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나는 도서관으로 향합니다. 하루를 마무리하고 책을 펼치는 이 시간은, 나 자신과 마주하는 가장 솔직한 순간입니다. 나는 군인으로 살아왔습니다.
밤이 되면, 아이들이 잠든 집에 조용히 들어가 가방을 내려놓고 다시 책장을 펼칩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고, 누구보다 가족을 지키고 싶었던 나는, 오히려 가족 곁에 가장 없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군인이었던 지난 10년 동안, 나는 늘 ‘국가’라는 이름 아래, 그리고 ‘부서’라는 울타리 안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나라의 부름이 있으면 언제든 달려가야 했고, 부서의 목표가 곧 내 삶의 목표가 되었습니다. 가장 소중한 사람들에게는 "잠깐만"을 반복하면서, 가장 소중하지 않은 일들에는 "지금 당장"을 외쳐야 했던 시간들이었습니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사명감을 안고 살아왔지만, 그만큼 남편으로서, 아빠로서 자리를 비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동안 우리는 주말부부였습니다.
그 시간 동안, 나의 아내는 홀로 두 아이를 키워야 했습니다. 아빠 없이 자라는 아이들을 위해 애쓰는 아내의 모습은 늘 안타까웠지만, 가까이에서 함께할 수 없는 현실이 야속하기만 했습니다. 아이들은 아빠의 빈자리를 ‘사진’과 ‘기다림’으로 채워야 했고, 주말이나 휴가가 아니면 아이들의 얼굴을 마주하기도 어려웠습니다. 같이 걷는 시간보다 멀리서 지켜보는 날들이 더 많았습니다. 가장 소중한 사람들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지만, 마음과 현실은 늘 엇갈렸습니다.
아내와 저는 평일엔 각자의 도시에서 살아야 했고, 주말이면 짧은 시간을 쪼개어 가족을 만나러 갔습니다. 그마저도 회의나 비상근무로 미뤄지는 날이 많았습니다. 아이들은 "아빠 언제 와?"를 달고 살았고, 아내는 혼자서 두 아이의 일상과 감정을 모두 감당해야 했습니다. 주말에만 잠시 스쳐 가듯 만나는 아빠는, 어느새 ‘늘 곁에 있는 존재’가 아닌 ‘가끔 오는 손님’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나는 사랑하는 가족 앞에서, 가장 미안한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어느 날, 도서관에서 우연히 집어든 책 한 권이 나를 바꿔놓았습니다. 처음엔 그저 마음을 달래기 위한 선택이었지만, 점차 그 책들이 나를 되돌아보게 만들었습니다. 내가 얼마나 아이들의 하루에 무관심했는지, 아내의 고단함을 얼마나 당연하게 여겼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아빠라는 이름에 얼마나 어울리지 않았는지를 깨닫게 됐습니다. 그 책은 『내 아이를 위한 감정코칭』이었습니다. 책은 말했습니다. "아이의 감정을 다루지 못하는 부모는, 아이의 마음속에 다리를 놓을 수 없다."
나는 그동안 아이들이 느끼는 작은 감정들을 무심히 지나쳐왔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았습니다. 혼내는 대신, 아이의 마음을 먼저 읽어주고, 고치려 하기보다 옆에 있어주는 것. 그 간단한 원칙이 왜 그렇게 어려웠는지 부끄러웠습니다.
하루 한 권. 그날 이후 나는 매일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책 속에서, 나는 아빠가 되어가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늦었지만, 함께 걷고 싶었습니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빨리 자라고, 그만큼 아빠가 비운 시간은 빠르게 지나갑니다.
아들이 처음 받아쓰기 시험에서 100점을 맞았을 때, 딸이 유치원에서 아빠 그림을 그려 ‘보고 싶어요’라 적었을 때, 나는 곁에 없었습니다.
육체적으로 떨어져 있었던 것만이 아니었습니다. 마음도, 관심도, 대화도, 아이들과 나 사이에는 늘 ‘보고 싶다’는 말이 떠 있었습니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매일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책 속에는 내가 몰랐던 육아가 있었고, 내가 외면했던 감정들이 있었고, 무심히 지나쳤던 아내의 눈빛이 있었습니다. 책을 읽으며 나는 생각했습니다. ‘지금이라도 아이들에게 더 나은 아빠가 되고 싶다.’
‘조금 더 이해해 주고, 조금 더 들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책장을 넘길 때마다, 나는 마음속으로 아이들에게 이야기합니다.
"아빠는 지금 배우고 있어. 조금 늦었지만, 이제는 함께 걷고 싶어."
도서관은 어느덧 내 하루의 마지막 목적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는 매일 한 걸음씩, 더 좋은 아빠,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어느 날 문득, 나는 생각했습니다. ‘나보다 더 어린아이들을 키우는 아빠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누구보다 아빠가 되는 일이 서툴렀습니다. 사랑했지만 표현하지 못했고, 지키고 싶었지만 늘 멀리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이들이 성장하는 시간은 너무 빠릅니다. 처음 한글을 읽던 모습, 처음 두 발자전거를 타던 순간, 손을 꼭 잡고 길을 걷던 그 짧은 시간들. 그 모든 순간은 생각보다 훨씬 빨리 지나가 버립니다. 그렇기에 나는 말하고 싶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아이 곁에 있어주세요." "조금이라도 더 자주, 아이의 눈을 들여다봐 주세요."
책이 나를 바꿔주었듯이, 어쩌면 당신도 아주 작은 책 한 권을 통해, 아주 작은 문장을 통해, 아빠로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을지 모릅니다.
늦었다고 생각해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건, 조금씩이라도 배우려는 마음, 오늘 하루 아이를 한 번 더 바라봐 주려는 노력입니다.
책을 읽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아이들은 완벽한 아빠를 바라지 않는다는 걸. 아이들은 그저, 함께 웃어주고, 함께 울어주고, 옆에 있어주기를 바랄 뿐이라는 것을. 그래서 나는 매일 도서관으로 퇴근합니다. 책을 펼치며 다시 다짐합니다.
"오늘보다 조금 더 나은 아빠가 되기 위해." "어제보다 조금 더 따뜻한 사람이 되기 위해."
이 글이, 어딘가에서 아이를 위해 애쓰고 있을 또 다른 아빠에게 작은 위로와 응원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