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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영 Jul 12. 2020

첫 비행

"첫술에 배부르랴"

시뮬레이터 과정을 마치고 툰지와 첫 비행을 나갔다. 두 사람 몸무게를 합하면 400파운드에 가까웠다. 그래서 비행 훈련 때마다 기름을 가득 채우지 못했다. 이런 장정 둘이 좁은 세스나 칵핏(조종석)에 나란히 앉다보니 어깨가 자주 부딪쳤다. 남녀가 밀폐된 공간에 어깨와 팔이 맞닿은 채 시간을 보낸다면 없던 정분마저 생기겠지만 다 큰 수컷들끼리 털이 수북이 난 팔을 서로 부비다 보면 이 느낌이 여간 찝찝한 게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불쾌한 기분을 느끼는 것도 잠시뿐, 엔진 시동을 켜고 체크리스트를 따라 하나 둘 계기반을 점검하다보면 오롯이 비행에 집중했다. 관제탑으로 부터 이륙 허가를 받고 활주로에 들어서자 시뮬레이터에서 가졌던 느낌과 전혀 딴 판이었다. 좌측에서 불어오는 강한 바람 탓에 비행기를 활주로 중앙선에 맞춰 나가기도 버거웠다. 그때 툰지는 파워를 올리라고 재촉했다.


연료를 넣지 말라는 Do Not Refuel 사인

"RPM increase, T’s & P’s Green, Airspeed alive!"


파워를 최대한 올리고 요크를 끌어당겼다.


"그라운드 이펙트 조심해!"


당장 요크를 당기라고 해서 서둘러 잡아당겼더니 또 너무 많이 당겼다고 나무랐다. 적당히 기수를 내렸다가 활주로에서 조금씩 멀어지면서 67노트에 맞춰 상승했다.


"좋아. 잘했어"


툰지는 화를 내다가 돌변해 칭찬했다.  


"After takeoff check, Brakes on & off, check T’s & P’s…"


이륙 직후 비행기가 어디로 가는지 신경 쓸 겨를도 없이 무의식적으로 체크리스트를 줄줄 외웠다. 툰지는 서쪽으로 90도 턴을 해서 라디오 주파수를 바꿔 교신하라고 지시했다. 주파수를 바꾸다 보니 날개 균형이 흐트러졌다. 요크를 바로 잡아 수평에 맞췄더니 이미 교신할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I have control.



4000피트 상공까지 올라갔더니 툰지가 외쳤다. 요크와 러더에서 손과 발을 떼라는 지시인데 그게 마음대로 안됐다. 첫 비행인데 그에게 조종간을 넘기는 게 불안했다. 툰지를 못 믿어서가 아니라 그에게 내 목숨을 맡기는 것과 마찬가지다 보니 내심 두려움이 앞섰다. 아니나 다를까 툰지는 급상승과 급하강을 연이어 선보였다. 놀이공원의 오르락내리락 반복하는 수직낙하 기구를 타는 기분이었다. 바람도 강하게 불다보니 속이 울렁거렸고 시간이 자나면서 구토하고 싶은 기분이었다. 툰지는 뒤늦게 새하얗게 질린 내 얼굴을 보더니 하강을 멈추고 수평 비행했다. 일종의 신고식이었다. 불편하면 문 열고 토하라고 하는데 아침에 먹은 게 없다보니 입 밖으로 나올 게 없었다. 속이 뒤집어 질 듯 한 울렁거림에 억지로 손가락을 입안으로 넣었다. 기껏 입에서 나오는 거라곤 침뿐이었다. 그런데 창밖으로 내 뱉은 침이 강한 맞바람에 내 얼굴과 뒷좌석으로 되돌아 날아왔다. 더럽고 창피했지만 그런 것들을 따지고 챙길 만한 기운이 전혀 없었다. 공항에 착륙하기 까지 걸린 10여 분이 마치 한 시간처럼 길게 느껴졌다. 활주로에서 학교 행어로 택시해서 돌아오면서 창문을 열고 크게 심호흡을 했다. 그제야 정신이 조금씩 돌아왔다. 


교관 툰지와 첫 비행 Cessna 152


이거 내가 잘못 선택한 길인가? 나랑 안 맞는 건가


의심이 들면서 깊은 고민에 빠졌다. 유독 나만 비행 멀미가 심한지 아니면 다른 사람도 비슷한 경험을 하는 건지, 자가용 면장 과정을 먼저 시작한 친구들에게 물었다.


"너 첫 비행 어땠어?"


근육으로 다져진 다부진 체격의 파나마 청년 데이비드는 온몸에 땀이 다 젖을 정도로 멀미했다고 했다. 비행 잘하기로 소문난 J도 토할 직전까지 갔다고 했다.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안도했다. 그래도 불안한 마음에 항공사 부기장으로 근무하는 친구에게 연락했다. 자기도 멀미 체질이라 힘들었는데 시간이 지나면 다 괜찮을 거라 위안했다. 다음날 이어진 두 번째 비행은 다행히 별 문제가 없었다. 4천 피트 상공에서 털사의 모습도 사진에 담을 정도로 여유가 있었다. 그날 비행에서 첫날 느끼지 못했던 짜릿함을 맛 봤다. 비행에 ‘중독’ 된다는 말의 의미를 알 것 같았다. 롤러코스터나 바이킹 같은 놀이기구 타는 게 싫어서 그동안 놀이공원 근처엔 얼씬도 하지 않았었다. 역시 인간은 적응하지 못할게 없다. 새로운 경험에 주저하지 말자. 도전하는 자만이 성취의 기쁨을 아니까.


연일 찌푸린 날씨와 지상학술수업으로 인해 한동안 비행을 못했다. 거의 나흘 만에 처음 요크를 다시 잡았는데 강한 바람 때문일까, 아니면 빈속에 비행해서 일까. 두 번째 비행 이후 없어졌던 멀미를 다시 시작했다. 엔진 고장을 가장한 비상 착륙 훈련. 시뮬레이터에서 지겹도록 연습했는데 재빨리 적정 속도 65노트를 맞추기가 쉽지 않았다.  


엔진 고장 대응 매뉴얼     

A(Airspeed)

B(Best Field)

C(Checklist)     


기껏 서둘러 어렵사리 속도를 맞췄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착륙할 만한 곳이 보이지 않았다. 그때 툰지가 요크를 밀어 비행기 아래쪽에 있는 평지를 가리켰다.


"저게 왜 안 보여?"

"어디?"

"저기 있잖아!"


툰지가 손가락으로 특정 공간을 가리키는데 어디를 말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반복해서 원을 그리며 평지를 향해 하강하는데 순간 어지러움이 밀려왔다. 올라갔다 내려가기를 예닐곱 차례 반복했다.


"오늘 바람이 너무 강하네. 다음에 이어서 하자."


툰지는 바람 때문에 훈련이 내게 별로 도움이 안 될 거라 말했다. 공항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비행기가 끊임없이 출렁거렸다. 활주로에 가까워지자 이제 내리면 좀 좋겠다며 안심하는데 그때였다.


내가 재밌는 거 보여줄까?


툰지가 비행기의 기수를 45도 가량 꺾은 뒤 요크를 앞으로 쑥 밀었다. 비행기 동체가 평소보다 급경사를 이루며 빠른 속도로 활주로를 향해 내려갔다. 그대로 땅에 쳐 박힐 것만 같았다. 이른바 포워드 슬립이었다. 또다시 속이 울렁거렸다. 이착륙을 서너 번 반복 연습한 뒤에야 간신히 비행을 마쳤다. 나는 차를 몰고 곧장 집으로 와 세 시간 동안 낮잠을 잤다. 그러고 나서야 속이 진정되는 듯 했다. 산소 부족 때문인지 하품이 멈추질 않았다. 멀미에 대한 부담과 걱정이 또다시 밀려왔다. 조종사를 위한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나랑 비슷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의 사연이 많았다. 그들이 쓴 댓글에는 비행 전에 생강차를 마시거나 생강 뿌리에서 추출한 영양제를 먹으면 멀미가 사라질 거라고 했다. 속는 셈치고 월마트에 가서 영양제를 구입했다. 다음날 그것을 먹고 비행했는데 거짓말처럼 멀미를 하지 않았다. 생강의 효험에 놀랐다. 생강 뿌리는 소화촉진에 도움이 돼 한약 재료로도 자주 쓰인다고 한다. 그날 이후 비행이 있는 날엔 늘 집에서 생강차를 마시거나 생강 뿌리 영양제를 먹고 학교로 갔다. 이후 두 번 다시 멀미를 하지 않았다. 정말 신기했다. 어릴 때부터 차만 타면 멀미하고 어지러움을 호소했었다. 이리 좋은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컸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차나 약을 복용하지 않고 비행하는데 적응했다. 나중에는 급할 때 비행하면서 브리또 같은 끼니를 해결할 정도로 비위가 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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