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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까리 Jun 22. 2021

귀천은 없지만, 특성은 있다.

좋은 직업이란 과연 뭘까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


살면서 다양한 사람들과 마주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는 다양한 직업을 간접 체험한다. "3D 업종이다." "빡세기로 유명하다." 등 특정 직업의 힘듦과 고됨을 논하면서 직업 간의 차이와 좋고 나쁨을 심심치 않게 논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아직 세상은 아름답다고 믿고 싶은 나는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는 말은 감히 옳은 말이라고 주장하고 싶다.


하지만, 30년 넘게 살며 아직도 되고픈 모습이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뀌는 나로서는 어딘지 모르게 저 말이 찜찜한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나름의 개똥철학을 바탕으로 살면서 한 번쯤은 들어본 저 말을 이렇게 바꿔 부르고(?) 싶다.


"직업에는 귀천은 없지만, 특성은 있다."


구태여 한 구절을 추가하고픈 이유는 예전과는 달리 이제는 되고 싶지 않은 직업들이 늘어가기 때문이다.  


시작은 경찰관이었다. 어린 나이에 악의 무리를 소탕하고 정의를 몸소 실현하며, 강인하고 곧은 이미지로 인해 고교 시절, 경찰대 시험을 치를 정도로 한때 경찰관이 되고 싶던 때가 있었다. 성인이 되고 난 후 지금까지 꾸준히 반복 중인 "나 뭐 하고 살지?"라는 질문에 어김없이 다른 직업들을 탐구하던 중 어린 시절의 꿈인 경찰관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다시 접근한 경찰(정확히는 강력계 형사가 더 적합하다고 볼 수 있다.)이라는 직업은 예전과는 너무나도 다르게 다가왔다. 악의 무리를 소탕하는 정의로움은 범죄자를 대하며 기본적 인간관에 대한 의심으로, 강인하고 곧은 육체와 정신은 일생에 한번 마주할까 무서운 사건과 사고의 현장에 두려움 없이 뛰어들어야 하는 강요된 용기로 재해석되었다. 


기자 또한 비슷하다. 사회 전반에 걸쳐 여러 이유로 은폐되거나 왜곡될 수 있는 사건을 진실에 기반하여 여론의 힘으로 바로잡는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평화로운 세상에서 살고 있는 내가 보는 대부분의 기사는 자극적인 내용이 많았다. 특히 심한 경우 약간의 과장을 보태어 푸주한보다 더한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특정인의 아픈 과거를 난도질하며 돈을 버는 행위가 내게는 생계를 위해 동물의 고기를 써는 것과 비슷하게 보였다.



최근 시사 화보 잡지로 유명한 'LIFE' 사진전을 다녀왔다. 전쟁 당시 종군기자가 촬영한 사진을 보며, 기자라는 직업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앞서 적었던 경찰, 기자 그리고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많은 직업...

내가 이번 생을 어떻게 살고 싶은지와 잘 어울린다면, 그 직업이 가지는 장단점은 중요치 않구나...


"직업에는 귀천은 없지만, 특성은 있다."

업적 특성을 찾기 전에 내 특성부터 알아 보는 것이 먼저였는데... 

어리석은 나는 30년을 살고도 그저 어렵다는 이유로 나를 알아보려 하지 않고 그저 직업이라는 틀만 연신 구경하기 바빴다.


나는 앞으로의 시간을 어떻게 쓰고 싶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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