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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영 Jul 17. 2020

솔로

"두려움 뒤에 숨은 즐거움"

첫 스테이지 평가를 통과한 학생 조종사는 바로 솔로 비행을 해야 한다. 교관 없이 칵핏에 앉아 비행기 운항에 관한 모든 것을 홀로 떠맡게 된다. 툰지는 비교적 바람이 잔잔한 날을 골라 내 솔로비행 스케줄을 정했다. 트래픽이 적은 아침 7시였다. 교관 인생 첫 학생의 솔로였기 때문에 비행 당일 그는 유독 긴장한 듯 보였다. 자칫 학생 실수로 사고라도 나면 모든 책임은 교관이 다 안고 교관 자격증까지 잃을 수 있다. 학생이 혼자 비행해도 된다고 판단하고 서류에 서명하는 것은 엄청난 책임을 요구한다. 교관 입장에선 신중할 수밖에 없다.  


"준, 어제 잠은 충분히 잤어?"

"응."

"아침은 먹고 왔어?"

"응."

"커피는 마셨어?"

"아니."

"왜?"

"나 원래 커피 잘 안 마셔."

"비행 나갈 준비됐어?"

"응."


한참 이런저런 질문을 주고받은 툰지와 나는 서류를 챙기고 비행기가 있는 행어로 나갔다. 툰지는 비행기 동체와 내부 계기를 평소보다 두 세배의 시간을 더 들여 꼼꼼히 점검했다.


"지금 기분 어때?"

"응. 좋아."

"그게 다야?"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어."


나는 옅은 미소를 보이며 칵핏에 올랐다. 엔진과 비행기 상태를 재점검하는 런업 구간에 그를 내려 준 뒤 나 혼자 택싱 해서 활주로로 향했다. 툰지는 활주로 옆 공터에 앉아서 날 지켜보겠다고 했다. 그가 내리기 전 관제사에게 내 비행이 첫 솔로임을 알려줬다. 특별히 신경 써서 관제 지시를 해달란 의미였다. 툰지가 내리고 나자 묘한 기분이 들었다. 늘 옆에서 내 실수를 그때그때 지적하고 고쳐주던 그가 곁에 없자 옆자리가 허전했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브리스토우 전경


"Riverside Tower, Cessna 4641P, number 1 at runway 1L for work in closed traffic."
-리버사이드 타워, 세스나 4641P, 활주로 1L에 1번으로 대기, 장주 계획.


"Cessna 4641P, fly runway heading, runway 1L clear for takeoff."

-세스나 4641P, 이륙한 뒤 활주로 방향으로 날 것, 이륙 허가한다.


"Runway 1L, clear for takeoff, Cessna 41P."

-활주로 1L로 이륙 허가, 세스나 4641P.


관제사의 이륙 허가를 받고 서서히 활주로 진입했다. 그날따라 유독 활주로는 넓고 크게 보였다. 갑자기 심장이 요동쳤다. 아침부터 솔로 비행에 대한 부담감이 컸는데 툰지를 안심시키려고 애써 태연한 척했다. 그가 떠나고 칵핏에 혼자 남은 상황에서 가면을 벗어던지고 떨리고 초조한 민낯의 나 자신과 마주했다. 심호흡을 크게 한번 한 뒤 스로틀을 서서히 밀면서 브레이크를 밟고 있던 발을 서서히 풀었다.


"T’s and P’s Green, RPM Green, Airspeed Alive."

계기를 하나씩 체크하고 속도가 50노트에 다다르는 것을 확인한 뒤 요크를 가슴 쪽으로 천천히 잡아당겼다.


"50 Knots. Rotate."


비행기는 지면에서 떠서 하늘로 향했다.


"떴다. 떴다."


나도 모르게 혼잣말을 내뱉었다. 이륙 후 애프터 테이크 오프 체크와 클라임 체크를 연이어 수행한 뒤 업 윈드 구간에서 크로스 윈드 구간으로 기수 방향을 왼쪽으로 전환했다. 패턴 비행고도 1700피트를 유지하며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 활주로를 시야에서 놓치지 않기 위해  집중했다. 툰지가 알려준 대로 프리 랜딩 체크를 다운 윈드 구간에 들어서자마자 시작했다.


Brake pressure check, Mixture rich, Fuel on, instrument check,
T’s and P’s check, Carb heat operate, Hatches & Harness secure, Landing light on.



솔로 크로스컨트리 Cessna 152 


스로틀을 살짝 잡아당겨 파워를 줄이고 플랩을 하나 내렸다. 수평 비행하던 비행기는 서서히 속도가 줄면서 하강하기 시작했다. 어느새 내 비행기가 활주로 끝단에서 대각선 위치에 놓인 것을 확인하고 베이스 구간으로 기수를 틀었다. 속도가 70노트임을 확인한 뒤 플랩을 하나 더 내렸다.


"이제 다 왔다."


마지막 파이널 구간으로 들어서면서 플랩을 끝까지 내렸다. 착륙 전까지 긴장을 놓을 수가 없었다. 비행기는 더 낮게 하강했다. 맞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러더를 더 밟아 기수를 활주로 중앙선에 맞췄다. 점점 고도가 내려가던 비행기는 활주로 지면에 더 가까워졌다. 활주로 끝단 아래 적힌 숫자 1L를 지나친 뒤 요크를 잡아당겨 레벨 오프를 했다. 요크를 천천히 잡아당기기를 서너 차례 반복해 플레어를 했다. ‘앵’하며 스톨 워닝 소리가 나던 비행기는 부드럽게 지면에 안착했다.   


"됐다. 됐어."


툰지가 촬영한 첫 솔로 랜딩 Cessna 152


큰소리로 환호했다. 활주로를 빠져나와 택싱 하며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짧은 여유를 갖고 나서야 이마와 손이 땀으로 흠뻑 젖어있음을 알았다. 저 멀리 툰지가 내 비행기를 향해 오른팔을 흔들었다. 그리고 엄지를 치켜세워 보였다. 나는 웃었다. 툰지의 빈자리로 인해 넓어진 칵핏 공간이 여유 있어서 좋았다. 두 시간 동안 열 바퀴를 더 돈 다음 툰지를 태워 학교로 데려왔다.


4641P, congratulations on your first solo today.
-4641P, 첫번째 솔로 비행 축하해.


관제사는 나의 솔로 비행을 축하해줬다. 2018년 6월 9일 첫 비행을 시작하고 한 달 만인 7월 9일 솔로 비행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툰지는 하얀색 치아를 드러내며 자기 일처럼 진심으로 기뻐했다. 내가 탄 4641P 앞에서 악수하며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다음날 1시간 남짓한 비행을 더하면서 솔로 비행시간을 모두 채웠다. 흔히 솔로 비행을 마치면 학생에게 물을 끼얹는 의식을 치르기도 하는데 리버사이드 플라이트 센터에선 없었다. 대신 유니폼이 그려진 질 낮은 원단의 흰색 티셔츠 한 장을 줬다. 재질이 매끄럽지 않아 잘 입지 않았지만 그 티셔츠를 볼 때마다 왠지 모를 자신감과 자부심이 솟아났다.


처음엔 두렵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낯선 것에 대한 무지함과 결과가 좋지 않을 수 있다는 부정적인 생각, 걱정이 날 두렵게 만든다. 하지만 첫발을 내딛고 몸으로 직접 내던지는 순간 새로운 체험과 그 안에서 느끼는 재미, 마음껏 즐기는 자신을 발견하면서 두려움은 점차 사라진다. 두려움을 극복하면 그 뒤에 숨어있던 즐거움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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