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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호라 Mar 26. 2022

한 트럭의 룸메 중 최악이었던 룸메

서울살이 몇 핸가요, 3년차 '

3학년 1학기까지 기숙사에 살면서 대략 한 트럭의 룸메를 만났다. 1학년 1학기와 2학기 때는 3인실에 살았고, 2학년 1학기 이후부터는 2인실에 살았다. 1학년 1학기 때는 하늘같아보였던 3학년 수학과이자 층장(층장은 각 층마다 취침 점호와 청소 점호를 담당하는 역할을 했었다) 언니, 같은 1학년이었지만 너무 외향적이라 나랑은 달라서 친해지기 힘들었던 국제학과 친구. 방학 때는 항상 예쁘게 꾸미고 다니면서도 새벽같이 첼로를 메고 나가던 음악과 친구.  2학기 때는 교환학생이었던 일본인 언니, 미국에서 살다왔다는 영어를 잘하던 친구. 나는 일본 애니메이션과 드라마로 다져둔 일본어 실력으로 어느 정도 일본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했고, 미국에서 살다온 친구는 영어로 의사소통하곤 했다. 영어와 일본어, 한국어를 섞어가며 말하곤 했던 그때를 생각하면 그때보다 더 글로벌하게 재밌었던 적이 있나 싶다. 내가 명동에 다녀왔다고 하니 ‘한국인들도 그런 데 가요?’라고 묻던 언니. 나도 그때는 서울 산지 얼마 안 돼서 명동은 처음이었기에, ‘그럼요. 저도 처음 가봤어요’라고 답했던 나. 그 일본인 언니는 당시 동방신기와 빅뱅을 좋아해서 한국어 전공을 하게 되었다고 했는데, 잘 지내고 있을까 문득 궁금하다. 지금은 BTS를 좋아할까?


2학년 때부터는 2인실에 살았는데, 이때 만났던 룸메들은 다 좋았다. 1학기 때는 전부터 친하게 지냈던 다른 과 친구와 함께 지내기로 미리 말을 맞춰놨기 때문에 룸메 걱정이 없었고. 2학기에는 우연히 만난 프랑스어문학과 친구가 같은 고향 출신이었고,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어디 나왔는지 얘기를 하다 보니 나랑 친한 친구의 친한 친구였던 게 아닌가. 내가 살던 기숙사 2인실의 구조는 침대 두개와 책상 두개가 각각 마주보고 화장실과 세면대를 둘이 함께 쓰는 형태였는데, 그럭저럭 괜찮은 룸메들을 연달아 만나왔던 나는 이 구조가 서로에게 꽤 불편할 수 있는 구조라는 건 그때까지는 몰랐다. 나는 고민할 필요 없이 3학년 1학기에도 기숙사를 지원하여 들어가게 되었다. 한 학기 동안 나를 불구덩이로 몰아넣을 룸메를 만나게 되리라는 사실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채.

내가 살았던 2인실 기숙사의 구조

그녀의 첫인상은 나쁘지 않았다. 그녀는 신입생이었기 때문에 처음에 나에게 깍듯하게 굴었다. 내가 신입생일 때 3학년 층장 언니를 만난 느낌과 비슷했겠지. 다만 나는 당시에 룸메들의 짐을 보고 그들의 성향을 판단하는 습성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책상에 책이 더 많은지 화장품이 더 많은지. 옷과 구두와 가방이 많은지, 책이 많은 편이라면 어떤 책을 많이 읽는지로 판단하는 것이었다. 나는 옷, 화장품, 구두에 관심이 없는 편이어서 그런 짐이 상대적으로 적고 책상에 책이 많은 친구들, 특히 전공서적만 있는 친구보다는 문학이나 철학 책을 많이 읽는 친구들과 성향이 더 잘 맞는 편이었다. 물론 옷, 화장품, 구두 짐이 많은 친구들과 생활하는 것도 나름대로 배울 점이 있고 즐거웠다. 어떤 룸메들은 종종 옷과 구두를 빌려주기도 했고, 나에게 화장을 가르쳐주기도 했다. 3학년 1학기 때 만난 그 최악의 룸메는 옷과 화장품 짐이 많은 애였다. 여기까지는 그저 나와 좀 다른 성향이겠거니 했었다.


셋째 날 밤부터 그녀가 게임을 새벽 다섯 시까지 하기 전까지는. 그 패턴이 매일 같이 이어질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는데, 한 학기 내내 그게 현실이 될 줄이야. 그녀가 청소를 한 번 미루고, 두 번 미루고, 미루고 또 미루고, 한 학기 내내 미루면서 단 한 번도 청소를 하지 않을 거라고는. 도무지 내 상식 선에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사람이었다. 기숙사에 2년 넘게 살면서 룸메에 대한 불평을 한 번도 토로한 적 없던 내가 엄마에게 전화하면서 ‘나 이제는 기숙사에 못살겠다고’ 얘기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녀가 새벽 다섯 시 넘어서까지 게임을 하는 것만이 다는 아니었다. 그녀가 하는 게임은 마우스 클릭질을 5초에 서른 번씩은 해대는 서든어택이었는데, 헤드폰을 쓰고 게임을 해도 그 총소리가 헤드폰 밖으로 엄청나게 새어 나왔다. 나는 몇 번이나 ‘소리 좀 줄여달라’고 했으나 마우스 클릭질 소리는 아무리 말해도 조용해질 수가 없었다. 내가 귀마개나 안대를 끼고 자도 그녀는 내 눈치 따위 하나도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그리고 학기 초에 나는 그녀와 이런 약속을 했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번갈아가며 청소하자고 말이다. 그 정도면 나는 이미 오랜 기숙사 생활로 단련된 상태였기 때문에 청결부분을 굉장히 타협한 것이었는데도 그녀는 한 학기 내내 단 한 번도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그녀가 청소하기로 한 일주일이 그냥 지났을 때는 ‘그럴 수도 있지’ 했다. 1학년 1학기 학기초는 정신없으니까. 나 혼자 청소를 서너번하고 그녀가 청소를 두 번째 미뤘을 때 말했다. 이번 주에는 청소해달라고. 그리고 나는 일부러 한동안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그 한동안은 한 달이 되었다. 쓰레기통이 차고 넘쳐도, 세면대가 곰팡이로 가득 차도, 수채 구멍이 머리카락으로 뒤덮여 샤워실에 물이 내려가지 않아도 그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본인의 옷 빨래조차 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녀의 침대 위는 옷 무덤으로 가득했다. 그러면서도 웃겼던 건 외출할 때 보면 의외로 겉치장은 멀쩡히 하면서 다닌다는 점이었다. 언제 청소하나 두고 보자, 하다가 결국엔 내가 참지 못해서 청소를 해버렸다. 그 이후엔 그냥 내가 더러워서 청소하고 말지 하면서 한 학기를 버텼다.


내가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그녀의 행동 중 하나는 새벽 다섯 시까지 게임을 하거나 예능을 보고 잔 뒤에 일곱 시에 알람을 맞춰둔다는 점이었는데, 그 알람 때문에 고통을 받는 건 항상 나였다. 나도 아침잠이 많아서 알람 소리에 못 일어나는 편이기는 했지만 그녀에 비할 바는 못되었다. 그녀는 심지어 손에 핸드폰을 쥐고 잠들었는데, 핸드폰을 쥔 채로도 소리와 진동이 동시에 울리는 알람에도 꿈쩍 않고 10분 넘게 잠을 잘 수 있는 사람이었다. 또 참다못한 내가 잠든 그녀의 손에서 핸드폰을 빼내어 손수 알람을 끄곤 했다. 나는 어느 날인가에 우연히 그녀가 부모님과 통화하는 소리를 조금 듣게 되었다.


그녀는 한껏 짜증스러운 말투로 그녀의 엄마일 것이라 추정되는 통화 속 상대에게 말했다.

‘아, 반수 할 거라고!’

반수를 한다던 그녀는 늘 그렇게 밤낮이 바뀐 상태로 사는 것 같았고 수업을 듣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녀 입장에서는 대학 수업이 아마도 의미 없다고 생각했으리라. 그런 그녀의 책상에는 가끔씩 수능 모의고사 시험지가 올라와있곤 했는데, 사실 그녀가 공부하는 모습은 본적이 없었다. 내가 오후 8시쯤 저녁을 먹고 방에 들어오면 그녀는 자고 있었다. 웬일로 일찍 자네 싶으면, 밤 늦게 일어나 통틀 때까지 게임을 하거나 누워서 낄낄거리며 예능 프로그램을 봤다. 그걸 내가 왜 아느냐면 아무리 자려고 노력해봐도 도무지 잠을 잘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녀는 우울증을 겪고 있는지도 몰랐다. 나는 심리학과 학생으로서 나름대로 그녀를 이해해보려고 노력했으나, 그녀의 소음을 겨우겨우 견디며 잠이 들 때쯤이면 오전 7시에 여지없이 의미 없는 모닝콜이 울렸다. 그러면 애써 발휘해보려던 이해심은 눈 녹듯 사라졌다. 그녀를 어떻게 이해하랴. 그녀 때문에 내가 수면부족으로 내 일상까지도 망가져가고 있는데, 시발. 그것은 매일 아침 분노의 시발점 같은 것이었다. 내가 그녀를 견디는 최선의 방법은 외박을 하는 것이었다. 나도 참… 나였다.  


그 쯤되면 내 힘듦에 대해서 룸메에게 토로하면서 함께 사는 사람을 좀 배려해달라고 말할 법도 한데, 그 당시의 나는 갈등을 ‘좋게’ 해결하는 법을 모르는 애였다. 물론 지금 다시 그런 일을 겪어도 나는 그때처럼 똑같은 패턴을 반복할지도 모른다. 그게 그저 나니까. 싫은 소리 못하는 나. 화가 치밀어도 막상 그 상대에게는 대놓고 맞서 따지지 못하는 나. 그 애를 견디는 것도 힘들었지만, 동시에 이토록 한심한 스스로를 견디는 것도 힘들었다. 비흡연자의 11시 이후 외출할 권리를 주장했던(서울살이 몇 핸가요 1편 참고) 그때처럼 기숙사 관리직원에게 일러도 될 법한데, 부당한 규정에 맞서는 건 거리낄 것이 없었지만 ‘남을 내가 싫어한다는 사실’을 들키는 건 어쩐지 두려웠다. 내가 ‘룸메의 만행’을 일러서 나의 안위를 위해 룸메를 바꾸거나 혹은 중재를 통해 함께 살기에 좀 나아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봤을 수도 있으나 수면 위로 그 갈등을 끄집어 내야한다는 사실 자체가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그렇게 끄집어 내어도 해결이 되지 않을까봐, 나만 미움받고 나아지는 건 아무것도 없을까봐, 더 최악이 될까봐 더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상하며 현실의 최악을 택했다. 그러느니 참고 말지 뭐, 하면서. 나는 나를 갉아먹었다.


내 성격의 단점을 뼈저리게 느끼면서, 다음 학기에는 기숙사에 절대 들어가지 않으리라는 마음으로 벌점이고 뭐고 상관 없다는 마음으로 외박을 밥먹듯이 했다. 외박하면서 나는 뭘 했느냐 하면, 도서관에서 밤을 새웠다. 시험기간이 아닌 때에는 마감기한이 한참 남은 조별과제를 혼자서 진행하면서 밤을 새웠다. 그마저도 할 게 없을 때는 도서관에서 노트북으로 영화를 보면서 밤을 새웠다. 나도 참 나다. 다른 곳도 아니고 도서관에 갔던 이유는 그 당시 내가 새벽에 갈만한 곳 중 가장 안전한 곳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학교 교문과 CCTV가 나를 지켜주긴 했다만 나중에 우리 학교에서 화장실 불법촬영 사건이 터졌을 때 나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어쨌든 그렇게 나는 그녀 때문에 만성 수면부족에 시달리며 뜻하지 않게 수많은 조별과제 무임승차자들을 양산하였으며 학점에 목숨건 듯이 생활하며 한 학기를 보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를 염불하듯 외며 다시는 기숙사 생활을 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그 다짐은 결국 이루어졌으나 기숙사를 나온다고 해서 고생이 끝나는 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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