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과감하게"
레벨오프
: 일정한 각도로 하강하는 비행기가 지면에 가까워질 때쯤 비행기 동체를 지면과 수평이 이루도록 만드는 조작
한창 랜딩 연습에 빠져있을 때였다. 어프로치 단계에서 레벨오프(일정한 각도로 하강하는 비행기가 지면에 가까워질 쯤 비행기 동체를 지면과 수평이 이루도록 만드는 조작)하기 위해 언제쯤 요크를 당겨야 할지, 또 어느 정도 당겨야 할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요크를 너무 일찍 당겨버리면 비행기가 갑자기 위로 치솟았다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마치 거센 파도에 출렁거리는 보트가 된 느낌이었는데 이를 벌루닝 현상이라 불렀다. 반면에 요크를 너무 늦게 당기게 되면 비행기 노즈에 있는 프로펠러가 땅에 부딪히는 사고가 발생할 위험이 있어 늘 조심해야 했다. 주변에 나보다 먼저 비행을 시작한 학생들을 잡고 도움을 청했는데 돌아온 대답은 하나였다.
백날 이야기를 해 줘도 그건 본인만이 알 수 있어요.
자신이 랜딩 감을 갖기 전까지 아무리 자세히 설명해줘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멀미날 정도로 벌루닝을 반복하면서 랜딩에 지쳐갈 때였다. 한국 학생들 사이에서 ‘맥가이버’라고 불리는 C가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미국에서 생활했던 C는 고장 난 어떤 차든 손쉽게 ‘뚝딱’ 고치고 학생들의 머리카락을 그들이 원하는 어떤 스타일대로 자를 수 있었다. 그래서 그런 별명을 갖게 된 건데 그런 C가 내게 이렇게 조언을 했다.
형, 마음속으로 레벨오~~ 피하고 말하면서 요크를 잡아당겨 봐요.
이 박자가 중요해요. 레벨오~~ 프.
생각해보니 Y의 말이 맞았다. 실제로 교관과 비행할 때에도 내가 요크를 잡고 랜딩 시도를 하면 툰지는 항상 내가 생각했던 적절한 시점보다 조금 더 일찍 요크를 잡아당기라고 지시했다. 그 바람에 늘 벌루닝이 일어났고 불안정한 착지로 이어졌다. 세 번째 랜딩 연습을 위한 비행을 하던 날, 난 두 선배의 조언을 머릿속에 계속 떠올렸다. 활주로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파이널 구간으로 접어들었을 때였다. 속도를 65노트에 맞춘 뒤 피치와 파워를 조절했다. 최대한 활주로 중앙선과 비행기의 기수가 일직선이 되도록 맞춰가며 하강했다.
비행기가 점점 활주로에 가까워지자 툰지는 겁이 났는지 자신의 왼손으로 창문 위에 달린 손잡이를 움켜쥐며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오늘 만큼은 내 방식대로 비행하겠다고 단단히 각오한 터라 그의 지시와 행동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비행기는 평소보다 한참 더 내려가고 있었다. 활주로 바닥에 가까워지면 질수록 땅에 처박지는 않을까 겁도 났다. 하지만 이번에는 반드시 랜딩감을 잡겠다는 의지로 요크를 잡은 왼손에 더 힘을 주며 과감하게 하강했다. 순간 오금이 저린다는 표현을 실감했다.
C가 알려 준 박자 그대로였다. 그리고 서서히 요크를 잡아당겼다. 그러자 비행기가 지면과 수평을 만들더니 앞으로 얼마 가지 않아 활주로에 부드럽게 안착했다. 레벨오프 다음 요크를 잡아당겨 그라운드 이펙트를 최소화하는 플레어 단계마저 생략됐다. 바퀴의 충격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안정적이었다. 이렇게 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얼떨떨했다. 어쩌다가 이뤄낸 안정된 착지에 놀랐다.
“뭐야! 너 전투기 조종사야?”
툰지는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반색했다. 어찌됐든 처음 혼자 힘으로 랜딩 했다는 생각에 안도하고 기뻤다. 옆에 있는 툰지에게 입고리만 살짝 올리는 것으로 내 기쁨을 표현했지만 그 순간 마음속으로 소리 지르고 환호하고 있었다.
비행을 마치고 흥분한 상태로 학교로 달려갔다. 당장 누구라도 붙잡고 랜딩 때 느낀 짜릿함을 공유하고 싶었다. C와 Y를 찾아가 천진난만한 어린 아이처럼 스릴 가득했던 칵핏 안 시간들을 털어 놓으며 부드러웠던 랜딩을 자랑했다.
준, 오늘 랜딩 정말 끝내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