수 있다’ 이 말은 상처를 받았던 성숙한 사람은 그만큼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뜻이리라. 그제야 알았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공감하려면 우선 나를 배려하고 공감해줘야 하는구나’     


 하지만 이는 상당히 쉽지 않은 일이었다. 현실이 녹록지 않았기 때문에 나를 배려하고 공감할 기운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나를 존중할 수 있을까?’ 항상 고민했다. 그 당시의 결론은 이랬다.      


‘나에게 기회를 주자’

     

 다양한 도전을 해보자. 그리고 거기서 교훈을 얻자. 이전의 나는 타인의 시선이 무서워서 앞에 나서는 것을 꺼렸다. 하지만 다양한 책을 읽고 공부하면서 서서히 도전적인 사람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제 서야 감성적인 성격이 공감하기에 아주 유리한 ‘좋은’ 성격임을 알았고 이를 활용하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한 것이다. 모든 도전에서, 실패에서 교훈을 얻기로 했다. 명상록에서 아우렐리우스가 ‘신은 당신에게 감당하지 못한 것을 주지 않는다’라고 했다. 또 니체는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라고 했다.  

    

“다양한 경험을 해서 조금 더 강해진다면 내가 다른 사람들을 치유하고 위로할 수 있겠구나.”    

  

 나는 나의 공감 능력의 활용방법을 찾았다. 그러자 더 이상 나는 눈치 없는, 쓸모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실제로 여러 깨달음을 얻은 뒤로 실패와 고통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어 잠깐 힘든 일이더라도 금방 하나의 교훈으로 이해하는 태도를 갖추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 고통의 순간을 마주한 직후, 구토에서 주인공이 실존의 본질을 아는 순간처럼 마주하고 싶지 않은 세상의 진실을 받아들이기는 쉽지만은 않다. 그럼에도 여러 철학자가, 조언자들이 내 삶에 3가지 변화를 일으켰고 그로 인해 성장한 나를 되돌아보면 앞으로 더 성장하고 싶어진다. 또 그러한 자신감이 생긴다. 나는 이제 세상에 치이기만 하진 않는다. 마치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와 있는 것 같다. 그저 지날 기억들에 감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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