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용돈이 아니라, 선택권을 준다는 것
“돈을 주는 게 아니라, 기준을 나누는 일입니다”
“아빠, 나도 용돈 줘.”
처음 아이가 그렇게 말했을 때,
저는 약간의 당황과 함께 작은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아, 이제 이 아이가 돈에 관심을 갖는 나이가 되었구나.
그 순간부터 고민이 시작됐습니다.
“얼마를 줘야 하지?”
“언제부터 줘야 하지?”
“그냥 주면 되는 걸까?”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제 고민의 중심은 금액이 아니라
‘어떻게 줄 것인가’에 가까워졌습니다.
많은 부모들이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초등학생에게 용돈은 얼마가 적당한가요?”
“일주일에 한 번? 한 달에 한 번?”
“조건부로 줄까? 그냥 줄까?”
하지만 저는 어느 순간부터 이렇게 생각하게 됐습니다.
‘용돈’은 결국 아이에게 선택권을 주는 일이다.
그 선택권은 단순히 물건을 고르라는 뜻이 아닙니다.
아이 스스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분별하고,
왜 그것을 선택했는지 설명할 수 있고,
후회하더라도 책임질 수 있게 만드는
작은 사회적 연습입니다.
우리 아이에게 첫 용돈은
일주일에 한 번, 3천 원이었습니다.
요즘 세상에서 3천 원은
뭐 하나 사기에도 모자란 돈일 수 있지만,
저는 굳이 그 금액을 택했습니다.
‘돈은 많고 적음이 아니라 기준을 만드는 도구’라는 걸 알려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첫 용돈을 주던 날,
저는 아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건 네 돈이야.
그런데 그냥 쓰는 게 아니라,
이번 주엔 어디에 쓰고 싶은지 한 번 적어보자.”
노트 한 장을 꺼내
아이가 사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들을 적게 했습니다.
– 편의점에서 젤리 사기
– 포켓몬카드 구매
– 친구랑 문방구 가기
– 엄마 생일 카드 만들 재료 사기
한참을 적고 나서,
저는 아이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만 골라볼래? 그리고 왜 골랐는지도 알려줘.”
그날 아이는
“엄마 생일 카드 재료”를 골랐습니다.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다음 주엔 젤리 사면 되니까. 이번 주엔 이걸 하고 싶어.”
그날 저는 깨달았습니다.
아이는 주어진 돈보다,
선택의 기회를 통해 성장한다는 것.
그 뒤로 우리 집에서는
용돈을 주기 전 반드시
“이번 주 선택 항목”을 적는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아이 스스로 고민하고,
그 고민의 흔적이 쌓이면
자연스럽게
소비의 기준과 소비 후의 책임이 따라옵니다.
이게 바로
‘돈’이 아니라 ‘기준’을 주는 교육입니다.
어느 날, 아이가 아무 계획 없이
편의점에서 사탕 3개를 샀습니다.
돈은 다 썼고,
후회는 바로 따라왔죠.
“아, 그거 말고 저기 문구세트 살 걸…”
저는 혼내지 않았습니다.
“그래. 그럴 수 있어. 다음 주엔 어떤 기준으로 써보고 싶어?”
실수는 아이가 더 좋은 기준을 만드는 기회가 됩니다.
혼내면 감정만 남지만,
같이 돌아보면 기준이 남습니다.
부모가 쓰는 돈의 모습은
그 자체로 아이에게 ‘기준’이 됩니다.
– 집에 쌓인 택배 박스
– 하루에도 몇 번씩 결제하는 배달앱
– “이번 달 카드값 미쳤다…”는 말
아이들은 그런 모습에서
돈이란 무엇이고,
소비는 어떤 감정과 연결돼 있는지
배워나가고 있죠.
그래서 저는 용돈을 줄 때
‘나도 기준을 보여줘야겠다’고 다짐합니다.
같이 가계부를 써보기도 하고,
“아빠도 이번 달에는 매일 먹는 커피 예산을 줄였어” 같은 말을
아이 앞에서 자연스럽게 꺼냅니다.
사실 용돈 교육은
돈보다 중요한 걸 가르칠 기회입니다.
스스로 사고하는 습관
자제하고 우선순위를 정하는 태도
결정에 책임지는 감정
이 모든 것은
‘얼마를 주는가’보다
‘어떻게 이야기 나누는가’에서 생겨납니다.
그렇기에 저는 용돈을
‘돈의 단위’가 아니라
‘대화의 단위’로 생각하려고 합니다.
많은 부모들이 오해합니다.
‘아이에게 선택권을 주면 방종하지 않을까?’
‘자유롭게 하게 하면 오히려 소비가 엉망이 되지 않을까?’
저도 그랬습니다.
처음엔 걱정이 앞섰죠.
“이걸 사면 어떡하지?”
“그 돈 다 게임에 써버리면 어쩌지?”
하지만 아이는
기준을 세울 기회를 가질 때,
자기 행동에 책임을 느낄 수 있는 존재였습니다.
어른들이 보기에 엉뚱해 보여도,
아이에게는 진지한 기준이 있는 선택이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기준이 ‘단단해지도록’
시간을 들이고 대화를 나누는 것입니다.
나중에 커서
돈을 벌게 되었을 때,
아이들은 결국 선택의 연속에 놓입니다.
월급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
저축과 지출의 비율은?
충동구매와 장기 계획 사이의 균형은?
그 모든 선택은
지금 용돈 3천 원을 대하는 태도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래서 저는 돈을 줄 때마다
단지 ‘사라질 돈’이 아니라
‘기억될 훈련’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넌 왜 그걸 골랐어?”
이 질문을 매주 반복해 줍니다.
한두 번은 대답이 모호하지만,
4주, 5주가 지나면 아이의 언어도 달라집니다.
“이번 주엔 친구랑 놀러 나갈 일이 많으니까,
간식보다 교통카드 충전이 더 필요해.”
“이건 갖고 싶은 거였지만, 다음 주엔 엄마 생신이 있으니까 이번 주는 아껴야 해.”
이런 말이 아이의 입에서 나오는 걸 듣는 순간,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아이도 기준을 세울 수 있다.
단지 시간이 걸릴 뿐이다.
한 번은 아이가 물었습니다.
“아빠, 왜 요즘엔 커피를 안 사요?”
그때 저는 솔직하게 말해줬습니다.
“이번 달엔 독서모임 책을 3권 샀거든.
그래서 커피는 집에서 타 마시기로 했어.”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습니다.
“그럼 나는 젤리보다 색연필을 사야겠다.
곧 미술 시간 많아지잖아.”
소비는 말보다 빠른 교육입니다.
말로 설명하기보다,
우리의 소비 습관을 보여주는 게
더 큰 영향력을 줍니다.
용돈을 매개로 아이와 이야기하는 순간,
그건 돈 이야기를 넘어섭니다.
아이의 관심사,
우선순위,
관계에 대한 태도,
감정 조절 능력까지 드러납니다.
그래서 매주 아이와 나누는
‘용돈 대화’는
우리 가족의 철학을 담는 대화의 그릇이 됩니다.
“돈 쓰지 마”가 아니라,
“어떻게 쓰고 싶은지 생각해 볼까?”로 시작하면
아이도 마음을 열게 됩니다.
이번 주 네가 가장 필요하다고 느낀 건 뭐야?
사려는 걸 생각하면 어떤 기분이 들어?
지금 사고 싶은 것과, 나중을 위해 아껴야 할 것 중에서 어떤 선택을 할래?
이런 질문들이
아이에게 사고력을 키워주고,
자신만의 기준을 가질 수 있게 도와줍니다.
용돈은 결국 ‘돈’보다
‘관점’을 길러주는 도구입니다.
아이가 커서
월급을 받고,
카드를 만들고,
스스로 예산을 짜게 되는 날이 오면
나는 지금 이 시간이 참 고마울 것 같습니다.
그 모든 선택의 순간에
한 조각이라도
이 용돈 수업의 기억이
기준으로 남아 있길 바라며,
나는 오늘도 3천 원짜리 질문을 건넵니다.
다음 이야기
3화. “갖고 싶은 것”과 “필요한 것”의 차이를 가르치는 법
– “진짜 필요한 건, 물건이 아닐 수도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