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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호라 May 25. 2022

구옥 투룸의 빛과 어둠

서울살이 몇 핸가요(5-7년 차, 2014.8~2016.8)

구옥의 지옥을 여러모로 쓰라리게 겪고 난 뒤였지만, 집을 보러 다니다 보니 아무리 깔끔해 보이는 방이더라도 볕이 잘 들지 않는다거나 부엌이 분리되어있지 않은 너무 좁은 집은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결국 두 번째로 고르게 된 집도 다시 구옥이었고, 에어컨이 또 없었고,  기본적인 보안 장치인 CCTV와 공동현관 잠금장치도 없었지만 어쨌든 가격 대비 넓은 집을 골랐다. 그곳은 보증금 천에 월세 40, 관리비는 따로 없는 투룸이었다.


투룸에 혼자 살면서 좋은 점은 아주 많았다. 옷방과 부엌, 침실을 각각 분리하여 생활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삶의 질이 크게 상승했다. 부엌에서 요리를 할 때 옷에 냄새 밸 걱정을 안 하게 되었고, 책상에 앉아 있을 때 너저분한 행거가 보이지 않아서 앉아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큰 방의 남는 공간에서는 천 피스짜리 직소퍼즐을 펼쳐두고 취미생활을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홈 트레이닝’이라는 것도 투룸에 와서 처음으로 열심히 하게 되었다. 유튜브 영상을 보고 맨몸 운동을 따라 하는 방식의 홈트레이닝을 했는데, 아무리 장비가 필요 없는 것이라고 해도 요가매트를 깔 자리와 양팔을 벌리거나 다리를 앞뒤로 찼을 때에 아무것도 걸리지 않을 정도의 공간은 필요한 것이다. 서울에 살기 시작하면서 그 정도, 내 물건을 둘 공간을 제외한 내 몸을 움직일 수 있을 만한 공간을 마련하기까지 만 5년이 걸렸다. 그쯤 돼서야 나는 내 집에서 살기 위한 음식이 아닌 내 안위와 건강을 위해 요리를 하여 음식을 차려 먹기 시작했고, 친구들을 초대해서 놀기도 했다.


이런 투룸부터 방이 아니라 집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전에 나는 ‘내 방에 간다’고 말하곤 했는데, 투룸에 살면서부터는 ‘내 집에 간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그 표현은 내가 ‘진정한 독립생활자’로서 스스로를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상징적인 말이었다.


그러나 보안이 허술한 건물이었던 탓에 프라이버시가 지켜지지 못하는 때가 많았다. 그곳에 살 때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은 대학원생이어서 낮에 집에 있으면 일어나는 일을 많이 겪었는데, 허름한 빌라에는 생각보다 불청객이 많았다. 하느님 말씀 한 번 들어보시라며 다짜고짜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이 일주일에 두세 번씩은 찾아왔고, 때때로 계단을 여러 번 왕복하며 왁자지껄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기도 했다. 나는 웬만하면 집에 없는 척하곤 했지만 집에 혼자 있을 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면 깜짝깜짝 놀라고 심장이 벌렁거렸다. 특히나 이 집에 살면서 신변의 위협을 느꼈던 몇 가지 사건 덕에 나는 이제 절대 구옥에 발을 들여놓지 않으리라 다짐하게 되었다.



1. 현관 자물쇠가 고장 나 있었던 일

자물쇠를 수리하는 분이 좀도둑이 들었던 흔적이니 집에 없어진 거 없나 보고 경찰에 신고하라고 했다. 그제야 살펴보니 늘 두던 자리에 있던 작은 금붙이 두 개, 실팔찌 하나와 작은 목걸이가 없어졌다. 그 집에서 유일하게 값이 나갈만한 물건은 그나마 그 금붙이들 뿐이었고, 워낙 들어오자마자 보이는 장소에 뒀었기 때문에 다른 것들을 어지를 필요도 없이 그것들만 가지고 나간 모양이었다. 누군가가 집에 들어왔었다는 사실 자체에 소름이 돋아 난생처음으로 112를 눌러 경찰에 신고를 했고, 생각보다 경찰은 금방 출동했다. 남자 경찰 두 명이 왔고, 그들은 나에게 목걸이가 특이하고 값나가는 것인지를 묻더니, 그렇지는 않다고 답하자 그럼 신고해봤자 소용없다고 말했다. 나는 목걸이를 찾겠다고 신고한 게 아니라(애초에 당연히 기대도 안 했다) 이 근처에 치안이 걱정되는 것뿐이라서 신고한 것이니 순찰이라도 신경 써서 해주시면 좋겠다고 얘기했다. 그들은 본인들이 원하는 대로 ‘그럼 이 사건은 종결처리하겠습니다’하는 말만 하고 떠났다.


2. 자정에 어떤 남자가 문을 두드린 일

느닷없이 자정이 넘은 시각에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고, 그는 ‘택배입니다’라고 했다. 나는 문 안쪽에서 ‘택배 안 시켰는데요’라고 말하자 문 밖의 남자는 ‘!@$댁 아닌가요?’라고 했다. 다행인지, 원래 그놈의 수법인지 모르겠지만 내 이름은 아니었고 나는 ‘아니에요’ 하고 말았다. 조금 뒤에 문 밖의 남자가 계단을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자정에 택배야, 하고 생각하다가 문득 내가 정말 그즈음에 택배를 시킨 게 있어서 아무런 의심 없이 문을 열었다면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싶었다. 아무리 세상을 아름답게 생각해봐도 그놈은 택배 기사가 아니었다. 한창 택배 대란이 일어났을 때는 자정에도 배달이 오고 그랬지만, 그렇게 택배 물량이 많았던 시기도 아니었다. 더구나 그런 늦은 시간에 배송을 할 때에는 택배기사가 굳이 문을 두드리지는 않는다. 당시 주변 사람들에게 그런 일이 있었다고 얘기하니 ‘여자 혼자 사는 집인지 확인하려고 그런 것 같다’는 의견이 있었다. 결론은 ‘집에 조심히 들어가고 문단속을 잘해라’는 있으나 마나 한 조언으로 끝날뿐이었다.


3. 집이 비어있을 때 집주인이 말도 안 하고 드나든 일 

집을 며칠 비운 것도 아니고 낮에 학교를 잠깐 다녀올 때였다. 집주인이 내 전화번호를 모른다거나 전화를 했는데 내가 받지 않았던 것도 아니었다. 그 집에는 작은 방 안쪽에 보일러실 겸 세탁실이 있었고 창문 한편에 바깥으로 통하는 보일러 배관이 있었다. 배관이 지나가도록 하기 위해 유리창이 둥근 모양으로 뚫려있었는데, 그쪽에 마감이 잘못된 것인지 배관 귀퉁이에서 시작된 실금이 점점 내려오더니 창문의 2/3가 깨질 정도로 갈라진 자국이 늘어나게 되었다. 그런데 집주인이 그걸 밖에서 봤는지, 내가 낮에 집을 비운 사이에, 나한테 말도 안 하고 유리를 교체해 둔 것이었다. 그 유리는 분명히 안에서 떼어내고 바꿔야 하는 것이어서 집에 들어오지 않고는 바꿀 수 없는 구조였다. 집에 사는 당사자에게 아무런 말도 없이 집에 드나들었다는 사실에 화가 나서 집주인에게 따졌더니, ‘어차피 바꿔야 하는 건데 오히려 고마워해야 할 일 아니냐’는 것이었다. 집주인의 만행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4. 부동산에서 집에 사람이 있는지 확인도 안 하고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와서 식겁한 일

주말 이른 시간에 외출 준비를 하던 때였다. 샤워를 하고 얼마 안 돼서 머리는 젖어있었고, 아주 다행히도 옷은 다 입은 상태였다. 통근 왕복 세 시간에 에어컨도 없는 그 방에서 여름을 나느라 하루빨리 나가고 싶어 부동산에 집을 내놓은 상태였지만 보통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을 아무런 연락도 없이 보러 오진 않지 않나. 3분만 더 일찍 그들이 문을 따고 들어왔어도 나는 벌거벗은 채로 집을 보러 온 남자와 공인중개사를 영문도 모르고 맞이할 뻔했다. 지금 생각해도 화가 나는 일이다. 공인중개사 말로는 집주인이 ‘세입자가 없을 거라고’ 했다는 것이다. 불명확하게 말한 집주인의 말을 그대로 믿고 노크도, 확인도 안 하고 다짜고짜 문부터 연 중개업자도 잘못이지만, 중개인에게 연락을 받고도 집을 보러 올 거라는 한 마디 예고도, 연락도 없이 집을 보여주게끔 한 집주인은 더 최악이었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너무도 꺼림칙해서 부동산에 집을 내놓은 걸 취소한 후 어쩔 수 없이 한 달 가까이 남은 계약기간을 꾸역꾸역 버텨냈다. 그야말로 버텨내는 일이었다. 석사 졸업논문의 인준 도장을 찍기도 전에, 졸업식도 전에 첫 직장을 얻었고, 출근을 하기 시작한 나는 당시 내 주변의 어느 누구에게도 힘들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내 인생의 그 어느 때를 돌이켜봐도 그 시기가 가장 힘들었다. 부천에서 양재까지 지옥의 출퇴근길을 버텨야 했고, 직장에서는 오전마다 저혈압에 다혈질인 팀장을 견뎌야 했고, 집에 돌아오면 에어컨 없고 창문이 한 방향으로만 나 있는 남향집의 더위를 견뎌야 했다. 6시에 퇴근해서 집에 돌아오면 오후 여덟 시 가까이 되는데, 그 시간에 침실의 온도는 33도에 육박했다. 그럼에도 나는 창문을 열지 못했다. 깨어있을 땐 그나마 열어두기는 했으나 그 조차도 블라인드를 내린 채 열 수밖에 없어서 어쨌든 바람은 통하지 않았고, 잘 때는 불안해서 더욱 열어둘 수 없었다. 방범장치가 하나도 되어있지 않은 2층이었고, 앞서 언급한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며 안전에 대한 불안감이 더욱 증폭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더위에 잠을 이루지 못한 채 밤을 지새우고, 불안함 때문에 자꾸만 뒤숭숭한 꿈을 꾸고 난 뒤에 어쩔 수 없이 출근해야 하는 아침을 맞이할 때면 세상의 온갖 행복한 일들이 사라진 것만 같았다.


이 집에서 나온 뒤에는 대략 세 평정도 될까 말까 한 고시원에 들어가서 살게 되었는데, 고시원이 더 쾌적하다고 느꼈을 정도로 나는 그 구옥 투룸에 질려있었다. 그렇다고 고시원 생활이 천국은 아니었을 거란 걸 이 글을 읽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으리라. 다음 '서울살이 시리즈'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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