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꿈을 묻고, 정답을 외우던 시절
“너 커서 뭐 되고 싶어?”
초등학교 때부터 익숙했던 질문이다.
그땐 이 질문이 꽤 자주 들려왔다.
선생님도 물었고, 부모님도 물었고,
심지어 친구들끼리도 쉬는 시간에 묻곤 했다.
우리는 그때마다
정답처럼 외운 꿈을 말했다.
“과학자요.”
“선생님이요.”
“축구선수요.”
“의사요.”
“연예인요.”
그 말에는 진심이 있었을까?
글쎄.
어쩌면 있었을 수도 있고,
어쩌면 그저 “어른들이 듣기 좋아하는 말”
이었을지도 모른다.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꿈은 말하는 게 아니라, 사는 것’이라는
사.실.을.
어른들이 진지하게 꿈을 물으면
우리는 그에 걸맞은 정답 같은 꿈을 외워서 내놓았다.
내가 되고 싶은 게 아니라,
“이렇게 말하면 칭찬받겠다”는 꿈을.
나는 그 게임에서 꽤 성실한 플레이어였다.
교과서를 잘 외우듯,
꿈도 잘 외웠다.
“장학금 받을 수 있는 꿈”
“부모님이 자랑스러워할 만한 꿈”
“대입 자소서에 쓸 수 있는 꿈”
그렇게 정답은 늘 바뀌었다.
의사 → 판사 → 외교관 → 기자 → 공무원 →
공기업 → 그냥 ‘월급 잘 나오는 사람’
하지만 그 사이,
진짜 내 마음은 단 한 번이라도 물어본 적 있었을까?
"나는 뭐가 하고 싶은 거지?"
"나는 어떤 순간에 가슴이 뛰지?"
"나는 뭘 하면 계속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 그런 질문은 늘 뒷전이었다.
그건 너무 비현실적이고,
너무 철없는 일로 여겨졌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나는 꿈을 '정답지'처럼 외우다가
어느새 ‘꿈 없는 어른’이 되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절의 나는
꿈을 꾸지 못한 게 아니라
꿈을 감히 ‘내 말’로 말할 수 없었던 것 같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한 삶,
누군가의 기준에 맞춘 목표,
누군가의 인생 계획 안에 들어 있는 듯한 진로.
그 모든 걸 해왔지만
결국, 내가 가장 나답지 않았던 시절이기도 했다.
요즘 내 아이가
"아빠, 나는 게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어"라고 말할 때
나는 그 말에 “그래도 공부는 해야지”라는 말을 삼킨다.
그 말 한 마디가,
그 아이의 말문을 닫게 만들 수 있다는 걸
나는 누구보다 잘 아니까.
왜냐하면 나도 그랬으니까.
“그건 돈이 안 돼.”
“그건 너무 어려워.”
“그건 현실적이지 않아.”
라는 말들로
내 꿈은 매번 수정당했다.
그래서 이제 나는 다르게 살고 싶다.
비록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을
조용히 꺼내보고 싶다.
나는 글을 쓰고 싶다.
어릴 때처럼 아무도 묻지 않아도
혼자서 무언가를 상상하고,
단어를 고르고,
문장을 이어가고 싶다.
그게 지금의 나에게는
가장 나다운 꿈이기 때문이다.
어릴 때는 꿈을 물으면 정답을 외웠지만,
마흔이 된 지금,
나는 더 이상 정답이 아닌
‘내 말’로 대답하고 싶다.
그래서 이 글도,
누군가가 묻지 않았지만
내가 나에게 정직하게 던지는 대답이다.
“마흔의 꿈은 정답이 아니다.
그건, 나에게 돌아오는 질문에 대한 솔직한 대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