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준영 Jul 12. 2020

멀티태스킹

"냉정하고 침착하게"

시뮬레이터 안에서 교관들은 프로그램화된 비행 상황을 무작위로 연출했다. 그러면서 학생이 체크리스트 내용을 입으로만 외우는지 아니면 말하면서 실제로 계기를 점검하는지 꼼꼼히 확인했다. 가령 고도계를 고의로 고장을 낸 뒤 학생이 이를 인지하고 그 상황을 어떻게 대처하는지 유심히 지켜봤다. 비행학교 교육의 대부분이 이런 식이었다. 학생 조종사가 예상치 못한 상황을 알아채고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제대로 대처하는 법을 반복 훈련을 통해 가르쳤다. 툰지가 교관석에 앉아 간단한 컴퓨터키 입력으로 오작동하게 만들 수 있는 계기가 열 가지가 넘었다. 당황했다. 게다가 이리가라, 저리가라, 몇 피트로 상승하라, 하강하라 등 잠시라도 쉴 새 없이 옆에서 지시했다. 툰지는 그 와중에 관제사 역할까지 맡아 복잡한 ATC를 꾸며냈고 나는 그 내용을 즉각 판단하고 복창해야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내가 비행기 조작과 고장 난 계기를 찾아 헤매는 동안 비행 이론 문제들을 퍼붓기 시작했다. 


양력이 뭐야? left turning tendency가 뭐야? gyroscope effect가 뭐야?



가뜩이나 비행도 마음대로 안 되는데 고장 난 계기를 찾아서 보고해야 하고 ATC의 지시에 복창하고 따라야하며 이론 문제에 대한 답을 동시에 생각하다보면 복잡해진 머리는 안 움직이고 이마에선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기에 답을 알고 있다하더라도 머리에서 번역해 입으로 나오기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세스나 152 N4641P 내부


하지만 교관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교육을 중단시키고 학생이 놓친 것들을 빼먹지 않고 하나하나 지적하며 왜 놓쳤는지 이유를 묻는다. 실수한 것을 잘 알기에 학생은 기가 죽고 교관의 질문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 교관은 다시 묻는다. 왜 대답을 안 하냐고. 교관은 잘못된 부분을 고쳐주기 위해 질문하지 학생을 다그치기 위해 질문하지 않는다. 하지만 교관의 공격적인 목소리와 태도에 학생들은 고개를 숙이고 주눅이 든다. 이러면 교관은 학생이 실수한 걸 모르는 거나 영어를 못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몇몇 한국 학생들이 이런 경험으로 영어 수업을 받아야 했다. 교관의 이런 교수법은 어느 정도 계산된 것이었다. 학생들을 곤란한 상황으로 몰아넣은 뒤 그 안에서 얼마나 침착하게 대처하는 지를 확인한다. 첫 시뮬레이터 평가에서 이런 고난을 겪고 나면 학생들은 넋이 나간다. 그리고 교관은 학생들을 더 혹독하게 단련시킨다. 가능한 모든 계기를 고장 낸 뒤 복잡한 ATC를 지시하며 애매한 기상조건을 제시해 학생이 혼자서 대처할 수 있도록 만든다. 

조종사는 항공기의 안전과 운항을 책임지는 결정권 자이다.


이 때문에 모든 환경에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실제로 예측하지 못한 상황도 연출되기 때문에 항공기 사고가 발생한다. 인생도 언제나 내 예상대로 흘러가지는 않는다. 예측 불가한 상황을 맞닥뜨렸을 때 자신만의 진정한 대처능력이 발휘된다.    



이전 06화 시뮬레이터 훈련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