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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영 Jul 14. 2020

숏 필드 테이크 오프

"삶과 죽음은 한순간"


숏 필드 테이크 오프(short-field takeoff)
: 길이가 짧은 공항 활주로에서 공간을 최대한 활용해 높은 상승 곡선을 그리며 이륙하는 것


숏 필드 테이크 오프를 연습하기 위해 브리스토우 공항으로 갔다. 활주로가 짧은 데다 관제탑이 없는 논 타워 공항이라 세스나를 탄 학생 조종사들이 자주 드나드는 곳이었다.

 

논 타워 공항(Non-tower airport)
: 관제사가 상주하지 않아 조종사들이 스스로 라디오 콜을 통해 자신의 위치와 의도를 보고하는 공항


교관 툰지의 지도에 따라 활주로와 잔디 경계선을 따라 최대한 크게 방향을 돌았다. 플랩을 10도에 맞춘 뒤 브레이크를 밟은 상태에서 스로틀을 최대한 안으로 밀어 넣었다. 엔진 계기를 확인하고 브레이크에서 천천히 발을 떼었다.


"T’s and P’s green, RPM green, Airspeed alive."


에어 스피드가 50노트를 넘자 천천히 요크를 잡아당겼다. 장애물이 있다고 가정하고 짧은 시간 안에 최대 높이의 상승 각도로 이륙했다. 약속대로라면 가상의 장애물 고도 50피트를 넘으면 천천히 당겼던 요크를 서서히 풀어주면서 스피드를 67노트에 맞추면 됐다. 나는 당연히 교관이 이쯤에서 됐다고 얘기를 해줄 거라 생각하고 상승 상태를 그대로 유지했다. 몇 초의 시간이 흐른 뒤 옆에 있던 툰지가 고함을 질렀다.


안 돼. 안 돼. 안 돼! 너 지금 제정신이야? 도대체 뭐 하는 거야?
너 죽고 싶어? 당장 요크에서 손 떼!


나는 그대로 몸이 얼어붙은 채 요크를 툰지에게 넘겼다. 헤드셋을 끼고 있어 작게 얘기해도 충분히 들릴 것을 고함치는 바람에 귀가 먹먹했다. 내가 계속해서 Vx로 상승하면서 비행기의 에어 스피드가 급격히 떨어지고 있던걸 확인하고 그가 소리 지른 것이었다. 하마터면 실속 속도에 빠져 비행기가 스톨에 놓일 수 있는 아찔한 상황이었다. 툰지는 화가 제대로 나있었다.


스톨(Stall)
: 양력을 잃고 비행기가 낙하하는 긴급 상황


"미안. 난 네가 가상 장애물을 통과하면 이제 됐다고 옆에서 얘기해 줄 거라 생각하고 기다렸어."


늘 웃는 얼굴로 사람들을 대했던 그도 비행기 안에선 조금의 실수를 용납하지 않았다. 조종사는 자신은 물론 많게는 승객 수백 명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한다. 이 때문에 학생 조종사들은 엄격한 훈련을 받는다. 싸늘한 칵핏 분위기 속에 툰지와 나는 서너 번의 숏 필드 테이크 오프 연습을 더하고 공항으로 복귀했다. 브리핑룸 안에서 툰지는 조용히 내게 물었다.


"오늘 비행 어땠어?"

"내가 오늘 말도 안 되는 실수 저지른 것 인정해. 다신 이런 일 없을 거야. 약속할게."

"PIC는 너야. 네가 비록 학생 조종사 신분이긴 해도 운항을 최종 결정하는 건 너라고. 만약에 내가 신호 줄 거라고 생각했으면 미리 얘기를 했어야지. 안 그래?"

"응. 맞아."


PIC(Pilot in Command)
: 항공기 운항을 결정하고 책임지는 조종사


툰지는 언제든지 본인에게 하고 싶은 말은 주저하지 말고 바로 할 것을 주문했다. 본인이 비행기 안에서 이성을 잠시 잃었다며 고함친 것에 대해 사과했다. 다시 한번 칵핏 안에서의 커뮤니케이션 중요성에 대해 배운 하루였다.


실제로 항공기 사고가 발생한 원인을 분석해 보면 칵핏 커뮤니케이션 문제가 발단이 된 경우가 종종 있다. 기장과 부기장, 조종사와 관제사 사이의 커뮤니케이션 잘못으로 대형 인명피해가 발생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테네리페 공항 참사다. 미국의 팬암과 네덜란드의 KLM 여객기 두 대가 테네리페 공항에서 정면충돌한 사고로 583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만약 KLM 조종사와 관제사 사이의 커뮤니케이션만 좀 더 정확했어도 수많은 승객들이 목숨을 잃는 사고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잊지 말자. 삶과 죽음은 한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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