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당은 부지런할 뿐 아니라 창의적이다
공포영화를 좋아하고 웬만한 공포영화는 무서움을 타지 않는다고 자신하는 나지만 유난히 기억에 남는 공포영화가 있다. 일본 공포영화 <링>. 1999년에 개봉해 공포영화의 한 획을 그은 작품으로 평해질 정도로 화제가 됐다. 영화 내용 중 가장 충격적인 장면으로 기억되는 것은 주인공 사다코의 원혼이 TV 화면 속에서 나오는 장면으로 아직까지 여러 매체에서 패러디될 정도로 화제가 되었다.
그런데 영화 <링>에서 주목해야 할 또 하나의 특징이 있다. 원혼의 저주를 푸는 방법이다. 저주를 풀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에게 비디오를 복사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다른 사람을 희생시켜 저주를 떠넘기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으로 표현되고 있다.
영화를 보고 그 참신한 발상에 감탄했을 때는 그저 소재를 잘 개발했구나 정도의 감탄이었을 뿐이었다. 그때는 잠시 잊고 있었다. 해커들이 얼마나 부지런하고 창의적인 악당인지를. 몇 년 후 악성코드 중에 아주 악랄하고 사람의 가슴을 후벼 파는 악질 중의 악질 악성코드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사람에게 저주를 걸어 괴롭히는 악성코드가 나타나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한때 기승을 부리던 랜섬웨어 악성코드 '팝콘타임'이 그 주인공이다. 랜섬웨어는 PC 문서를 인질로 잡고 희생자에게 비트코인을 지불할 것을 협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팝콘타임'은 비트코인을 지불하지 않아도 문서를 해제할 수 있는 복호화 키를 무료로 제공받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겠다고 설명한다. 나를 대신해 랜섬웨어에 감염될 2명의 희생자 정보를 제공해 주는 대가로 말이다.
이 악성코드를 보고 느낀 생각은 그 섬뜩하고 잔인한 수법에서 악성코드를 제작한 해커가 영화 <링>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자신이 살기 위해 죽음의 비디오테이프를 복사하여 다른 사람에게 제공하여 저주를 떠넘기는 영화처럼, 자신이 피해를 보지 않기 위해 다른 두 사람을 랜섬웨어의 희생자로 해커에게 떠 넘기는 방식은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
게다가 이러한 공격 방식은 해커에게 놀라울 정도의 효율성을 제공한다. 1명이 2명, 2명이 4명, 4명이 8명으로 증가하는 기하급수적 희생자 증가가 가능하다. 다단계 피라미드와 같은 증식이다. 증식의 결과는 비트코인을 통한 검은 수입의 증대와도 연계된다.
선택의 기로에 빠진 피해자의 상황은 프랑스의 사회심리학자 로랑베그가 <도덕적 인간은 왜 나쁜 사회를 만드는가>에서 언급한 '집단 안에서의 탈개체성'의 순간에 빠져있는 듯하다. 그는 "집단 속에서는 개인의 도덕적 자의식이 약화되고 평소의 개인적 신념과 모순되는 행동을 저지르기가 수월해진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많은 피해자들이 자신 대신 누군가를 희생시켰을 수 있다는 슬픈 진실에 직면해야 할 수 있다.
악성코드의 진화가 예측하기 더 어려워지고 있다. 그저 누군가의 컴퓨터를 훼손하거나 그 안의 정보를 훔쳐가는 수준에서 정보를 인질로 잡고 돈을 요구하는 형태를 거쳐 인간의 가슴속을 후비는 수준으로 진화하고 있다. 인간의 본성을 시험하고 있다. 혼자 저주를 피하는 대신 다른 두 사람을 희생하라는 잔인한 랜섬웨어의 저주. 현실에서 저주에 걸린 희생자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하고 있을지,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