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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호라 Mar 24. 2022

기숙사 살던 비흡연자의 분노가 바꾼 것

서울살이 몇 핸가요, 1-2년차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

나는 이 말이 참 싫다. 지금 현재 고생하고 있는 이들에게는 아무런 쓸모도 위안도 되지 않는 말이다. 어쩔 수 없이 고생을 겪은 사람들이 지어낸 말 같기도 하다. 그 ‘젊어서 고생’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끝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라면? 또, 더 이상 젊지 않으면 어떡하나. 그럼 그냥 고생인데, 그냥 고생은 가치가 없는 게 되나? 애초에 고생이 꼭 가치가 있어야 하나? 나는 오히려 내 고생 자체를 평가절하했다. 고생이 고생이 아니라고 생각해야 좀 더 속이 편했다.


‘나 정도 고생은 아무것도 아니다. 다 지나갈 일이다.’

라고 생각하기에 익숙해졌다. 그렇게 생각하기에 익숙해진 건 부모님과 따로 떨어져서 서울에 살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오고 싶다는 건 내 오랜 꿈이었다. 나보다 3년 앞서 서울로 대학을 간 친오빠가 늘 부러웠다. 문예창작학과에 입학한 오빠가 보는 두꺼운 전공서적이라든지 내가 모르던 현대 한국소설집, 뭔가 심오해 보이는 연극 포스터, 사진전과 그림전 같은 곳들에 다니는 게 멋있어 보였고 그런 ‘문화생활’을 즐기려면 서울에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덕분에 나는 고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전공은 모르겠고 어찌 됐든 서울에 있는 대학을 가려는 꿈을 꾸었다.


그렇게 원하던대로 서울에 있는 대학에 입학하면서 스무 살 3월부터 서울 살이를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대학교 기숙사에 들어가는 게 당연한 수순인 듯 보였다. 서울 살이를 시작하기에 그 어느 곳 보다도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쾌적하면서도 안전이 보장된 곳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내 기숙사 생활에 불만을 품게 되었다. 우리 학교는 다른 대학에 비해 기숙사 규율이 엄격했다. 매달 한 번씩은 청소 점호가 있어 룸메이트들과 함께 구석구석 깨끗이 청소를 해야만 했다. 청소를 하지 않으면 벌점이 부과되었고, 청소를 완벽하게 하여 100점을 받으면 상점이 주어졌다. 이 상점과 벌점은 다음 학기 기숙사생 선발에 유리하거나 불리하게 작용했다. 학점이 기본 기준이기는 했지만 이미 상향평준화가 이루어진 데다가 학년이 높을수록 기숙사생 선발 인원이 적어졌고, 점점 더 경쟁률이 높아졌기 때문에, 그 상점과 벌점이 학생 개인에게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었다.


매일 오후 열 시에 층장이 각 방을 돌며 점호를 했고, 이 시간 이후에 들어오려면 ‘외출’ 신청을 하여 외출 시간을 오후 열한 시까지 한 시간 연장할 수 있었다. 이때 외출을 쓰지 않고 점호 시간에 밖에 있게 되면 벌점이 부과된다. 또한 외박을 하려면 ‘외박’ 신청을 하는데, 자정부터 오전 6시까지는 기숙사 입구를 폐쇄하기 때문에 새벽에 들어오는 것이 아예 불가능했다. 외박도 마찬가지로 외박 신청 없이 하면 벌점이 있었고, 외박은 심지어 한 달에 한 번, 횟수 제한이 정해져 있었다. 벌점은 10점 이상 쌓이면 기숙사에서 퇴거시킬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엄벌 수단이기도 했다.


나는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밤늦게까지 노는 것에 관심이 거의 전무했기 때문에 사실 위의 규율에 크게 불편을 느끼지는 않았다. 다만 내가 가장 크게 불만을 가졌던 부분은 엄격하면서도 불합리한 규율이었다. 오후 열한 시부터 열두 시까지는 기숙사 안에 있는 사람이 5분 정도밖에 나갔다가 들어올 수 있도록 허락해주었는데, 이 잠깐 외출의 ‘특혜’를 누릴 수 있는 이들은 오로지 ‘흡연자’들 뿐이었다. 추정컨대 이 규정은 본래 있던 것이라기보다는 기숙사 건물 내 흡연 금지와 열한 시 이후에 외출 금지 규정의 콜라보에 불만을 느낀 흡연자들이 얻어낸 열한 시 이후 흡연권인 듯했다. 그러나 이 흡연권은 날이 갈수록 다용도로 쓰였다. 많은 사생들이 열한 시 이후의 출출함을 참지 못하고 편의점을 다녀온다거나 꽤나 절절한 연애를 많이 하던 그 시절, 기숙사 앞에 찾아온 애인을 보러 다녀온다거나 하는 등의 이유로 외출자 명단에 기꺼이 이름을 올리고 기숙사 밖에서 5분의 자유를 누렸다.


그 모습들을 보며 나는 열한 시 이후의 잠깐 외출이 ‘어떤 이유에서든’ 가능한 줄로 알고 있었고, 어느 날인가 시험기간에 공부를 하다가 열한 시가 넘어 초콜릿이 너무도 먹고 싶어졌고 편의점에 초콜릿을 사러 가려고 했다. 그러자 입구에 있던 기숙사 조교가 그러는 것이었다.

“흡연하러 가요?”

라고. 잠깐 외출할 때 적고 나가도록 되어있는 명부에는 이름과 호실 그리고 외출 사유를 적게끔 되어있었다. 나는 흡연하러 가냐는 말에 당연히 비흡연자였으니까 ‘아뇨’라고 대답하고 이름과 호실까지 적다가 외출 사유에 당연히 ‘편의점’이라고 적으려는데, 기숙사 조교는 충격적인 말을 했다.

“편의점은 안되고 흡연으로만 나갔다 올 수 있어요.”

라고. 그리고 덧붙이는 말이 더 충격이었다. 아니, 흡연만 되는 거면 애초에 사유는 왜 적는 건데?

“그냥 흡연으로 적고 나갔다 와요. 다들 그러니까”

그 기숙사 조교 딴에는 선심을 베푸는 것이었겠지만 순간 나는 그 불합리성에 분노가 치밀었다.

“전 비흡연자인데요? 흡연자들은 담배도 피우고 편의점도 다녀올 수 있는데 비흡연자는 편의점에서 초콜릿도 못 사러 가요?”

기숙사 조교는 그러니까 그냥 흡연으로 적고 다녀오라고 말했다. ‘흡연’을 한다고 거짓말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비흡연자의 자존심에 스크래치를 내는 행위 같았다. 게다가 ‘신성한 학교’에서 흡연을 하면 어떤 특권을 주겠다고 꼬드기다니? 잘못돼도 한참 잘못되었다. 나는 됐다고 하고 방으로 돌아왔다. 초콜릿을 먹고 싶었던 강렬한 기분은 곧바로 기숙사의 불합리함에 항의하려는 투지로 탈바꿈했다.


당시 기숙사에는 층마다 건의함이 있었는데 나는 그 건의함에 이 불합리함을 낱낱이 고하겠노라 다짐했다. 불합리한 처사임을 느끼게 된 경위와 그 이유, 앞으로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까지 개요를 짠 뒤 적어내려 갔다. 벌써 10년이 지난 일이라 당시 내가 뭐라고 썼는지는 상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노트필기하던 A5 크기의 줄 노트에 양면을 꽉 채워 세 장을 썼던 기억이 있다. 지금의 기억으로 대략 내가 그때 썼을 법한 말을 되새겨보면, 먼저 흡연자들의 흡연권을 보장하려는 그 규정이 흡연자들에게 특혜를 주는 방식으로 변질되었다고 썼을 것이다. 또한 조교가 비흡연자인 나에게 ‘흡연자’라고 거짓말을 하고 나갔다 와도 된다고 권유할 정도로 조교도 이미 그런 비합리성을 인지하고 있었으며, 이는 기숙사가 흡연을 마치 권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또한 담배가 중독성을 유발하는 기호식품이기 때문에 흡연권을 존중받아야 하는 것이라면 초콜릿과 술도 마찬가지로 중독성이 있는 기호식품이라는 점은 동일하기 때문에 그를 위해 편의점에 다녀오는 것 또한 같은 이유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논조는 분명히 썼던 기억이 난다. 따라서 흡연을 비롯한 어떤 이유에서든 열한 시 이후의 잠깐 외출을 허용하는 게 마땅한데, 만약 그렇게 되지 못한다면 기숙사는 계속해서 비흡연자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함으로써 흡연을 권하는 것이므로 흡연 외출권 또한 금지시켜야 타당하다고 썼다.


일주일 후 기숙사 엘리베이터 앞 게시판에 내 건의에 대한 답변이 붙었다. 규정을 수정해야 할 필요성을 인정하여 논의를 거쳐 개정하겠다고 하였으며, 절차 때문인지 당장은 개정되지 않았으나 그다음 학기부터는 개정되었다. 나는 그다음 학기부터 비흡연자로서 당당하게 열한 시 이후 초콜릿 섭취권을 누릴 수 있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기숙사를 제 발로 걷어차버리고 나오게 되었다. 그 이유는 내 생에 최악의 룸메를 만나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 고생은 아마도 여기서 진정으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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