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불가병에 걸린 어느 작가의 유언장
요새 저도 그렇고 많은 사람들이 무언가를 시작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작가인 저도 수 많은 메모를 하고 있었지만 출판사에서 글을 쓰라 메일이 오기 전까지 그것을 글로 옮기지 않았습니다. 하도 많이 들어 이제는 머리가 아픈 숏폼 콘텐츠의 부작용 때문인가 봅니다. 어느 순간부터 짧은 길이의 영상만 많이 보다 보니 영상의 결말이 지체되면 기다리지 못합니다. 짧은 영상에 의한 도파민 중독이라 사회에선 이를 크게 문제 삼는 추세입니다. 저는 이 숏폼 중독의 문제는 단순한 영상 중독에서 그치지 않는다 생각합니다. 중독이 개인이 하고자 하는 일을 못하게 하는 것. 그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숏폼 중독의 현상은 인내력 저하입니다. 저는 이를 결말까지 과정을 인내하지 못하는 병. 과정을 지루하게 여기는 병 즉 '인내불가병'이라 명명하겠습니다. 이 병은 현대 소비 생태계를 바꿔 놓았습니다. 영상 제작자들은 웃음 포인트를 빠른 시간 내에 압축해서 보여줘야 하며 영상의 매 순간이 하이라이트로 보여지도록 30초 이하의 영상을 꾸려야 합니다. 보이지 않는 손이 바이러스를 운반한 셈이죠.
개인은 하고자 하는 일을 하기 위해선 인내력이 필요합니다. 이를테면 자격증 시험이나 대입을 준비하고 성과가 나오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글을 쓰거나, 운동을 하러 가는 등 취미 생활에도 인내가 필요합니다. 완성된 글과 완성된 근육은 바로 나오지 않기에 또한 그런 것이죠. 이렇듯 계획에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인간이 하는 모든 계획엔 인내가 필요하고 따라서 인내불가병은 사람에게 아주 치명적인 병이 됩니다.
사실 숏폼이란 바이러스 이전에도 인내불가병은 만연했습니다. 작심삼일이라는 말은 인간이 얼마나 주어진 계획을 이행하지 못하는 지 보여줍니다. 이에 대한 조상님들의 처방전 중 제가 가장 유용하게 사용했던 건 '작은 목표를 세워라' 였습니다. 목표를 작게 하면 그 목표에 금방 도달할 수 있고 그 성취와 더불어 더 나아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글 한 줄 쓰기를 목표로 하고 우선 노트북을 킵니다. 이후 오늘의 목표였던 한 줄을 씁니다. 그러자 이상하게도 더 쓸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한 줄 한 줄 글을 이어나가다보니 결국 하나의 글을 완성합니다. 저는 지금까지 대부분의 글을 이렇게 썼습니다. 약효가 좋았습니다. 적어도 인내불가병이 중증에 이르기 전까지는요.
과거에 만연했던 인내불가병은 오늘날 숏폼이라는 변이 바이러스를 만나 그 증상이 악화됩니다. 중환자들이 많이 생겨나기 시작하면서 사회는 대책을 내놓아야 했습니다. 사람들을 인터넷이나 모바일 기계로부터 격리합니다. 하지만 암에 걸린 사람을 격리한다 해서 암이 낫지 않는 것처럼 이미 인내불가병이 심해진 사람들을 격리한다고 해서 병이 낫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치료제를 요구합니다. 하지만 국가는 손씻기와 같은 예방책이나 간헐적 격리와 같은 일시적 해결책만 내놓는 상황입니다.
중환자실에 갇혀 사는 기분이 듭니다. 문제점만 인식한 채 고통 받고 있으니까요. 그냥 인정하렵니다. 나는 시한부입니다. 세상에서 요구하는 과제라 불리는 신경 안정제를 먹으면서 수동적이고 맹목적인 태도로 삶을 마감하렵니다. 제가 사랑했던 이들이 그렇게 삶을 마감한 것처럼요. 죽어가면서 병에 대해 논하다니. 평생을 논해온 사람이다 보니 이것이 저에게 맞는 안정제인가 봅니다.
이제 떠납니다. 사랑했던 모든 것들을 뒤로한 채 삶을 거대한 파도 속에 띄워 저 멀리 보내렵니다.
안녕히계십시오. 유언장을 읽는 모든 분들은 원하시는 바 모두 이루셨으면 좋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