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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영 Jul 16. 2020

Say again!

"모르면 물어라"

미국에서 비행을 배우면서 한국 학생들이 가장 먼저 부딪히게 되는 난관은 ATC다. 조종사와 관제사의 교신인데, 그 말 속도가 워낙 빠른 데다 주고받는 내용이 마치 암호처럼 만들어져 처음엔 적응하기가 상당히 어려웠다. 더군다나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외국 학생들이 겪는 어려움은 더 컸다.


ATC(Air Traffic Control)
: 항공기가 안전하게 비행할 수 있도록 조언과 정보를 제공하는 교통관제  


교관이나 평가관은 학생 조종사의 영어 실력이 부족해 ATC에 대한 이해가 100% 완전하지 않다고 판단하면 언제든지 비행훈련을 중단시키고 ESL 수업을 강제적으로 듣도록 요구했다. 학생 입장에선 훈련 중단으로 진도가 늦어지면서 전체 유학기간이 길어질 뿐만 아니라 ESL 수업에 대한 학비 부담으로 경제적인 피해가 적지 않았다. 몇몇 한국 학생들이 이 부분 때문에 학교를 옮기는 사례도 있었다.


비행에 있어서 커뮤니케이션은 가장 중요한 부분 가운데 하나다. 관제사와 조종사는 물론 기장과 부기장의 의사소통 문제가 발단이 돼 인명피해로 이어진 항공사고도 최근 몇 차례 있었다. 미국 연방항공청에서도 자가용 조종사와 사업용 조종사 자격 평가 과정에서 English Proficiency 자격요건을 강화했기 때문에 학생 입장에선 억울하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논 타워 공항 라디오 콜 템플릿

나도 ATC로 애 먹기는 마찬가지였다. 툰지와 세 번째 비행을 하는 동안 입만 뻥끗거렸다. 관제사가 지시하는 말을 귀담아듣다 보면 내가 당장 해야 할 체크리스트나 조작을 빼먹기 일쑤였다. 시뮬레이터 수업에선 툰지의 아프리카 악센트도 그렇게 잘 듣고 이해했는데 왜 헤드셋을 끼고 비행만 하면 머리가 하얘지고 관제사 말이 순식간에 지나가는지. 그래서 헤드셋에 녹음기를 연결해 비행할 때마다 관제사와 나눴던 교신 내용을 녹음했다. 비행을 마친 뒤에 녹음 내용을 받아쓰기하며 공부했다. 학생들끼리 각자 교신 내용을 정리한 노트를 서로 교환해 가면서 복습하기도 했다. 그 외에 벌어질 수 있는 모든 시나리오 상황에 대한 교신 사례들을 외웠다.


공항 지도와 주변 지물 지형에 대해 빨리 익숙해지는 것도 중요했다. 관제사는 주로 공항 주변의 지형지물을 기준으로 벡터 사인을 주기 때문이었다.


"Cessna 94650, turn cross wind by the turnpike make left traffic."

-세스나 94650, 현재 업 윈드에서 턴파이크를 기점으로 왼쪽 방향으로 크로스 윈드에 진입해라.


위 지시처럼 턴파이크라는 지형지물을 이용해 방향을 알려줬다. ATC 공부를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liveatc.com에 들어가 원하는 시간과 공항을 설정해 항공기와 관제탑과의 교신을 계속해서 듣고 연습하는 것이다. 실 중계가 되기 때문에 공항 주변 하늘을 날고 있는 비행기들을 보면서 그들의 교신 내용을 청취할 수 있었다. 비행기 장비 노후화로 인한 낮은 오디오 음질 문제로 잘 들리지 않을 때도 있었다. 또 다른 비행기의 두 조종사가 동시에 push to talk button을 누를 경우 어떤 음성도 들리지 않게 돼 있어서 ATC를 놓치는 경우도 간혹 있었다.


push to talk button
: 관제사와 대화할 때마다 마이크로 자신의 음성을 전달할 때 누르는 버튼으로 요크에 달려있다.


이럴 땐 당황하지 말고 “say again”이라고 하면 언제든지 관제사가 지시한 내용을 다시 전달해준다. 툰지도 그렇게 가르쳤다. say again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그런데 이 say again 때문에 나는 로스에게 아주 박살이 났다. 첫 스테이지 평가를 하는 날, 그와 칵핏 안에서 이륙 허가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Riverside Tower, Cessna 4641P number 1 at runway 19R for work in closed traffic."

-리버사이드 타워, 세스나 4641P, 현재 활주로 19R에 1번으로 대기 중. 장주 계획임.

"Cessna 4641P, good morning. Cross runway 19R taxi 19L via lima hold short 19L."

-세스나 4641P, 안녕. 유도로 리마를 지나 활주로 19R을 건넌 다음 활주로 19L에서 대기해.

"Say again."

-다시 말해줘.

"Cessna 4641P, cross runway 19R taxi...."

-세스나 4641P, 활주로 19R을 건넌 다음...

"It was broken. Say..."

-라디오가 끊어졌어. 다시...


사실 지시 내용은 단순했는데 19L에서 이륙한 적이 없었을 때라 내용이 생소했다. 확실히 인지하기 위해 나는 say again을 요청했다. 그런데 다른 비행기에서 동시에 push to talk 버튼을 눌러서인지 관제사의 말이 끊어졌고 내용을 들을 수 없었다. 다시 버튼을 누르고 say again을 요청하려고 했다. 그러자 로스가 요크를 잡고 있던 내 손을 세게 낚아챘다. 그는 화가 난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직접 push to talk 버튼을 누르고 관제탑의 지시에 복창했다.


"Cross 19R taxi 19L via lima hold short 19L."

-리마를  따라 활주로 19R을 건넌 다음 활주로 19L에서 대기하겠다.


솔로 크로스컨트리 비행 Cessna 152


그때부터였다. 당장 해야 할 것들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멍하니 그대로 앉아있었다. 오로지 조금 전 상황만 머릿속에서 반복되고 있었다. 첫 스테이지 평가라 비행 전부터 잔뜩 긴장하고 있었는데 ATC를 놓치면서 이미 떨어졌을 거라 상심하며 자책하고 있었다. 비행 전에 내 긴장을 풀어주려고 가벼운 농담을 던졌던 로스는 그 이후 심각하게 굳은 표정으로 아무 말이 없었다. 칵핏 안 분위기는 냉랭했다. 무사히 이륙했지만 ATC 실수에 대한 생각을 떨쳐버리지 못했다. 적정 비행 고도와 속도를 놓친 채 최악의 비행을 했다. 최악의 상황은 그다음이었다. 활주로에 바운스 하며 착륙을 했고 이미 얼이 나간 상태로 행어로 돌아오던 중이었다.

 

"너 뭐 하는 거야?!"


로스가 고함을 질렀다. 헤드셋을 끼고 있던 탓에 고막이 터질 것 같은 큰 소리였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말해. 너 뭐 하는 거냐고?!"

"택시 하고 있었어."

"지금 여기서 계속 직진할 거야?"


정신 차리고 지면을 쳐다보니 반드시 지켜야 할 정지선을 막 지나치기 직전이었다.


"아..."


비행기 안에서 때 아닌 훈계가 이어졌다. 5분이 마치 1시간처럼 느껴졌다. 로스는 fuc*이란 단어를 중간중간 섞어가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알았다 실수였다 미안하다를 반복하며 그의 흥분이 가라앉기만을 바랐다. 이마를 타고 내려오는 식은땀을 닦아가며 택싱(지상에서 비행기를 이동시키는 행위)해서 행어로 돌아왔다. 보통 비행기에서 내리면 학생과 교관이 함께 날개와 꼬리 부분에 밧줄을 묶어 비행기를 고정시키는데 로스는 평가서와 헤드셋만 챙긴 뒤 문을 있는 힘껏 닫고 학교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사무실에서 얘기해."


비행을 마치면 교관은 학생과 그날의 비행이 어땠는지 늘 디브리핑 시간을 가졌다. 방 안에서 로스는 내게 물었다.


너 오늘 비행하면서 say again을 몇 번 말했어?



"두 번 했지."

"아니."

"두 번 했는데?"

"아니야. 내가 정확히 세어 봤는데 넌 say again을 서른여덟 번이나 말했어."


'한 시간도 채 안 되는 비행을 하면서 모든 교신 횟수를 통틀어 열 번도 채 안될 것 같은데 say again을 서른여덟 번 말했다니? 억지를 부려도 이건 아니잖아.' 


황당했다. 처음 이해할 수 없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평가 비행에서 say again을 두 번 이상 말한 모든 학생들에게 그는 왜 서른여덟 번이나 말했냐고 야단쳤다고 했다. 38이란 숫자를 유독 좋아했나 보다. 그는 학생이 완벽하길 원했다. ATC는 물론 지식과 기술 등 비행에 관한 모든 면에서 완벽해야 성에 찼다. 그에게 단 한 번의 say again도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그의 교수법이 가혹하다 느꼈다. 하지만 그 덕분에 학생들 모두 더 열심히 준비하고 연습했다. 완벽해지려고 노력했다. 비행은 완벽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나 위험하기 때문에. 그래도 ATC는 두 번이 됐건 서른여덟 번이 됐건 모르면 모른다고 솔직하게 물어보는 게 낫다.


로스는 ATC 외에도 그날 내가 비행에서 실수하거나 잘못한 부분을 열 가지를 지적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정하겠다는 의미로 오케이라고 말했다.


"오케이라니?"

"응?"

"오케이란 말하지 마. 문화적인 차이에서 네가 그렇게 말하는 거 같은데 잘못된 걸 알았으면 고치겠다고 얘기해."

"고칠게."

"그래. 좋아."


교관들 방에는 로스뿐만 아니라 치프 교관인 랜든과 릭 등 다른 평가관은 물론 여러 학생들이 들락날락하고 있었다. 그렇게 오픈된 공간에서 로스에게 무참히 박살당하면서 창피하고 부끄러웠다. 밖으로 나와서 혼자 브리핑룸에 앉아 그날 비행과 로스가 지적한 부분들을 되짚어봤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맞는 말이었다. 로스는 세스나 비행시간만 수만 시간에 달했다.


창피하단 생각에 잔꾀를 부려 순간을 모면하려던 적이 있다. 모르는 걸 감추려고 애쓰다 보면 언젠가 그 민낯이 드러나 더 큰 화를 불러올 수 있다. 모르는 건 죄가 아니라 하지 않았나. 모르면서도 아는 척하는 게 죄다. 모를 땐 그냥 ‘쿨’ 하게 물어보자. Say ag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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