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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의 첫 연애 감정] 10화

그날의 미소는 아직 너 안에 있다

by 라이브러리 파파

나는 요즘 딸의 얼굴을 오래 바라보게 된다.


웃고는 있는데, 예전과 같은 미소는 아니다.
입꼬리는 올랐지만, 눈동자는 조금 뒤처져 있다.

딸이 실연을 겪었다.


처음 누군가에게 마음을 주고,
처음 돌아서야 하는 감정을 배운 시기였다.

그날 밤, 딸은 침묵 속에서 혼잣말을 했다.
“왜 나는 늘 마음이 늦게 정리되는 걸까…”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사랑이란 감정은 설명보다 함께 앓는 쪽이 정답일지 모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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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멈춰버린 듯한 그 계절


딸은 평소처럼 등교했고, 친구들과도 웃고 떠들었다.
겉보기엔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아빠인 나는 안다.
그 아이의 내면에 고요하게 맺혀 있는

감정의 여운이 아직 식지 않았다는 걸.


그 사랑은 끝났지만, 감정은 아직 자리를 비우지 못했다.
사람을 사랑한다는 건
그 사람이 떠난 뒤에도 한동안 그의 자리를 기억하는 일이다.


딸은 요즘 자주 멍하니 창밖을 본다.
이야기를 건네면 “괜찮아”라고 웃지만,
그 말은 지금 괜찮다는 뜻이 아니라
“지금은 괜찮아지려고 애쓰는 중이야”라는 해석에 더 가깝다.



슬픔은 피하지 않고 통과하는 것


사랑을 배운 딸은 이제 슬픔을 배우는 중이다.
실연은 이별의 이름이기도 하지만,
스스로를 단단하게 다듬는 과정이기도 하다.


나는 딸에게 그 감정을 피해가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온전히 통과하라고 말해준다.

그러기 위해 내가 곁에 있겠다고,
그 시간이 길어지더라도 함께 걸어주겠다고.


아빠는 ‘회복의 시계’를 재촉하지 않는다.

슬픔이 천천히 빠져나가는 시간에는
조용히 등 뒤에 머물러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걸
나는 이제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아무 말 없이 내민 귤 한 조각처럼


딸의 방문 앞에 귤 한 개를 놓고 돌아섰던 어느 밤,
잠시 뒤 문이 열리고, 귤껍질 까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아주 작게 들린 목소리.
“고마워.”

그 한마디가 모든 것이었다.


지금 딸에게 필요한 건
위로의 정답이 아니라,

그저 ‘내 감정을 누군가가 알고 있다는 확신’일 뿐이니까.


나는 그날부터 말보다는 몸짓을 더 많이 쓰기 시작했다.
손편지를 놓아두거나,
딸이 좋아하던 플레이리스트를 조용히 틀어두거나.
감정은 말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우리는 사랑을 겪으면서 배운다.



실연은 상실이 아니라 발견


어느 날 딸이 조용히 말했다.
“그 아이와 끝났지만,
그 덕분에 내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은 알게 됐어.”

나는 딸을 바라보며 속으로 되뇐다.
그래, 이별은 자기를 마주하는 일이기도 하지.
너는 조금 더 너를 알아가고 있는 거야.


아이의 감정이 컸기에,
그만큼 회복의 시간도 길겠지만,
그 감정은 분명 너를 성장시킬 거라고 믿는다.



아빠의 한마디


나는 딸에게 조언하지 않으려 한다.
대신 내가 곁에 있다는 걸 알게 해주고 싶다.
실연이 아픔이 아닌, 자신을 다시 안아주는 기회가 될 수 있도록—
나는 너의 시간에 묵묵히 동행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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