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퇴근길에 노트를 꺼내는 이유
나는 가끔, 아주 가끔
퇴근길 지하철 안에서 조용히 노트를 꺼낸다.
그 노트는 무슨 거창한 다이어리도 아니고
비싸게 산 문장 노트도 아니다.
회사 근처 문구점에서 1,500원 주고 산 A6 사이즈의 얇은 메모지다.
내 글씨는 엉망이고, 줄도 삐뚤고, 내용은 어지럽다.
그런데도 나는 그 노트를 꺼낼 때마다
내가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든다.
누군가는 낙서를 하고,
누군가는 글을 쓰고,
나는 그냥 “조용히 나한테 말을 건다.”
오늘도 회사에서 몇 번이고 참았다.
화를, 억울함을, 상처받은 마음을.
욕 한마디 하고 싶었지만,
팀원들 앞에서, 후임들 앞에서, 또 가족을 생각하며
나는 조용히 웃는 척했다.
그게 어른이라는 걸 안다.
그게 직장생활이고, 아버지고, 남편이라는 걸 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게 자꾸 쌓인다는 거다.
마치 종이컵 안에 물을 계속 붓는 것처럼
어느 순간부터는
“나”라는 컵이 넘치고 있다는 걸 느낀다.
그래서 노트를 꺼낸다.
내가 오늘 꾹 눌러 삼킨 말,
내가 오늘 너무 아팠지만 못 말한 그 순간,
그리고 —
사실은 말이지,
내가 아직도 하고 싶은 게 있다는 고백을,
그 얇은 노트에 몰래 적는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나의 ‘진짜 꿈’을.
웃기지 않나.
나는 서른아홉 살, 두 아이 아빠다.
회사에서 중간관리자라는 직함도 있고
사람들 앞에선 점잖은 체 하면서 지낸다.
하지만 사실은,
퇴근하고 나면
노트에다 이렇게 적고 있는 사람이다.
“글을 쓰고 싶다.”
“브런치 작가가 되고 싶다.”
“책을 한 권 내고 싶다.”
“언젠가 아이들이 내 글을 읽었으면 좋겠다.”
이런 말을 하면,
사람들은 아마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 나이에?"
"애들도 있는데 무슨 글이야."
"시간 남아도냐?"
"돈 되는 거야 그게?"
응, 맞다.
돈도 안 되고, 시간도 없고,
남들은 다 그냥 버티면서 사는데
나 혼자 멋 부리는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말이다.
이거 하나는 분명하다.
노트에 그 한 줄을 적을 때만큼은
나는 내가 살아 있는 것 같다.
누구의 아빠도, 누구의 직원도 아닌
온전히 '나'로서 존재하는 느낌.
그거 하나로
나는 오늘도 버텼다.
요즘엔 글을 쓴다는 게
세상 앞에 자신을 벗겨내는 것 같아 두렵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나는 언젠가
‘사라질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오늘도 퇴근길에 노트를 꺼냈다.
버려진 것 같은 하루였지만,
그 안에서 한 문장을 남긴 나는
여전히 꿈을 꾸는 사람이다.
이제 그 문장들을
여기 브런치에 남겨본다.
혹시 모르지,
누군가의 하루에도
나의 글 한 줄이 닿을지.
“내가 나에게 가장 솔직해지는 순간은,
펜을 쥐었을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