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숙집 이모 Mar 21. 2022

조강지처 화초와 애첩 화초

화초도 사람의 눈치를 본다

10년 넘게 키운 염자(다육이 과로 염좌라고도 부른다)가 있다. 통통한 녹색의 잎이 사시사철 싱그러웠다. 해가 갈수록 키가 크고 잎은 더욱 많아졌다. 화초 키우기가 취미인 남편은 보기에 좋다며 그 아이를 예뻐했다.


어느 날 작은댁에 갔다가 우리 집 그것과 똑같은 모양인데 함박눈이 쌓인 것처럼 하얀 꽃이  활짝 핀 염자를 발견했다. 그날 이후 우리 집에서 10년을 키웠던 염자의 처지가 이상하게 되었다. 거실에서 화초 중 가장 으뜸의 자리를 차지했던 그것은 베란다로 옮겨졌고 며칠 뒤 작은댁에서 꽃피는 염자를 분양받아 온 후로는, 

"키만 크고 꽃도 못 피는 저 화분을 내다 버릴까?"라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세상에나, 애 못 낳는 조강지처 버리겠다는 소리랑 똑같아요. 지금껏 이쁘다고 키웠으면서 이쁜 첩 데려왔다고 나가라고 말하는 소리랑 일반이야, 못됐네, 못됐어"

"시간이 지나면 꽃을 피울 줄 알았지, 화분도 너무 무겁고 좀 그렇잖아."

"그만 말해요, 듣는 염자 기분 나쁘겠어요."


'야, 보란 듯이 예쁜 꽃을 피워봐라, 너네 아저씨 코가 납작해지도록 예쁜 꽃을 보여줘라.'

남편은 그 뒤로도 여러 번 '저것은 왜 꽃이 안 필까? 원래 꽃이 안 피는 종류인가 봐.'등의 말로 우리 염자를 구박했고 나는 내가 애 못 낳는 조강지처 인척 괜한 화를 내며 염자 편을 들었다. 

그해 겨울 화초를 살피던 남편이 웃는다. 

"이것 봐, 겨우 꽃이 폈어."

다가가서 살펴보니 정말 겨우 꽃이 피어 있었다. 쫓겨나지 않을 만큼, 그 큰 키에 어울리지 않게, 중간중간 몇 송이 꽃이 피어있는데 겨울이 시작될 때 기다리던 첫눈이 온 건지 만 건지, 첫눈이라 말하기엔 너무 표가 안 나고 아니라고 하기엔 첫눈이라 너무 귀한, 딱 그만큼의 꽃이 피어 있었다. 

"세상에, 고생했다, 소박맞을까 봐 애썼구나, 화초도 주인의 소리를 듣는다니까, 이제 버린다는 그런 말 하지 말아요."

염자에게 기특하다고 말하고 남편에게도 구박하지 말라고 말하며 다음 해엔 정말 예쁜 꽃을 보여줄 것을 기대했었다. 



염자는 가을에 꽃대가 올라오기 시작해서 겨울이 시작될 무렵 꽃이 피는데 한 계절 내내 피어 있다. 추위에도 강해 영하의 기온만 아니면 잘 지내는 것 같다.  아파트에서 원룸으로 거처를 옮길 때 많은 화분을 다 데려 올 수 없어서 제법 정리를 했다. 옥상에서 사시사철 키울 수 있는 영산홍이나 소나무들은 모두 데려왔고 선인장류는 여기저기 분양을 보냈다. 그리고 우리 조강지처 염자는 그 이후 더 이상 꽃을 피우지 못했으나 내가 고집해 데리고 왔고 작은댁에서 데려온 염자는 해마다 화사한 꽃을 만개하고 있어 귀하게 다루며 데려왔고 가지를 잘라 삼목 해 여러 개의 화분을 만들어 지인들에게 분양도 해주었다. 


오랜만에 옥상에 올라가는데 여전히 화사한 염자 꽃이 눈웃음을 치며 나를 부르며 말을 거는 것 같다. 자신이 예쁜 것과 옆의 염자가 꽃을 피우지 않는 것은 자기 잘못이 아니란다. 나의 괜한 편애가 섭섭하다고 말이다.

사실 꽃이 화사한 애첩 같은 염자가 이쁘기는 하다. 꽃이 화려하고 개화기간이 길어 꽃이 아쉬운 겨울에 눈이 호강한다. 그런데 키 큰 염자가 옆에서 듣고 있는 것 같아 꽃 미모를 칭찬하지 않았다. 이쁘다는 말은 삼목한 작은 화분을 지인께 드릴 때 뿐이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꽃잎이 시들기 시작했다. 겨울 동안 제 할 일을 다하고 주름이 생긴듯하다. 


부부가 각각 애정이 달라 화초들이 집사들 눈치 보느라 고생을 한다. 그 와중에 제 할 일을 하느라 꽃을 피운 염자의 말소리에 나도 응답을 했다. 

"그래, 너도 우리 집에 온 지 벌써 5년이 넘었구나, 이제 너 예쁜 것 인정할게, 겨울 내내 정말 예뻤단다."

꽃이 화사한 염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