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살이 몇 핸가요(8-9년 차, 2017.2~2018.2)
(위의 사진은 좁디 좁은 강남의 원룸에서 아주 작은 생명력이라도 느끼고 싶어 키웠던 초미니미 다육화분이다. 내가 잘 키우는 능력이 없어서였는지, 아니면 애초에 크게 자라지 못할 환경이었던 탓인지 미니 다육이는 금새 시들시들 생명력을 잃고 말았다. 3평 원룸에 간신히 몸을 뉘이며 살았던 그 시절의 나를 상징적으로 대변하는 것만 같다.)
2017년 초에서 2018년 초에 이르기까지 1년 동안 내 인생에 일종의 반환점에서 강남에 살았었다. 그 당시에 내가 강남역 근처에 산다고 말하면 이런 말들을 들었다.
‘좋은 데 사네.’ 혹은 ‘돈이 많나 봐’ 혹은 ‘자취하는 거 아냐? 월세도 비싼데 왜 거기 살아?’ 같은 반응. 내 ‘강남 살이’는 그 모든 반응에 제대로 응답하기가 귀찮고 피곤해지는 삶이었다. 여기까지만 읽어도 예상했겠지만 강남을 동경했다거나 강남을 좋아해서 그곳에 살게 된 건 결코 아니었다. 나는 강남역을 지날 때면 '강남스타일'이라는 노래보다는 2016년 5월에 일어났던 '강남역 살인사건'을 가장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왜 강남에 살았는가, 나는 이제 그때의 그 피곤했던 삶을 벗어나 평온을 되찾은 상태이니 이제야 그에 대한 대답을 해보려 한다.
첫째, 강남이라고 무조건 ‘좋은 데’ 사는 건 아니었다. 내가 살던 곳은 고시원보다 약간 넓은 네 평짜리 원룸이었다. 침대와 책상을 두고 나면 요가매트를 깔 아주 약간의 여유공간조차 남아있지 않은. 이런 원룸이 보증금 이천만 원에 월세 오십만 원이었다. 맞다, 물론 관리비 7만원과 전기, 가스는 별도.
둘째, 나는 돈이 많지 않았다. 오히려 강남에 살던 시기는 내가 가장 궁핍하던 시기였다. 첫 직장을 그만두고 월세 오십만 원에 관리비와 공과금을 더해 육십만 원 이상을 최소 고정비로 지출해야 하는 그때, 내 수중에는 딱 일 년 치의 퇴직금밖에 없었다. 그리고 퇴사 후 세 달 동안 당시의 최저 시급 수준에 맞춰 지급되었던 실업급여가 내 수입의 전부였다. 다행히도 수중에 있던 돈과 실업급여가 끊길 무렵, 퇴사한 지 넉 달만에 이직을 하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처음 받았던 월급은 세후 200만 원이 채 되지 않았다.
셋째, 그럼에도 분수에 맞지 않게 왜 강남에서 살았느냐면 첫 직장을 그만두기 전 몇 달간 지방으로 출퇴근을 해야 하는 기간이 있었는데, 통근버스를 타기에 그곳이 지리적으로 제일 편했다. 그리고 이사를 하기 전부터 퇴사를 계획하고 있었기 때문에 취업 준비를 위해 학원을 다닐 계획도 있었다. 영어 학원이든 각종 자격증 학원이든 강남이 제일 선택의 폭이 넓었다. 또한 내가 어디로 취업을 하게 될지 몰랐기 때문에 일단 서울의 모든 곳에서 가장 교통이 편리한 곳이기도 했다. 월세 대비 집의 가성비 측면을 따져보자면 강남은 최악이었을 수도 있으나, 서울의 어딜 가도 월세 50만 원 이하의 방을 구하기 어려웠고 앞서 말한 이유에서 그 당시 내 상황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었던 최선의 지역이 강남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선택에 대해서 후회할 수는 없었지만, 강남에 살던 당시 상황을 떠올려보면 우울하기 짝이 없었다.
많은 사람들은 강남 하면 화려함과 부를 떠올리지만 나에게는 복잡하기만 하고 걷기 싫은 거리가 떠오른다. 도무지 힘을 빼고 걸을 수 없었던 그 거리. 역에서 집까지 걸어오는 10분 남짓 짧은 거리에 강남의 싫은 풍경이 모두 담겨있었다. 기본적으로 사람이 너무 많아 내가 가는 목적지를 향해 똑바로 걸을 수 없었다. 취한 사람을 피해, 나와 다른 방향으로 걷는 마주오는 사람들을 피해, 좁은 골목을 어떻게든 비집고 들어오겠다는 승용차와 오토바이, 자전거를 피해, 또한 심지어 비둘기들을 피해 이리저리 걸어야했다. 일상에 지친 어느 날에 힘들어서 조금이라도 천천히 걸을라치면 호객하는 누군가가 나를 붙잡았고, 전도하는 이들이 ‘저희 이상한 사람 아닌데요’ 하면서 말을 걸었고, 아마도 아무나 붙잡고 다녔을 수상한 남자가 쫓아온 적도 있었다. 그런 일들을 겪을 때면 만만해 보이는 내 인상과 조그만 체격이 원망스러워지곤 했다. 그뿐만 아니라 안이 들여다보이지 않게 새까만 선팅지로 막혀있는 뭘 하는지 알 수없지만 '건전 업소'라고 적혀있어 더욱 건전하지 않아 보이는(정말 건전하다면 굳이 '건전'하다고 써붙여야 하냐는 말이다) 술집들이 강남역에서 집까지 가는 거리에 줄지어 있었다. 그 앞은 밤 10시 이후부터 그야말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번쩍이는 외제차가 입구 앞에 서고 양복 입은 남자가 내리고, 몸에 딱 달라붙는 짧은 원피스와 하이힐을 신은 젊은 여자가 그를 맞이하는 듯한 장면을 여러번 보았다. 어쩐지 봐서는 안 될 장면을 본 것 같았고, 내가 본 그 모습을 부정하고 싶어서 애써 그 불쾌감을 지우곤 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불쾌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게다가 땅값이 비싸기로 소문난 강남에는 도무지 앉아서 쉴 수 있을만한 여유로운 공간이 없었다. 갑갑한 좁은 집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디든 나와서 쉬어야 했는데 어딜 가도 내 처지에는 부담스러운 가격의 커피나 음식을 사야만 하는 곳들 뿐이었다.
하루빨리 그런 강남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취직한 뒤 월세 계약기간이 끝나자마자 회사 근처로 도망치듯 이사를 했다. 그리고는 강남 근처에서는 웬만하면 약속을 잡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강남이라는 지역에 그토록 질색하게 된 까닭은 아마도 내가 그곳에 가장 어울리지 않는 상황이었을 때 그곳에 살았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딱히 강남에 어울리는 낮에는 따사로운 인간적인 여자인데 밤에는 어쩌고 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 건 아니었다.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역시 마찬가지로 나는 강남에 어울리기 힘든 사람인 것 같다. 이런 사실이 지금은 그리 애석하지 않다. 왜냐하면 나는 이제 강남에 살지 않으며 앞으로도 살지 않을 작정이니까. 또 마찬가지로 '오빤 강남스타일'이라며 스스로를 소개하는 사람을 만난다면 빠르게 손절할 것이다. 강남스타일이 뭔지는 몰라도 난 돈이 많은 것도, 사람들로 밀집된 거리를 좋아하는 것도, 술집을 좋아하는 것도, 심지어 강남스타일 노래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