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꿈을 꾸다
밤 11시, 서울 지하철 3호선 막차.
창밖의 불빛은 빠르게 스쳐 지나가고,
귓가에 흐르는 잔잔한 피아노 선율은
오늘 하루의 끝을 조용히 감싸줍니다.
사람들이 하나둘 내리고, 어느새 칸 안에는 나 혼자.
그제야 숨을 내쉽니다.
낮에는 너무 많은 소리들이 겹쳐 들려서
내 마음이 무슨 말을 하고 있었는지
듣지 못합니다.
그래서 나는 밤이 좋습니다.
조용하고 느리고,
누구에게도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니까요.
마흔이라는 나이는 참 애매합니다.
젊지도 늙지도 않고,
뭔가를 새로 시작하기에는 조심스럽고,
그렇다고 다 이룬 것도 아닙니다.
누군가는 안정이라 말하고
누군가는 정체라 부르는 이 시기.
나는 그 사이 어디쯤에 조용히 서 있습니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고,
가정을 꾸리고, 회사에 다니며
나는 오랫동안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라
“해야만 하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게 나쁘다는 말은 아닙니다.
책임이란 건, 결국 사랑의 다른 이름이니까요.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나는 내 꿈을 접었고,
내 시간을 쪼개서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그 삶이 길어질수록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오릅니다.
"나는 아직도 꿈을 꿔도 될까?"
아이의 장래희망을 묻다가
문득 나의 장래희망이 뭐였는지 떠오르지 않았고,
퇴근길에 들른 서점에서
베스트셀러 대신 글쓰기 책에 손이 가는 나를 보며
나는 다시 꿈을 떠올렸습니다.
마흔이 되면, 인생이 어느 정도 정리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정리되기는커녕
더 복잡해졌고, 더 많은 걸 감춰야 했습니다.
감정을 숨기고, 욕심을 누르고,
현실에 맞게 줄이고, 포기하고,
그렇게 어른이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도, 밤이면 글을 쓰고 싶어 집니다.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는 말을,
내 삶을 기록하는 문장을,
작은 서랍에 몰래 간직하고 싶어 집니다.
마흔이라는 숫자는
“이제는 그럴 나이가 아니다”라고 말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나이야말로,
진짜 나를 위한 삶을 시작할 수 있는 시기입니다.
아이들이 커가며 나에게 조금씩 시간을 돌려줄 때,
부부 사이의 신뢰가 무르익어 서로를 지지해 줄 수 있을 때,
회사에서 나만의 리듬을 찾게 되었을 때 —
이 모든 순간들이
나를 위한 ‘조용한 시작’을 가능하게 합니다.
《마흔, 꿈을 꾸다》는
내가 다시 꺼내 든 꿈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직장인의 삶 속에서,
아버지의 자격 안에서,
한 남자가 어떻게 다시 ‘자기 자신’이라는 이름을 붙잡았는지에 대한 기록입니다.
큰 성공도 없습니다.
환상적인 드라마도 없습니다.
하지만 매일 도서관으로 퇴근하며,
브런치에 한 편의 글을 올리며,
나는 조금씩 나를 되찾아가고 있습니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혹시 같은 시간 속에 있다면
이 이야기들이
작은 공감이 되길, 조용한 위로가 되길 바랍니다.
우리는 여전히 꿈을 꿔도 됩니다.
조금 늦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때로,
늦게 피는 꽃이 가장 깊은 향을 남기기도 하니까요.
나는 오늘도, 조용히 꿈을 꿉니다.
누군가의 아버지이자
한 사람의 남편이면서도
동시에,
단 하나뿐인 나 자신으로서.
꿈을 꾸는 마흔,
그 여정을 이제부터 당신과 함께 나누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