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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호라 Apr 13. 2022

월세가 싸고 집이 비어있으면, 일단 의심해보아야 한다

서울살이 몇 핸가요(4-5년 차, 2013.8~2014.8)

첫 자취를 위해 방을 찾을 때, 부모님과 함께 부동산을 돌아다녔는데, 어떤 기준과 보는 눈이 아예 없었기 때문에 많이 휘둘릴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내가 살 집이기는 하지만 부모님이 보증금과 월세를 모두 부담하시게 되는 상황이어서 기준이 있다면 단 하나, ‘최대한 싼 곳’이었다. 학교 앞의 웬만한 오피스텔은 월세가 대부분 50만 원 대였기 때문에 모두 탈락이었다. 나는 어느 정도 걸어다녀도 된다는 각오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학교 앞이 아니어도 되니 조금 떨어진 곳의 집도 보여달라고 했고, 부모님은 월세가 최대한 낮은 곳이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그렇게 찾게 된 곳이 학교에서 걸어서 20분 거리의 구옥 1.5룸, 보증금 500에 25만 원짜리 3층 건물의 3층 방이었다.


이 방의 좋은 점은 가격 대비, 방이 넓다는 점이었다. 그래 봤자 5평 정도 되는 원룸이기는 했으나 나름 부엌이 따로 분리된 구조로, 작은 부엌과 방 사이에 문이 있었다. 또한 화장실이 ‘쓸데없이’ 넓었다. 샤워실이 따로 구분된 구조도, 욕조가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샤워실과 욕조를 둬도 될 정도로 넓었다. 그 두 가지 모두가 없음에도, 넓이만 넓다는 게 ‘쓸데없이’ 넓다는 의미다. 어쨌든 답답할 정도로 좁은 방은 아니면서도 저렴한 월세가 우리 부모님 기준에서 합격이었고, 내 눈에도 겉보기에 꽤 멀쩡해 보였다. 그러나 그곳이 오랫동안 비어있던 방이라는 점을 감안하여 조금은 의심스럽게 보았어야 했다.


이사 온 지 며칠 지나지 않아 비가 내렸는데, 방 한쪽 구석에서 천장의 벽지가 얼룩덜룩 젖어들어가는 모습을 목격했다. 거기에 더해 몰딩이 있어야 할 천장의 모서리에 몰딩은 없고, 약간씩 갈라진 틈이 있었는데 그쪽에서 잿빛에 지우개똥처럼 생겼으면서 자세히 보면 다리가 많은 곤충이 자꾸만 기어 나오고 있었다. ‘바’로 시작하는 네 글자의 그 벌레보다는 참을 수 있었지만 어찌 됐든 곤충과의 동거는 싫었기 때문에 흉물스러워 보이든 말든 휴지와 테이프로 천장과 바닥, 창틀 등 눈에 보이는 모든 틈바구니를 메웠다. 그렇게 막아두고 나니 다행히 벌레는 자취를 감췄다. 천장이 젖는 것은 집주인에게 연락해보니 비가 새는 게 맞았다. 옥상의 방수페인트가 다 떨어져서 그랬다고 했다. 다행히 집주인이 날이 개인 다음에 옥상방수처리를 바로 해주었고, 젖은 벽지는 그 위에 땜질을 하듯 풀을 발라온 벽지로 ‘대강’ 덮어주었다. 덧붙인 쪽의 색깔이 미묘하게 달랐지만 나는 그러려니 했다. 처리해 준 게 어딘가 하고.


몇 달이 지나 날이 추워지기 시작했다. 보일러를 때자 그 집의 진짜 문제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우선 부엌 쪽에는 보일러가 아예 들어오지 않아서 겨울에 부엌 쪽으로 나갈 때면 거의 밖을 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또한 부엌 쪽은 벽과 천장에 도배 조차 되어있지도 않아서 시멘트가 그대로 드러나있었다. 그 시멘트 표면에는 자글자글한 물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결로 현상’이었다. 여름에 컵에 차가운 얼음물을 따르면 표면에 맺히는 그런 것. 겨울에 차 안에서 온풍기를 틀면 차 유리에 습기가 차는 그런 것처럼 온 집안에 습기가 차면서도 외풍이 숭숭 들어와서 방 안의 공기는 제대로 데워지질 않았다. 그런 집은 처음이어서 인터넷을 검색해보았더니 건물 자체가 단열이 되어있지 않아 그렇다고 했다. 즉, 건축할 때 애초에 단열을 고려하지 않은 건물이라는 것이다. 벽은 물론이고 창문과 현관도 문제였다. 창문은 보통 집에서 쓰는 이중창이 아닌 ‘일중 창’으로 되어있었고, 현관문은 무게감이 하나도 없는 얇은 쇠문이었다. 현관문과 창문에도 결로가 생기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보일러를 틀어도, 다이소에서 산 뽁뽁이와 방풍테이프로 창문과 문틈을 막아보아도 효과는 미미했고 손과 발, 코가 시려워 견딜 수가 없어서 작은 라디에이터 난로를 샀고, 겨울 내내 틀고 지낼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에 전기세와 가스비가 적힌 종이를 현관문에 붙이러 온 집주인과 마주쳤는데, 집주인이 그러는 것이었다. 집에서 뭐 하길래 전기세가 이렇게 많이 나오냐고. 아마도 라디에이터 때문에 그런 것 같았다. 그때 전기세는 3만 원이 조금 넘었다. 원룸 한 달 전기세 치고는 많이 나왔다고는 할 수 있으나 그런 참견을 빙자한 질책같은 말이 어이가 없었다. 어차피 내가 낼 돈인데 말은 또 왜 그렇게 하는 건지. 나는 대답하기 귀찮아서 ‘글쎄요’ 하면서 넘어갔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런 말씀 하실 거면 단열 벽지라도 발라달라고 할 걸 그랬나 싶다.


결로로 인한 문제는 또 있었는데, 건물 바깥쪽과 맞닿아 있는 모든 벽에 물방울이 맺히다 보니 벽에 붙어있는 부엌 찬장의 나무가 물을 계속 머금다 못해 썩어가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걸 어떻게 알게 되었냐면, 찬장이 무너져 내려서 알게 되었다. 다행히(?) 찬장이 완전히 무너져서 그릇이 죄다 깨진다거나 하는 참사가 일어나기 전에 한쪽이 살짝 기울었을 때 위기를 감지했고, 그릇들을 피신시킨 후에 집주인에게 연락하여 수리를 하였다. 집주인은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니었던지 ‘어휴 어쩌다가’ 이런 소리 하나 없이 금세 전동드릴로 벽에 다시 찬장을 고정시켰다. 아마도 이 방에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싼 값에 월세를 내놓았던 것일 테고, 더 큰돈 드는 공사를 하기 싫으니 세입자에게 문제가 발생했다는 연락을 받을 때에나 임시방편으로 이리 기우고 저리 때우는 상태였던 것 같다.


힘겨운 겨울이 지나고 날이 따뜻해져서 이제야 좀 살만해지겠다 싶을 무렵, 앞 건물에서 30 롤 짜리 두루마리 휴지를 들고 찾아왔다. 공사를 할 거라서 시끄러워도 양해해달라는 것이었다. 얼마나 어느 정도 기간 동안이나 시끄러울지 가늠이 가지 않았던 나는 처음에 그저 ‘휴지 살려고 했었는데 잘됐다’ 생각했다. 방의 창문을 열면 바로 앞에 보이는 건물을 완전히 부수고 새로 짓는 공사를 한다는 건, 공사하는 시간에 방에 어쩔 수 없이 머무를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면, 순식간에 살던 곳이 공사장 한가운데에 놓이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었다. 주변에 사는 사람들에게 휴지를 돌린 건 그야말로 최소한의 예의 표시일 뿐이었다. 공사는 주말을 제외하고 늘, 오전 7시부터 시작하고 해가 질 무렵에야 끝났다. 조금 덜 시끄러울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기간 동안 골이 깨질듯한 소음에 시달려야만 했다. 그 당시에 내가 직장인이었다면 업무시간과 겹치니 그리 많은 피해를 입지 않았을 수도 있으나, 나는 대학원 입학을 준비하고 있던 대학생이었다. 그 전에는 집에서 공부하는 시간이 많았는데, 어쩔 수 없이 공사 소음을 ‘모닝콜’ 삼아 일어나서 짐을 싸들고 학교 도서관으로 향하는 수밖에 없었다.


앞 건물의 공사가 거의 다 끝나갈 무렵 여름이 왔다. 예상할 수 있다시피 이 방에는 에어컨이 없었다. 옥상의 열기가 그대로 아래로 전해 내려 오는 건물이기도 했으며, 공동현관 같은 ‘최신식’ 보안 장치가 없는 이 건물에서 20대 초반의 체구가 작은 혼자 사는 여성이 아무리 더워도 ‘고작’ 시원한 바람 좀 쐬겠다고 현관문을 열어둘 수는 없었다. 낮에는 창문을 열기는 했으나 조그만 원룸 창문을 열어봤자 맞바람 칠 곳이 없으면 바람을 하나도 쐴 수 없다는 점을 알만한 사람은 다들 알 것이다. 밤에 창문을 열고 잔다는 것도 내 생각엔 자살행위나 다름없이 느껴졌다. 정말로 더워서 죽겠다 싶어도 나를 해칠 수 있는 누군가가 늘 지켜보고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창문의 잠금장치를 풀지 못했다. 친오빠와 같이 살 때는 오래된 건물이기는 해도 그나마 아파트였고, 7층이었기 때문에 그곳도 에어컨이 없었지만 창문을 열고 잘 수 있었기 때문에 견딜만했던 거였다는 걸 새삼 떠올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혼자 사는 삶이 정말로 좋았다.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밥을 차려 먹고, 씻고, 잘수 있는 것만으로도 혼자만의 공간에서 혼자 살아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비가 새고, 단열도 안되고, 부엌 찬장이 무너지고, 옆에서 공사하고, 에어컨이 없는 집에 살아도, 집이 문제였지 혼자 사는 삶의 문제는 아니라는 걸 확실히 알았다. 그래서 나는 이곳에서 계약기간 1년을 간신히 다 채우고 대학원 입학과 함께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나 혼자 처음 살았던 집. 멀쩡해보이나? 의심스러운 눈으로 창문과 벽지부터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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