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호라 Apr 14. 2022

여행을 마치며, 나는 다시 떠날 궁리를 했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18.10.12.-13.)

안녕, 프라하

J와 나는 충분히 지쳐있었고, 나에게 이번 여행은 그 전까지의 내 인생에서 가장 긴 여행이었지만(다음 해인 2019년에 14박 15일 스페인 여행으로 이 기록을 경신했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공항에 가는 길이 마냥 후련하고 즐겁지는 않았다. 이 여행을 통해서 막연히 품고 있던 유럽에 대한 환상은 이제 환상이 아닌 구체적인 행복으로 다가왔다. 나는 분명히 여행할 때 그 어느 때 보다도 행복했다. 돌아가는 비행기에서부터, 아니 그 이전부터 나는 여행하면서도 줄곧 또 오고 싶다고 생각했다. 어디든 계속해서 여행하고 싶다고. 그렇지만 끝이 있다는 걸 아는 여행이기에 즐거운 것이겠지. 끝을 준비하면서 이 순간순간을 최대한 만끽하자는 마음이 있었기에 그리 둘도 없는 행복한 순간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이겠지. 


어쩌면 뻔한 생각이다. 결국엔 일상으로 돌아와야 하기 때문에 마음을 다잡으며 하는 생각. 사실 누구든 돈만 풍족하면 매일매일 여행하며 한량처럼 사치스럽게 여러 국가들의 명소를 다 돌아다니며 즐기고 싶을 것이다. 어쨌든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만큼의 여유를 누릴만한 시간적, 물질적 여유가 없기에 한계가 있는 여행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돌아오는 비행기의 기내식에서 포춘쿠키가 나왔는데 열어보니 이런 문구가 쓰여있었다.


“If your desires not extravagant they will be granted.”
(네 욕망이 사치스럽지 않다면? 이루어질 것이다.)


‘fortune’(운, 복) 쿠키에서 나올만한 말이라기엔 애매한 말이다. 기왕 운 또는 복을 주는 거라면 ‘사치스럽지 않다면’이라는 단서를 달지 않으면 안 되나? ‘extravagant’ (사치스러운)의 기준이 어느 정도 인지 묻고 싶어 진다. 영어를 잘 몰라서 그 단어의 의미나 뉘앙스가 파악되지도 않는다. 어쨌든 일 년에 한 번 정도의 유럽여행은 나에게 사치스러운 것일까? 매년 올 수 있을까? 일 년에 두 번, 세 번의 장기 해외여행은 사치일까? 내가 돈을 많이 벌면서도 시간적으로 여유로운 사람이 된다면 그건 사치가 아니겠지. 내 처지에 따라 사치스럽다는 단어가 전혀 다르게 쓰일 수 있다는 생각에 미치자 씁쓸해졌다. 어쨌거나 이번 여행을 마무리하며 내가 갖게 된 욕망, 그리고 이루고자 하는 것이 있다면 이것이다. 일 년에 한 번 정도 열흘에서 보름 남짓한 해외여행을 즐기는 게 내게 그리 큰 사치가 아니길 바라며, 다음 여행을 기약한다.


라고 쓴 뒤, 1년 후 나는 J와 함께 스페인 여행을 다녀왔고, 그로부터 몇 달 후 코로나19 팬데믹 시대가 왔다. 다시 생각해도 2019년 11월, 그때 스페인을 다녀와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만 2년 동안 해외여행을 가지 못하는 동안 22살 때 처음으로 만들었던 여권이 만료되었고, 얼마 전 새로 여권을 만들었다. 그 사이 여권은 디자인이 세련되게 바뀌었다. 당장은 구체적인 여행 계획이 없지만 새 여권을 보며 두근두근했다. 곧 해외여행을 갈 수 있게 되기를 꿈꾸며 묵혀뒀던 여행기를 이제야 마무리한다. 그동안 이 여행기를 오랜 기간에 걸쳐 조금씩 꺼내 읽으며, 읽는 김에 조금씩 손 봐서 새로 발행하며, 3년 전의 여행을 다시 엊그제 있었던 일처럼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어 다시금 행복했다. 시시콜콜 기록해 두었던 과거의 나, 칭찬해.

이전 14화 그냥 걸었던 프라하 마지막 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