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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도봉봉 Oct 08. 2024

<흑백요리사>가 곁들여진. 세 가지 삶의 태도

눈치, 품격, 간지



 요즘 제일 재미있는 프로를 꼽자면, 단연 넷플릭스의 흑백요리사이다.

 여러 기사에서도 언급하듯이, 흑백요리사를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유는 요리나 셰프들의 스토리나 재미도 있지만, 악마의 편집도 없고 참가자나 심사위원 누구도 빌런을 만들지 않는 프로그램의 방향성도 한몫을 하는 같다. 80명에서 20명을 골라낼 때도 질질 끌지 않고 단박에 속도감 있게 몰아붙이는 구성이 현대적이다. 슈퍼스타K 시절이었으면 80명 예선장에 끌려올 때부터 20명 골라낼 때까지 최소 5편은 뽑아내고도 남았을 것이다. 백수저 20명 공개하는 3편 정도 뽑았을지도. ㅋㅋ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해 경쟁하며, 합격과 탈락을 반복하고, 결과물을 타인이 평가하는 과정은 자연스럽게 교훈을 준다. 또, 흑백요리사야? 할 수도 있지만, 나중에 쓰면 뒷북치는 글이기 때문에 지금 시류에 바로 올라타보기로 했다. (히히)

 


 흑백요리사에서 배운 세 가지 삶의 태도에 대해 씨부려보겠다.



1. 눈치

 첫 번째 배워야 할 삶의 태도는 「눈치」이다. 사회생활에서 지식이나 학벌보다 더 중요한 것은 '눈치'라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제 아무리 서울대, 하버드를 나왔다 한들, 사회에서 눈치 없는 사람은 찐따 취급받는다. 잔인하지만. 


 흑백요리사가 탄생시킨 최고의 밈은 에드워드 리의 "물.. 물코기.."이다. 에드워드 리는 미국에서 스테이크 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다. 누가 봐도 해산물보다는 육류에 그의 커리어가 더 적합하다. 처음에 팀을 정할 때, 고기 편에 있다가 멤버구성을 보고 슬금슬금 시푸드 쪽으로 옮겨간다. "고기를 좀. 잘 저거 아니세요?"라는 장호준의 말(님은 고기 전문 아니시냐는 뜻 아닐까)에 어깨를 으쓱하며 애써 모른 척하더니, "You want 'seafood' or 'meet'?"이라는 선경 롱게스트의 질문에 "물.. 물코기.."라는 태극권으로 응수한다. 그 후, 먼저 펼쳐진 고기팀 팀전에서 손발이 하나도 안 맞는 고기 백수저팀을 보며 "벌써 싸워?" 하는 2차 명언을 남긴다. 보통 "왜 싸워?" 라거나 "무슨 일이야?" 할 텐데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벌써 싸워?"라니 정말 대단한 견문색이다. 대부분의 네티즌들이 분석한 이유가 맞는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맞든 아니든 대단하다. 그리고 그의 선택은 결과적으로 옳았고, 살아남았다.


 이것이 눈치다.

 눈치는 생활력이다.

 눈치는 상황판단력이다.

 빠르고 정확한 판단과 아니다 싶으면 바로 노선을 변경할 용기를 갖추려면 먼저 눈치가 있어야 한다.

 살아남으려면, 눈치를 갖추자!!



2. 품격  

 사람들이 이 프로에서 가장 많이 이야기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품격'이다. 나도 여러 번, 여러 사람들의 품격을 느끼는 순간들이 있었다. 흑수저와의 대결에서 졌을 때, 깔끔하게 패배를 인정하고 퇴장하는 백수저의 뒷모습에서 품격을 느꼈다. 거기 나가면 잃을 것 밖에 없는데, 왜 나가냐고 말리는 주위 사람들만 있었다는데, 도전하고 싶어서 혹은 재미있을 것 같아 출연을 결심한 탑티어 백수저들의 용기에서도 품격이 느껴진다.


 옛날 슈스케나 쇼미더머니 같은 프로를 보면 탈락 후에 "니가 뭔데", "기분 나빴어요." 하며 심사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푸념하며 썩은 표정으로 나가는 탈락자들이 종종 나왔었다. 어떤 순간은 너무 심한 심사평에 참가자에게 동조될 때도 있고, 어떤 순간은 참가자의 싸가지 없음에 화가 날 때도 있었다. 그런데 이 프로는 그런 것이 없다. 반찬으로 먹는 건데 밥이 없다며 탈락, 쓸데없는 꽃을 올렸다며 보류하는 안성재 심사위원의 평가에 조금의 불만이 있긴 하지만, '그 만의 기준이 있겠지'하는 마음에 수긍하게 된다. 탈락평도 젠틀하다. 자존심을 깎거나 노력을 폄하하지 않아서 좋다. 그것도 심사하는 자의 품격이다. 참가자들도 탈락하는 순간에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행복했다", "다시 제 자리로 가면 되죠" 하며 겸손하게 사라진다. 백수저들도 마찬가지다. 실수를 인정하고, 실력차이를 받아들이는 태도에서 삶의 품격이 느껴진다.


 우리도 누군가를 평가할 때가 있고, 평가를 당할 때도 있다. 그 어떤 입장에서든 품격 있게 했으면 좋겠다. 듣기 싫은 소리지만 바른말인 말도, 듣는 사람이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약이 된다. "니가 뭔데"라는 반발을 일으킬 거면 안 하는 게 낫다. 저런 소리를 안 들으려면 말하는 사람이 권위가 있어야 하는데, 권위는 실력에서 나온다. 먼저 남에게 맞는 말을 하고 싶으면, 미슐랭 3 스타 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인정받는 실력자가 되어야 "지가 뭔데"라는 말을 안 들을 수 있다.

일단, '뭐'가 되고 보자. 품격을 갖춰보자.



3. 간지 

 잘 구운 고기하나로 승부 볼 거라는 참가자에게 "간지는 간지다"하는 안성재 심사위원의 말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 셰프들의 태도가 간지가 난다.


 어떻게 저 자리까지 갈 수 있었는지 납득하게 하는 최현석의 리더십도, 어리지만 차분하고 실력까지 갖춘 트리플스타의 조용한 리더십도, 간지 다. 나와 의견이 맞지 않지만 리더라면 따라야 한다는 에드워드 리의 팔로워십도, 나까지 말하면 싸움 날까 봐 다물었다는, 그리고 시킨 대로 석탄을 대령하는 황진선의 자발적 묵언수행과 배포간지였다. 다들 자기만의 방법으로 인생을 살아오고, 누가 뭐래든 자신감 있는 요리를 척척 해내는 그 모두가 멋있고, 간지 났다. 흑수저 80명이 흑수저라고 하지만, 전국에서 뽑은 80명 안에 들어간 것 자체가 이미 성공한 인생이며 인정받은 것 아닌가? 우리는 우리가 하는 일의 영역에서, 전국에서 80명 뽑는다고 하면 그 안에 들어갈 자신이 있는가? 섭외가 들어온다 한들, 넷플릭스로 전 세계에 송출될 서바이벌 프로에 나가서 내 이름 걸고 실력으로 한 칼 붙을 자신이 있는가? 흑이든 백이든 저 자리에 서 있는 것 자체로 간지다. 멋있다.


 결국 이것도 실력에서 나온다.

 아, 한 가지 더. 존중.

 남에 대한 존중도 있어야, 간지가 더 살더라.

 실력을 갖추고. 남을 존중하고, 간지를 얻어보자.





나는 이런 요리 예능 하나를 보고 이렇게 심오한 삶의 이치를 깨달았는데, 밥 해대는 스뎅수저 엄마 요리사로서는 이 프로의 흥행이 달갑지 않다. 이 프로를 보고 난 후, 애써 만든 밥상 앞에서 자식 놈들이 하는 태도가 아주 짜증 나기 때문이다. 밥상머리에서 접시채 냄새도 킁킁 맡고, 자세히 살펴본다. (벌써 재수 없다.ㅋ) 아들과 딸이 번갈아 가면서, 두 손을 모으고 제법 깐깐한 말투로 말한다.


"이 요리의 의도, 의도가 뭔가요?"

"이 고기는 이븐(even)하게 익지 않았어요."

"완벽한 소세지란 어떤 소세지를 뜻 하나요?"

"저는 계란말이의 '익힘', 익힘 정도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지금 이 단맛, 이 단맛이 저한테 킥 이거덩여."


컵라면 하나를 먹으면서도, 이븐(even)하게 익었니 어쩌니 하며 익힘 정도를 따지는데.

와. 진짜. 킹 받는다. 개킹 받는다.


니들 학원 숙제나 좀 이븐(even)하게 해 보지 않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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