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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호라 Aug 04. 2022

낙성대학교 말고 서울대학교 말고…

서울살이 몇 핸가요(9-12년 차, 2018.2 - 2022. 2)

낙성대. 강감찬 장군이 태어나 그의 탄생 설화로 이름이 붙여진 지역이다. 강감찬 장군의 어머니가 그를 낳은 날 밤에 큰 별이 떨어졌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곳에 살기 전까지는 생소한 이름이었다. 누군가가 오해했 듯 대학교의 이름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곳은 이름과는 달리 낙성대학교라는 곳은 없고 서울대학교와 관악산이 있는 곳이다. '서울대입구역'이 아니라 낙성대를 소개한 이유는 낙성대역이 실제로 서울대학교까지 더 가깝기 때문이다. (지금은 신림선 지하철이 개통되어서, 관악산역이 제일 가까운 것 같다.)


이 낙성대에 위치한 서울대학교에서 나는 2017년 11월부터 2022년 2월까지 만 4년 하고도 3개월 동안 직장을 다녔다. 낙성대역에서 내려 02번 마을버스틀 타고 낙성대공원, 호암교수회관, 후문과 기숙사를 지나는  일곱여덟 개 정도의 정류장을 거치고 나면 내가 근무했던 건물 근처에서 내릴 수 있다. 대략 4년제 대학을 입학하여 졸업할만한 기간만큼 대학교 교직원으로 일한 셈이다. 그리고 서울대생들이 자취할만한 동네에서 자취했다. 1년은 낙성대역 인근에서, 1년은 신림역 인근에서. 나머지 기간 동안은 사당에서.


조용한 곳을 좋아하는 내 성격에 이 동네의 분위기도 나와 잘 맞았다. 대학생과 고시생이 많은 동네 특성상 어느 카페를 가든 독서실처럼 조용했다. 학구적인 동네의 분위기가 책을 더 많이 읽게 만들어주는 것같았다. 젊은 일인가구가 높은 비중을 차지하기도 해서 음식점에서 혼자 식사를 하는 사람도 흔했다. 강남에서는 내가 그곳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인 것 같았다면, 낙성대에서는 원래부터 내가 이곳의 주민인 것처럼 느껴졌다. 대부분의 거리가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조용하고 편안한 덕분에 쾌적했고, 독특한 콘셉트의 특색을 가진 가게들이 종종 있어 지루하지 않은 동네였다. 지루할 법하면 관악산에 한 번 올라가면 지루함 따위 싹 날려버릴 수 있었다.


대학을 졸업한 뒤 대학생의 동네에서 살고 캠퍼스를 마음껏 누빌 수 있다는 건 꽤 괜찮은 삶이다. 학교를 졸업한 뒤 학교에서 멀어졌다가 다시 학교로 돌아오게 되면 캠퍼스의 산책로가 얼마나 소중했는지 깨닫게 된다. 특히나 낙성대로 오기 전까지 산책할만한 공원이 없고 무일푼으로 휴식을 취할 공간이 없는 강남에서 한동안 살았던 나는 더욱 그랬다. 아무 때고 몇 만권의 장서 사이를 누빌 수 있는 학교 도서관이 얼마나 멋진 곳인지, 낡은 책의 냄새가 가득 베인 그곳에 가면 얼마나 마음이 편안해지는지 알게 되었다. 나는 대학 내에만 있는 3천 원짜리 학교 식당 백반을 점심으로 먹고, 값싼 2천 원짜리 아메리카노와 3천 원짜리 카페라테를 마시며 나무와 꽃이 많은 캠퍼스를 산책하곤 했다. 처음에는 쓸데없이 넓기만 하다고 생각했던 캠퍼스인데, 나는 점점 점심시간에 산책하는 범위를 넓혀갔다. 매일 걷다 보니 쓸데없이 넓지만은 않았다. 나무와 꽃이 많았던 그 캠퍼스는 계절의 변화에 따라 나날이 다른 풍경을 보여주었다. 오늘은 학교의 연못을 구경했다면 다음 날에는 공대 쪽으로 올라가서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을 즐겼고, 그다음 날에는 정문 쪽으로 걸어가서 교내 미술관의 무료 전시를 즐기기도 했고, 규장각을 들어가 보기도 했다. 가끔은, 아니 꽤 자주 그 정취에 취해 행복함에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곤 했다.


캠퍼스에 널려있던 대학교에서만 볼 수 있는 서울대 '대학신문'이나 '서울대저널'도 즐겨봤다. 학생들의 대자보나 퀴어 동아리 잡지도 내 생각을 오랜 기간 유연하게 유지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서울대학생들의 여론을 간혹 '스누라이프'나 '에브리타임'에서 인용하여 기사거리로 삼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곳은 학생들의 진정성 있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깊이 생각하고 성찰하여 정제된 글을 쓰는 통로이자, 절박하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싶어 하는 이들이 쓰는 대학신문과 대자보, 학내 저널 등을 통해 봐야 한다. 덕분에 서울대에서 일하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대학의 민낯들도 많이 봤지만, 멋진 글과 의미 있는 활동을 학생들이 많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딴 얘기지만, 나는 서울대학교 출신 뮤지션들을 굉장히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이를테면, 장기하, 이적, 이 날치 밴드처럼. 독특하고 천재적이면서 섬세한 감수성까지 지닌 이들이 정말 많다.) 이렇게 대학생이 아니면서도 대학생처럼 누릴 수 있는 것이 일종의 복지라고 생각하며 꽤 오랜 기간 평온한 직장생활을 즐겼다. 흔히, 교직원이라고 하면 '신의 직장'이라고 했는데, 늘 그런 건 아니었지만 내 경우에는 틀린 말이 아닌 것도 같았다.


꽤 오래 그곳에서 일하게 된 이유는 그뿐만 아니라 일 자체가 수월하면서도 내가 좋아하고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이 포함되어있기 때문이었는데, 그 일 중에 하나는 대학생들을 위한 글쓰기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일이었다. 일 년에 한두 번은 내가 좋아하는 작가를 초청하여 특강을 꾸릴 수 있는 기회도 있었다. 덕분에 장강명 작가와 은유 작가, 김초엽 작가를 만날 수도 있었다. 그럴 땐 내가 꼭 성공한 덕후 같았다. 내가 기획하고 운영하는 프로그램에 대해 대학생들의 긍정적인 후기를 들을 수 있던 것도 보람되고 기뻤다. 학생들이 쓰는 수준 높은 리포트들을 보며 많이 배우기도 하고 좋은 자극을 받기도 했다. 또한 돌이켜보면 이때 업무로서 출판, 편집과 관련된 일을 경험하고, 강연과 워크숍을 기획하고 운영해보았던 일들이 내 취향을 새롭게 발전시켜주었다. 20대 중반 이전에는 대학 전공에 영향을 많이 받아서 심리학과 철학서적을 위주로 공부하고 읽었는데, 여기서 일하면서부터는 문학과 페미니즘, 자연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덕분에 글도 많이 썼고, 근처 서점의 워크숍에도 참여했었고, 독립출판을 했고, 책도 많이 읽었다.


그런 곳을 떠나오게 된 건 직장이 더 이상 나에게 맞는 곳이 아니게 되어서였다. 교통사고를 당하듯 어느 날 갑자기 부서 이동을 당하게 된 사건이 가장 결정적이었다. 부서 이동을 당한 뒤 그래도 1년 넘게 버텼지만 결국은 내가 있을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크게 들었다. 해오던 일의 성격이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나만 부서 이동을 당했지만  후에는 조직 자체가 개편되면서 다른 많은 직원들도 하루아침에 부서이동을 당했다. 10 넘게, 20 가까이 같은 일을 전문성 있게 해오던 분들도 부서이동을 당하고는 회의감을 느끼는 모습을 곁에서 보게 되었다.  때는 나도 그곳을 은퇴할 나이가  때까지 다녀도 괜찮겠다고 생각했었으나, 20 가까이 일하고도 일의 주도권이 완전히 타인에게, 조직에게 있을 수밖에 없는  모습을 보고  늦기 전에, 새로운 일을 시작할 용기가 완전히 없어지기 전에 나는 그곳을 탈출해야겠다고 결심했다. 탈출해야겠다는 결심을 감행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결정적으로 퇴사를 망설이지 않게    2022 연봉 인상률이 '1.04%'라는 소식이었다. 정규직이 아니라서 호봉에 따른 인상이 별도로 있는 것도 아니고 다른 수당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월급으로 치면 그야말로 이만  남짓 오르는 것이었다. 물가상승률이 4.1%라는데(2022 3 기준. 2022 7 현재는 6.3%라고 한다), 그렇게 되면 연봉이 깎이는 수준이었다. 올해만 그랬던 것도 아니고 작년에도 그랬고, 내년에도 그럴 것이었다. 그런 보잘것없이 보장된 최저 수준의 월급과 암울한 미래의 실체를 확실히 확인하자마자 나름대로 안온했던 직장을 걷어차버릴 용기가 불쑥 솟아났던 것이다. 직장을 그만두자 내게는 서울에 있을 이유가 없어졌고, 서울의 단점만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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