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아이의 장래희망을 듣고 나의 것을 떠올리다
“아빠, 나 크면 게임 만드는 사람 될래.”
어느 날 저녁, 아이가 밥을 먹다 말고
그렇게 말했다.
나는 젓가락을 잠시 멈췄다.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며
내 입에서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오려는 말을
꾹 참았다.
“그래도 공부는 해야지.”
“그건 현실적으로 어려워.”
“그런 건 아무나 하는 게 아니야.”
이런 말들이 목 끝까지 올라왔지만,
나는 조용히 물을 한 모금 마시며
그냥 이렇게 말했다.
“그래? 무슨 게임 만들고 싶어?”
아이의 눈이 빛났다.
자기가 구상한 게임 캐릭터와 배경,
재미있는 기술과 레벨을
숨 가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이상하게도
마흔이 넘은 내 마음 어딘가가
조용히 아려왔다.
나도 그랬던 시절이 있었다.
세상에 설명할 필요 없이
그냥 좋아서 하고 싶던 것들.
아버지에게 신이나서 말했던
수없이 많은 꿈들..
누가 칭찬해주지 않아도
밤을 새워 몰입하던 열정.
하지만 언제부터였을까.
“잘할 수 있는 일”만 골라서 하게 된 건.
“먹고살 수 있는 일”만 남기게 된 건.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는 선택”만 남기게 된 건.
나는 아이에게 꿈을 응원하는 척하지만,
사실 내 안의 ‘포기한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조용히 뒤를 돌아본다.
(조심스레 나한테 질문을 던져본다.)
그 질문 앞에서
어떤 날은 고개를 끄덕이고,
어떤 날은 눈을 감는다.
아이의 꿈을 들으며,
나는 나의 장래희망을 떠올렸다.
어릴 적 나는
신문을 오려서 가짜 기사 쓰기를 좋아했다.
어른 흉내를 내며 소설책을 흉내 내기도 했다.
‘작가’라는 단어가 뭔지도 모른 채
종이 위에 무언가를 쓴다는 그 행위 자체에
묘한 기쁨을 느꼈다.
그리고 지금,
나는 브런치라는 공간에
다시 펜을 든다.
때로는 글을 쓰기 어려울때도 있다.
누군가는 힘을 내라고 응원해주고
누군가는 내 속은 모른채 이런 저런 비난도 한다.
아이의 꿈이
내 꿈을 다시 깨운 셈이다.
그래서 나는 아이에게 꿈을 허락하는 게 아니다.
아이 덕분에, 내 꿈이 살아났기 때문에
나는 응원할 수 있는 거다.
꿈을 꾸지 않는 어른은
꿈을 꾸는 아이 앞에서
침묵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꿈을 다시 꾼 어른은
아이의 열정을 경험처럼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자주 말한다.
“애 키우면서 배우는 게 더 많다”고.
맞다.
나는 아이를 통해
내가 멈춰버린 시절을 다시 본다.
그때 그 마음을 이제라도
되살리고 싶어진다.
오늘 아이는 나에게 물었다.
“아빠는 크면 뭐가 되고 싶었어?”
나는 망설였다.
그러다 솔직하게 말했다.
“…글 쓰는 사람이었어.”
아이의 대답은 간단했다.
“그럼 지금도 할 수 있지.”
그 말에 나는 아무 말도 못 했다.
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
다시 펜을 드는 손이
살며시 꿈틀거렸다.
“아이의 꿈은, 멈춰 있던
내 꿈을 다시 걷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