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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넋두리 4] 1. DT 광풍이 지나고 난 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거 없더라

  최근 몇 년 동안 거의 모든 대기업들이 마치 기업의 생사라도 걸린 것처럼 진행했던 Digital Transformation(약칭 DT)의 열풍을 넘어선 광풍이 슬슬 잠잠해지는 모양새다. 물론 아직도 진행형인 기업들이 꽤 있지만 초반의 묻지 마 식 열기는 상당 부분 누그러지면서 이제는 냉정한 이성적 판단으로 사업의 효과성을 따지는 추세가 늘어나는 듯하다.


  정확한 통계나 자료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나라 기업들이 진행했던 DT 사업들의 상당수는 사실상 목적했던 효과를 거두지 못한 것으로 생각된다. 무턱대고 이렇게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나름의 개인적인 이유들이 있다. 실제 일선 현장에서 기업들을 대상으로 DT컨설팅을 수행했던 사람으로서 느꼈던 경험에서 비롯된 이유들이다. 전적으로 개인 의견에 불과하지만 직접 현장에서 느끼고 생각했던 원인 몇 가지를 풀어보고자 한다.


첫째, 잘못된 사례 적용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도 IT기술의 적용이 빠른 나라 중 하나로 디지털화에 있어 상당히 앞서가는 나라다. 즉, IT기술의 적용에 있어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말이다. 그 말인즉슨 다른 나라들의 디지털 도입 사례를 선진사례로 적용하기에는 상당한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컨설팅 회사들은 고객사들을 상대로 인도, 아프리카 국가 등 IT인프라가 상대적으로 열악한 국가들의 디지털전환 성공사례를 예시로 들어가며 DT 도입의 필요성을 설파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한 예로 모바일뱅킹은커녕 은행지점이나 ATM기기 보급 같은 금융인프라가 취약한 나라에서 지점을 통한 아날로그 금융의 중간과정을 과감히 생략하고 바로 디지털금융으로 건너 띈 사례를 선진사례로 제시하며 금융권을 설득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미 아날로그 금융 과정을 거쳐 디지털금융으로의 전환이 상당 수준 진행되었고 모바일뱅킹이 생활화된 우리나라에는 맞지 않는 사례였다. 한 발짝 떨어져 객관적 시각에서 보면 다소 황당한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럴 수가! 웃기면서 슬프게도 이게 먹혔다.


둘째, 컨설팅 기업에 대한 맹신

  더 심각한 점은 컨설팅 회사들이 제시한 사례와 과제들에 대해 심도 있게 검토되지 못한 채 맹목적으로 신뢰했다는 것이다. 대부분 해외에 본사를 둔 외국계 컨설팅 기업들은 해외의 성공사례들만을 모아 일방적으로 전달하며 그것이 마치 정답인 양 홍보와 설득에 열을 올렸다. 그리고 이 결과물들이 걸러지지 못한 채 최고경영진까지 전달되어 최종에는 DT사업으로 전환되는 현실을 볼 수 있었다.


셋째, 비현실적인 과제들

  적절하지 않은 사례와 조사의 결과는 잘못 포장된 과제의 도출로 이어지게 마련. 우리의 디지털화 수준과 현장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 과제의 도출은 기업에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히는 것과 같은 여러 부작용을 양산했다.

  예를 들면 은행들이 앞다퉈 선언했던 디지털기업으로의 전환 과제들 중 디지털역량이 부족한 은행원들을 재교육시켜 프로그램 개발자나 데이터 분석가와 같은 디지털전문가로 전환하겠다는 과제가 있었다. 겉보기에는 그럴 듯 하지만 사실 실현가능성은 없었다. 처음부터 그런 역량을 갖춘 직원을 뽑은 것도 아니면서 5년, 10년, 15년, 20년 이상을 근무해 온 직원들에게 생뚱맞게 디지털전문가로 탈태환골하라니.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는 옛말처럼 속 깊이 살펴보면 싫으면 나가라는 표현을 다르게 포장한 구조조정이 아닌가 싶은 과제였다.


넷째, 내부조직의 비협조

  디지털전환이란 다르게 표현하면 사람이 하던 일을 기술로 대체한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수 십 년간 이어져오던 업무방식을 뒤집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일하는 사람의 감소이고 저렇게 말하면 구조조정이다. 산업이 발달하지 않았던 국가들에서는 본래 없던 직업(직원)이라 검토대상도 아니었겠지만 우리나라 상황에서 적용하려면 실제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을 줄여야만 한다. 내부직원들의 반발과 비협조는 당연한 수순이었던 것이다. 임직원들을 설득하기 위한 연착륙 방안이 고려됐어야 하지만 실현성이 없는 경착륙 과제들만 우수수 쏟아져 나와 초래된 결과였다.


  주위를 둘러보자. 최근 수년간 휘몰아쳤던 DT로 인한 변화들이 주변에서 보이는지. 기업 내부의 업무처리가 혁신적으로 개선된 사례가 확인되는지. 일부 물류센터 자동화 같은 업무의 디지털 변환이 성공한 사례 몇몇을 제외하곤 많은 기업들이 상상할 수 없는 거대한 예산을 쏟아부었음을 감안하면 정작 체감되는 변화는 미미하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거 없다더니 정말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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