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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형 Apr 03. 2024

[2주간이주형]통영 굴 페스티벌

통영, 뉴욕, 결혼식장, 경산에서 먹은 굴 이야기

굴을 먹어 보겠다고 했다. 통영의 겨울 밥상은 굴이 없다면 성립할 수가 없었다. 다담아해물뚝배기의 모든 요리에는 굴이 들어갔다. 이재진은 굴을 못 먹는 나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다른 데 갈래? 아니 여기 좋아. 우리 뒤편에 앉은 아주머니 두 분은 주문을 하지 못하고 초조한 듯 메뉴판을 한참 살폈다. 여기 굴 안 들어가는 것은 없어요? 우리 굴 못 먹는데. 내가 속으로만 생각하던 질문이었다. 그들은 결국 마땅한 선택지를 찾지 못하고 다른 식당으로 떠났다. 그러고 나니 무슨 이유에선지 굴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근사한 곳에 와서 특정 식재료에 대한 단순한 호불호 때문에 식사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굴을 못 먹으면 이제부터 먹기 시작하면 되는 것이 아닐지? 새해도 다가오는데 그런 나약한 생각을 버리자! 정식을 주문하면서 다짐했다. 나는 굴 먹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주형 진짜 괜찮겠어?     


식탁 위에서는 굴의 축제가 벌어졌다. 모든 요리가 동시에 나왔다면 오히려 감흥이 적었을 것이다. 락 페스티벌 라인업처럼 서서히 흥을 고조시키는 방향으로 굴 요리가 큐레이팅되어 단계별로 나왔다. 1단계: 굴 무침. 야채 및 양념장과 생굴을 버무린 요리였다. 양념장 맛이 강한데도 모든 재료가 싱싱해서 먹는 내내 입가가 상쾌했다. 2단계: 굴탕수. 탕수육처럼 만든 굴 튀김이었다. 레몬향이 나는 탕수육 소스가 이미 뿌려져 있었기에 어렵지 않게 즐겼다. 3단계: 굴전. 명절 분위기의 음식이었다. 정성스럽게 부친 동그란 전 한가운데에 싱싱한 굴이 통째로 들어갔다. 4단계: 굴뚝배기. ‘다담아해물뚝배기’라는 가게 이름이 대표하듯 시그니처 디쉬에는 굴을 비롯한 각종 진귀한 해산물이 한가득 담겼다. 5단계: 석화. 좋은 재료는 적게 조리할수록 맛있다는 말이 있다. 그 말을 증명하듯 가장 싱싱하고 좋은 굴이 날 것 그대로 상에 올랐다. 배부르게 먹고 식당을 나서면서 외쳤다. 평생 먹을 굴 오늘 다 먹었어! 내일은 꼭 충무김밥 먹자. 다시 태어나는 건 힘든 일이야.     


다담아해물뚝배기에 가기 전까지 태어나서 먹어본 굴은 불과 10마리 남짓이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먹어본 굴을 전부 나열할 수도 있다. 첫 굴은 가든파이브 근처 어느 결혼식장에서 먹었다. 출장뷔페로 차려진 피로연장의 모든 음식 위에는 흰 패브릭 덮개가 올라가 있었다. 굴은 미지근했다. 이게 무슨 맛이지? 성인이 되기 전에 먹었던 거의 유일한 굴이 미지근하고 덜 싱싱했다는 점에서, 나의 굴 여정은 첫 단추를 잘못 꿴 것이나 다름없었다. 십 년이 흐르고 군산 터미널 근처의 횟집. 짧은 여행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 점심을 먹었다. 군대에 들어가기 직전이었기에 무슨 오기가 발동했는지 굴을 세 개나 먹었다. 당분간은 먹을 기회조차 없을 음식이라 생각해서 돌발 행동을 벌였던 것 같다. 횟집에서 6명이 함께 점심을 먹은 뒤 2명이 크게 배탈이 났다. 병원에서는 "겨울에는 그럴 수 있다"며 굴을 범인으로 지목했다.      


뉴욕 브로드웨이의 어느 식당. 해외 스튜디오 답사 마지막 날 교수님께서 근사한 저녁을 사주셨다. 식당에서는 세계 각지에서 온 진귀한 굴을 팔았다. 오이스터 바가 뭔지도 처음 알았다. 굴을 한 개씩, 마치 바에서 위스키를 샷으로 내어주듯이 파는 모습이 신기했다. 롱 아일랜드 굴, 일본 굴, 메인 굴, 오레건 굴. 화려한 굴 라인업이 돋보였지만 다들 맛있게 먹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한 개 가격이 거의 만 원인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내가 감자튀김을 먹는 사이 다른 친구들이 내 굴을 먹어주었다. 친구들은 굴을 먹지 못하는 내 식성을 오히려 반가워했다. 굴의 맛도 모르는 당신이 불쌍해요!     


설날을 맞아 경산 할머니댁에 내려갔다. 거실에 둘러앉아 새해 떡국과 함께 김장김치를 먹었다. 고모가 담그셨다는 새빨간 김장김치에는 굴을 비롯한 각종 양념이 다부지게 들어갔다. 이야 굴 맛있겠다!  그런데 식사를 하면서 지켜보니 나랑 본관이 같은 사람들만 굴을 먹지 못했다. 아 이게 유전자 때문이었다니! 정말로 다시 태어나야 했던 것이다. 사촌 형이 "내가 먹을 수 있는 굴은 굴소스뿐이다."라고 선언하는 것을 듣고 반가움과 탄식이 교차했다. 내가 매번 하던 말과 정확하게 같은 말이었기 때문이다.


다담아해물뚝배기에서의 굴 도전은 4단계에서 종결되었다. 이재진은 석화를 즐기면서 내게 거듭 물어보았다. 주형 진짜 안 먹을래? 4단계까지 힘들게 왔는데 5단계 도전도 해야 하지 않겠냐는 권유였다. 식탁 위에 바케스째로 놓인 굴들은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싱싱해 보였다. 이튿날 중앙시장을 둘러보았다. 통영의 명물이라는 꿀빵을 먹고 진열된 각종 해산물들을 수족관처럼 구경했다. 그런데 돌무더기를 내어놓고 파는 가게들이 많았다. 양파망 같은 망태에 들어간 검은 돌들이 꼭 개비온을 연상시켰다. 개비온은 철사 망태 속에 돌을 채워 넣는 건축기법인데, 제주도 카페 담장 같은 곳에 자주 쓰인다. 여기는 돌무더기가 많네? 내가 신기해하는 눈초리로 바닥의 돌탑들을 살피자 이재진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직 한참 갈 길이 멀어 보인다는 표정이었다. 주형, 이건 돌이 아니야 굴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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