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고민만 쌓여가는 일상
나는 기념일이나 생일에 꽃다발을 선물하는 것을 싫어한다.
상대방이 꼭 원하는 경우, 최선을 다하여(?) 축하를 하기 위한 목적으로 종종 해본 적이 있긴 하지만 가급적이면 꽃다발은 제외하고 축하의 의미를 전달하고자 노력하는 편이다.
그게 뭐라고 노력까지 할 일이냐고 물으면 내 입장에서도 딱히 할 말은 없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축하의 기쁨을 꽃다발로써 표현하는 일은 아주 모순적이다.
한 티비 프로그램에서 김영하 작가님은 "꽃 한 송이가 핀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에요."라는 말과 함께 온 힘을 다해 피는 꽃을 생각해보면 "졸업식이나 이럴 때 축하하면서 꽃을 주는 것은 네가 그동안 여기 도달하기까지 겪은 수고, 고통.. 힘듦에 대해서 내가 알고 있다"라는 의미가 있다고 전했다.
작가님의 의견에 공감하는 점도 분명 있지만, 내 관점에서는 살아있는 생명체를 순간의 기쁨과 행복을 위해 억지로 잘라 시한부 인생을 만드는 점이 꽤나 불편하다. 그뿐만이 아니다. 꽃다발을 만들기 위하여 몇몇 꽃들은 곁가지와 잎사귀 그리고 가시까지 전부 제거당하고 어쩌면 친하지도 않을 친구들과 함께 보면 예쁘다는 이유만으로 엉겨 붙어 작은 물통을 공유하며 그렇게 생을 마감해야 한다. 그러니까 억지로 시한부 인생을 선고한 후에 억지로 삭발을 감행한 뒤 그것도 모자라 임의로 같은 환자들과 병실을 배정하고 호흡기와 수액을 공유하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있는 친구들을 건네며 축하한다는 인사말과 함께 기쁨과 웃음으로 그 순간을 기억하고 이따금 사진이나 영상으로 기록하기도 하니 꽃들의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잔인한 순간을 수 없다.
물론 이 모든 이야기는 내가 기념일을 잊거나 꽃 선물을 왜 해주지 않냐는 질문들에 대한 내 방어의 수단이기도 하다. 지난 어버이날 "나이 서른이 넘도록 어버이날 꽃 한 송이 한 번을 안주냐?"라며 핀잔을 주던 어머니께 위와 같은 논리로 답변을 드렸지만, 반격으로 날아온 "낳아준 엄마는 꽃보다 못하냐?"는 소리에 바로 죄송하다고 고개 숙였다.
그러니 기념일을 잊지 않았다면, 조용히 꽃을 사시는 것을 추천드리며 위의 이야기는 최후의 보루로 남겨 놓으시라. 그마저도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한다는 것은 이미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P.S) 어버이날 현금은 챙겨드렸으니 오해 마시라. 물론 많지는 않지만 여하튼 꽃만 안 챙겼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