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개인정보를 둘러싼 전쟁 중
세계를 이끌어가는 많은 국가 간 협정을 두고 우리는 '라운드'라는 용어를 붙인다. 많이들 아는 라운드로는 '우루과이 라운드'와 '그린 라운드'를 들 수 있다.
'우루과이 라운드'는 세계 무역 질서를 이끌어 온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 체제를 다자간 무역기구로 발전시키려는 협상을 말하고, '그린 라운드'는 오염된 지구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세계 여러 국가들의 다자간 협상을 의미하는 단어다. 각종 뉴스와 신문기사 등에 자주 소개되어 일반인들에게도 친숙한 단어들이다.
여기 또 하나의 라운드가 있다. 바로 '프라이버시 라운드'. 자국민의 개인정보보호를 위해 세계 여러 국가들이 벌이고 있는 다자간 협상을 의미하는 용어로, 뉴스 등의 매체에 거론되지 않아 아직 일반인들에겐 익숙하지 않다.
오래전부터 세계 여러 나라들은 해외로 유출되는 자국민의 개인정보를 보호하기 위한 노력을 해왔다. 유럽연합(EU) 역시 미국(더 정확히는 미국의 글로벌 기업들)이 주도하는 세계 디지털 시장에서의 주도권 회복을 위해 노력해 왔다. 그러한 결과물로 EU 회원국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개인정보보호 법률 GDPR(General Data Protection Regulation)을 2016년 채택했고, 2018년 5월 25일부터 EU 회원국 국민의 개인정보를 다루는(또는 다루고자 하는) 전 세계 모든 기업들에게 적용하면서 본격적인 '프라이버시 라운드', 즉 개인정보를 둘러싼 국가 간 전쟁의 서막이 오르기 시작한다.
글로벌 IT기업들을 다수 보유한 덕분에 유리한 위치를 미리 선점하는 데 성공한 미국 역시, 개인정보를 둘러싼 전쟁에 일찌감치 뛰어들어 현재의 우세를 이어나가고자 노력하고 있다. 미국의 정보기관 NSA는 유타주에 20억 달러를 들여 향후 100년간 전 세계인에 대한 정보를 수집·저장할 수 있는 빅데이터 센터를 건립했고, 현재 정보를 수집하여 저장하고 있다고 추측되고 있다.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MS와 같은 미국 내 거대 IT기업들 역시 미국 정부의 움직임에 발맞춰 정보 수집을 목적으로 한 대규모 빅데이터 센터를 건립했으며, 자신들이 제공하고 있는 서비스에서 전 세계로부터 확보한 자료들을 수집/저장하고 있는 중이다.
미국을 경쟁자로 생각하는 중국도 손 놓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는지, 2016년 '네트워크 안전법'이라는 개인정보보호에 대한 통합 법률을 제정해 2017년 6월 1일부터 시행하고 있으며, 더해서 2020년 10월 29일 개인정보보호법 초안을 발표하고 2021년 말까지 통과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제 중국인을 대상으로 장사를 하려는 기업이나 개인은 모두 새로 제정될 '개인정보보호법'을 준수하지 않으면 처벌받을 수 있다.
더구나 중국은 1998년부터 구축을 시작한 황금방패 프로젝트를 통해 중국 전체를 아우르는 만리방화벽(Great FIrewall)을 구축한 상태이다. 이 방화벽을 이용해 중국 내에서 외부로 나가는 모든 정보의 이동을 통제하고 있다. 따라서, 중국에 진출한 해외기업들은 중국 정부를 통해 해외 본사와의 모든 통신내용을 감시당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우리나라도 국제적인 분위기에 적극적인 대응을 하고 있다. 유럽연합과는 2015년 10월부터 상호 개인정보 처리에 대한 접촉을 시작해 상당한 진전을 거두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국내 기업들이 EU에 속한 국가 내에서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조속한 상호 협의가 완료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은 경우 EU에서 요구하는 GDPR의 모든 요구사항을 개별 기업들이 각자 알아서 감당해야 하는 상당한 부담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에게는 2011년 9월 30일 시행된 '개인정보보호법'이 있다. '개인정보보호법'은 우리 국민의 개인정보를 처리하고자 하는 경우 반드시 지켜야 하는 기본원칙을 제시하고 있는 일반법이다. 국내 기업뿐 아니라 국내에 진출한 해외기업들 역시 '개인정보보호법'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
뉴스나 신문에 나오지는 않지만 현재 세계는 개인정보 사용을 둘러싼 전쟁 중이다. 자국민에 대한 개인정보를 보호하고자 하는 국가와 좀 더 용이하게 타국 국민들의 개인정보를 이용해 장사를 하고자 하는 외국기업들 간의 보이지 않는 줄다리기가 이어지고 있다. 자국민의 정보는 보호하면서 자국 기업들에게 타국민의 정보를 이용하여 장사하게 하고자 하는 국가 간의 힘겨루기도 함께 이어지고 있다.
정작 가슴 아픈 건 이 치열한 전쟁에서 실제 개인정보의 주인인 국민들은 소외되고 있다는 점, 이 전쟁에 국민들의 관심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