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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도봉봉 Nov 19. 2024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

그러니까 선배님들, 멋있게 살아주세요


수영장에는 활기찬 사람들이 많다.

걱정 있고 우울한 와중에도

수영할 때는 안 그런 척하는 건지

수영을 하다 보면 안 좋은 일 따위는

자동으로 잊게 되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다들 탈의실 들어오는 순간부터 텐션 만땅이다.


내가 다니는 평일 오전반은 여성전용타임이다 보니

내 나이인 40대 초반 정도면 가장 어린 축에 속하고

대부분 50, 60, 70대 중장년층 여성들이다.

다들 젊고 건강한 감성이라 할머니라고 부르기에도 조심스럽다.

어떤 분은 접영도 고수처럼 잘하시고.


아쿠아로빅을 끝낸 할머니들이

샤워장으로 들어올 때는

흥군단이 떼로 몰려오는 것 같다.

지난주에는 로제의 아파트에 맞춰서 춤을 추셨는지

할머니들이 단체로 계단을 올라오며

"아!파트! 아!파트! 아파트! 아파트! 아파트, 아파트! 어! 어허어허!"

단체로 아파트를 외치면서

손을 막 왔다 갔다 하며

샤워장으로 들어와서

수영복을 훌러덩훌러덩 벗으며 진격하셨다.

그로테스크한 기에 떠밀

나도 모르게 흠칫 뒷걸음질을 쳤다.


그만큼 수영장에 다니는 어르신들은 활기차고 건강하다. 대부분 수다스럽고 인상도 좋다.

보통은 십수 년의 수영경력을 갖고 있으며

상급반에서 여유로운 수영 생활을 즐기신다.


그분들을 보면

나도 다치지 않고 열심히 배워서 저분들처럼 저 나이에도 멋있 영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수영 끝나고 스타벅스에서 베이글이랑 커피도 즐기고, 수영장에서 참기름도 나눠주고, 싸가지 없는 자식 놈들 흉도 좀 보고, 수제비도 먹으러 가면서 나이 들어도 재미있게 살고 싶다.




'내 꿈은 귀여운 할머니가 되는 거야'라고 하는 사람들을 가끔 본다.

'할머니'는 자동으로 되는 건데,

어떻게 하면 '귀여운' 할머니가 될 수 있는 걸까?

나는 평생 '귀여'웠던 적이 없는데 늙어서는 귀여움이라는 것을 장착할 수 있을까? ㅋㅋ

나에게는 해당 없는 소리이다.

귀엽기는커녕 어디 가서 고집불통이라고 욕이라도 안 먹으면 다행이다.


최화정이 왜 인기 있나?

밀라논나를 왜 좋아할까?

윤여정을 왜 멋있다고 하는가?


우리는 아무리 노력해도 절대로 그렇게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최화정처럼 잘 꾸며진 넓고 좋고 비싼 집도 없고, 연예인도 아니라 돈도 그만큼 없고, 그런 예쁘고 맛있는 요리를 할 시간도, 여유도 없다.

밀라논나처럼 우아한 말투도 갖고 있지 않고, 나이 들어도 멋있게 옷 입는 센스도, 명품을 잘 골라서 오래도록 입는 방법도 모른다.

윤여정처럼 꼿꼿하게 할 말 다하면서 살려면, 그 나이가 되어도 내 할 일은 칼 같이 해내는 실력이 밑바탕에 깔려 있어야 하는데, 매일 출근도 겨우 하는 우리들이 갑자기 1만 시간의 법칙!!!!! 을 외치며 '내 분야의 최고 전문가가 될 거야!' 하는 갓생인간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사람들이 무식해서 모르는 것이 아니다.

나이는 의외로 그냥 먹는 것이 아니라서,

신통하게도 다들 알고는 있다. 각자의 그릇을.

그들을 롤모델로 삼아봤자 '롤'도 '모델'도 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그들에게 열광하는 이유는 나이 들어도 저렇게 살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지 않을까,

나이 들어도 재미있게 살 수 있고 즐길 수 있구나 하는 희망, 또는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는 소망.



사람들은 지나온 흔적보다 내딛는 걸음에 더 관심이 많다.

눈보라 휘몰아치는 산길에서, 한 치 앞이 안 보이더라도 앞을 보고 걷지, 지나온 내 발자국 구경하며 뒤로 걸어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서 나이도 길이라 생각하면 인생도 비슷하다. 나보다 어린 사람보다 나이가 더 많은 사람들을 자세히 관찰하게 된다. 나도 저렇게 살아야겠다 혹은 저렇게는 늙으면 안 되겠다 하면서.

젊고 어린 사람들을 보면 가끔 부럽기도 하다. 그러나 과거는 바꿀 수 없고, 돌아갈 수도 없다. 얼굴과 몸이 늙어가는 것은 싫지만 시간은 앞으로 가기만 할 뿐이라는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




그 어떤 '주니어'라도 누군가에게는 '시니어'가 된다. 

남을 의식해서 살 필요는 없지만, 남들이 나를 보고 있다는 사실은 의식할 필요가 있다.

누군가 나를 항상 지켜보고 있다.

심지어 나의 현재에 자신의 미래를 대입해 보면서.


그래서 주니어든 시니어든 '잘' 살아야 된다.

어디서든 인생 후배들이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면서 즐겁게, 열심히, 잘 살아야 한다.

이때까지 살아온 짬바가 있는,

내 인생이 어디 가서 롤모델은 못 되더라도 반면교사가 되어서는  되니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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