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성과 능력보다 학벌을 따지는 세상
한 번의 시험이 한 사람의 일생에 있어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는 경험을 우리는 자주 맞닥뜨리게 된다. 그것은 아직 세상을 모르는 시기, 갓 20살에 접어드는 약관을 맞이하기 전인 고등학교 3학년 말에 치르게 되는 대입시험이다.
겨울 찬바람을 맞으며 새벽부터 입시장에 들어가 오전부터 오후까지 온갖 심력을 소모하며 치르는 이 시험은 그저 어느 대학에 가게 되는가를 가르는 기준점에만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한참 더 나아가서 한 사람의 일생을 따라다니며 타인들과 기업들에게 그가 어느 대학 출신인가를 따지는 그리고 괜찮은 사람인지 아닌지를 판별하게 하는 기준으로 작용한다.
30년 가까이 직장생활을 하면서 면접관으로서 수많은 면접도 해보았고, 그렇게 뽑은 직원들과 함께 일해본 경험에 의하면 단지 학벌만으로 그 사람이 괜찮은지 아닌지를 판별한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객관적 근거도 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업들은 여전히 인재 채용 시 학벌을 가장 중요한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다. 설마 기업의 인사담당자들이라고 학벌이 곧 능력을 의미하지는 않음을 모르겠는가. 알지만 사람을 검증한다는 것이 정말 어렵기에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학벌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러한 성향은 IT 및 보안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오랫동안 재직했던 모 보안기업도 한때 신입사업을 채용하면서 제출된 지원서 중 지방대학교 출신자들은 그냥 휴지통으로 보낸다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있으니 말이다. 기업들이 대외적으로는 학력무관, 성별무관, 인성과 능력위주의 채용을 아무리 소리쳐도 뿌리 깊이 박혀있는 학벌을 따지는 관습을 일소하기에는 아직도 헤쳐가야 할 길이 멀다.
역설적이게도 뛰어난 해커(화이트해커)들 중에는 고졸 출신들이 꽤 있다. 일찌감치 어려서부터 컴퓨터에 흥미를 가지고 스스로 공부한 그들이다. 각종 컴퓨터경진대회와 해킹대회에 참여하면서 경험과 기술을 쌓아 20살이 되기도 전에 이미 뛰어난 실력을 갖추게 된 그들에게 대학에서 가르치는 교과과정은 너무 쉽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자신들을 가르쳐야 할 교수들보다 더 뛰어난 컴퓨터 실력과 해킹기술을 갖춘 그들을 품기에는 지금 대학들의 학습 수준이, 학습환경이 너무도 열악하다. 그래서 과감히 대학 진학을 스스로 포기하고 전문해커의 길로 용감히 나선 것이다.
20대의 젊은 나이에 고졸 출신으로 오직 열정 하나만으로 보안기업을 창업해 창업자이자 대표로 열심히 일하는 있는 한 젊은 해커분을 알고 있다. 고졸이라는 이유로 기업들에게 외면받아 갈 곳이 없는 아직은 어린 해커들을 고용해 힘들지만 꿋꿋이 사업을 영위해 나가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그 용기에 진심으로 감탄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역설적인 상황을 만나게 된다. 그 젊고 용감한 창업자분이 외부의 영향(압력)으로 어쩔 수 없이 대학을 진학해 졸업했기 때문이다. 회사를 운영하고자 하니 사회가, 기업들이, 정부가 학벌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정부의 과제를 제안하는 경우에도 학벌을 요구하고 때로는 학점도 요구하는 현실을 우리는 살고 있다. 학벌이 없으면 사업 수행은 고사하고 아예 사업참여도 불가능한 경우도 다반사다. 회사를 영위하고 키우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학벌이 필요하고, 그렇지 않으면 다른 보안기업들의 하청업체에 머물러야만 한다. 더 나아가 전문인력의 수행단가도 전문성이나 능력보다는 학벌을 기준으로 산정되어 있다. 아무리 뛰어난 해킹능력을 가지고 있어도 대학을 나오지 않았으면 돈을 적게 받으라고 대놓고 강요하는 것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인 것이다.
능력보다는 학벌을 중시하는 풍조가 IT 및 보안업계에도 아직 만연하다. 학벌이 좋으면 코딩을 잘하고 설계도 잘하고 개발도 잘하는지는 난 모르겠다. 학벌이 좋으면 해킹도 잘하고 컴퓨터도 빠삭하게 잘 아는지도 난 모르겠다. 하지만 오랜 사회생활을 통해 하나는 깨우친 듯하다. 결국 사람에 대한 평가는 그 사람의 품성과 능력을 보게 된다는 것을.
사람의 향기는 학벌이나 배경이 아니라 품성과 능력에서 만들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