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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규 Jul 26. 2023

빗속에서 춤추기 위하여.

빗속에서 춤추고 싶은 이유


 우울하다. 혼자 남아, 슬픈 노래를 듣는다. 짜릿하다. 빗속에서 춤을 추는 듯. 비비안 그린은 ‘인생은 폭풍우가 지나가길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빗속에서 춤추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고 했다. 긍정적인 마인드,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를 의미하는 문장이나 나는 오히려 비를 기다린다. 몸이 이완되는 기분. 힘들어서 더 힘들 수 없을 것 같은 이 순간. 난 그 순간을 즐긴다. 초점을 잃어가는 눈을 관찰한다. 가장 취약해진 순간, 혼자 있을 수 있음에 감사하다. 이때가 아니면 언제 춤을 추리. 사람들 앞에서 추는 춤은 부끄러우니. 더더욱.



 낭만적이다. 예전부터 비가 오는 날 이불 속에 있는 것을 즐겼다. 쏟아지는 빗속과 대비된 안락함이 가져다준 쾌락이었을까. 하지만 그전, 더 순수했던 시절엔 비를 맞으며 뛰는 것을 즐겼다. 비를 맞지 않는 평소에 느꼈던 현기증이 해소되는 기분이었다. 해방감. 우리는 스스로가 어딘가에 구속된 존재라고 느끼는 순간 불쾌한 감정을 느낀다. 인간은 언제나 자유를 갈망해왔기 때문이다. 현대 사람들은 이성과 규칙에 억압되어있다. 그리하여 해금되길 원한다. 이성적이어야 한다는 강요에서 벗어나길 원하며 사회에 묶여있는 시간에서 해방되고 싶어 한다. 술을 찾는다.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영화나 음악을 즐긴다. 혹자는 퇴근 후 영화를 시청하는 것이 시간 낭비라고 한다. 하지만 감성을 즐김은 오히려 세상에 묶여있던 시간을 놓아주는 행위이다. 혹자는 술은 건강에 이롭지 않다고 한다. 왜 자기 자신을 파괴하는가. 이 또한 어느 부분에선 틀렸다. 술을 마시는 이들은 이성적 자아를 파괴하는 것이다. 춤을 추기 위하여.     



 스스로 비를 맞는 이유는 자신만의 춤을 추기 위해서다. 부모님은 비를 맞으러 나가는 나를 막아섰다. 감기에 걸린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런데도 나가고 싶었다. 시원했다. 그 이유가 다였다. 하지만 이젠 물방울에 감정이 실렸다. 여러 사람의 눈치를 보고 모두에게 최선을 다하려다 보면 미끄러지기 마련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먹구름 속으로 떨어진다. 천둥이 치고 비가 내린다. 처음엔 옷이 젖어 당혹스러움과 분노를 느낀다. 하지만 이윽고 몸이 이완되고 어디선가 피아노 선율이 들리면, 나는 춤을 춘다. 술을 마신 것 같은 해방감을 느끼며 우울함이란 비가 이루는 정신의 바다에서 헤엄치는 느낌을 받는다. 그 속, 그 안에서 행복해지려 한다. 순간의 내가 너무 좋기에 더 행복해지고 싶지 않아지기까지 한다. 행복과 불행, 그 사이 어디쯤의 황혼이다. 이래서 니체가 사람은 몰락하는 존재라고 하였을까. 이래서 사람은 자신을 비참하게 만들고 싶어 하는 것일까. 구름이 걷히려 한다. 글을 쓰다 보니 기분이 풀렸다.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는 기분이다. 발에 족쇄를 채우고 싶다. 물속에 묶여있고 싶다.      



"빗속에서 춤추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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