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당수의 고등학교는 모의고사 다음날인 16일이나 17일부터 1차 지필고사가 예정되어 있었다.
바로 다음날이 내신 시험인데, 시험 전날 그 소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성적에도 안 들어가는 모의고사에 홀라당 바치고 싶은 학생들은 없을 것이다.
이럴 때 교사들은 동물적인 감각으로 그날 교실에서 펼쳐질 대환장 결석 파티를 예상한다.
"내일 다 아프다고 난리겠구먼"
"내일 몇 명이 생리결석으로 빠질까"
결전의 그날, 새벽부터 시작되는 결석 문자 퍼레이드는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는 것을 깨우쳐준다. 그리고 출결로 고달픈 하루가 시작될 것임을 알린다.
나는 지금은 휴직상태지만,
그런 날의 교무실의 분위기는 집에 가만히 앉아서도 대충 가늠할 수 있다.
대화도 예측가능하다.
"샘, 샘 반에는 오늘 생리결석 몇 명이예요?"
"오늘 몇 명 안 와요?"
"그 반은 오늘 몇 명 결석이에요?"
그날, 내가 알고 있는 고등학교의 담임 선생님들은 학년에 관계없이 모두가 빡쳤다.
반에 평균 8명에서 10명 정도가 생리결석을 썼다고 하고, 나머지 중 대다수는 병결이나 병조퇴로 학교를 빠져나갔다 한다. 눈치게임에 실패한 어떤 한 학생은 조퇴할 타이밍을 놓치고, 학급에서 홀로 외로이 남아 모의고사를 치렀다는 슬픈이야기도 있었다.
모의고사 날짜를 개떡같이 잡은 시험주관청에 1차 잘못이 있다고 다들 생각했다. 어떤 선생님은 본인의 자녀도 결석은 안 된다며 윽박질러 학교를 보내놨더니, '나만 학교왔다, 괜히 왔다'는 볼멘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그러나 밀려오는 결석문자와 교무실에 허준이라도 있는 듯 아픈(것을 주장하는) 환자들이 장사진을 이루는 모습에 선생님들은 허탈감이 밀려왔다고 한다.
그날 하루 한 반에 10명가량 생리결석으로 결석했다고 한다. 한 학년에 10 학급이라고 치면 한 학년에 100명, 세 학년이라고 하면 한 학교에 300명이 생리결석으로 결석한 것이다. (아마도 실제는 이것보다 더 많을 것이다.)
이 정도면 생리통이 괴질 전염병 수준 아닌가?
생리결석은 인정결석으로 처리된다.
한 달에 한 번 생리결석으로 결석할 수 있으며, 진료확인서를 제출해야 하는 일반 질병결석과 다르게, 학부모 확인서나 담임 확인서로 생리 결석을 증빙한다.
지각이나 결과, 조퇴는 몇 회를 생리결석 1회로 처리할 것인지는 학교장이 정하게 되어있다.
학교마다 다르지만 보통은 지각, 결과, 조퇴 3회를 결석 1회로 처리한다.
이 규정을 알고 악용하는 학생들도 있다.
아침 조회만 하고 가도 '조퇴'로 처리되기 때문에 학교에 와서 도장만 찍고 가는, 거의 결석과 다름없는 조퇴를 3일씩 연달아하는 경우도 있다. 얄밉지만 "안 되는 건 아니잖아요?"하는 질문에는 반박할 말이 없으므로 그냥 부모님 확인이 되면 보낸다. 보내는 수 밖에 없다.
"너 진짜 생리하는 거 맞아?"
라는 질문은 할 수 없다.
요즘 시대에 누가 이런 겁대가리 없는 질문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냥 그렇다면 그런 거고, 아프다면 아픈 거고, 부모님이 보내달라면 보내주는 것이다.
남자선생님들은 의문을 갖지도, 질문을 하지도 않는다.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예상치 못한 성(性) 이슈에 휘말릴 수 있기 때문에, 그냥 이 상황 자체에 의문도, 분노도 품지 않는 편이 마음도 편하고, 내 몸도 지키는 것이다.
아는 선생님의 딸이 올해 중학교를 졸업하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엄마, 나는 엄마가 쓰지 말래서 안 썼는데, 다른 애들은 1달에 1번씩 꼬박꼬박 쓴 애들도 있거든. 나는 그 애들에 비하면 30일이나 학교 더 간 셈이니까, 나는 엄청 손해 본 거야."
몇 년 전 고3 담임을 할 때의 일이다.
수능이 끝나고 다들 반(半) 어른인 상태로 정신없이 놀고 있을 때, 어떤 학생의 어머니가 아침 출근시간에 전화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선생님~ 저희 OO이가 어제 술을 마시고 엄청 늦게 와서요. 지금 토하고 못 일어나거든요. 오늘은 생리결석 처리 부탁드려요."
또 다른 해에는 이런 말도 들었다.
"선생님, 저 다음 주 금요일에 생리결석 쓸게요."
일주일도 넘게 남았는데 생리결석을 예약했다.
아이들을 통해서는 이런 말도 듣는다.
"선생님, 걔네 오늘 다 생결쓰고 에버랜드 갔어요. 지금 인스타에 사진 올라와요."
물론, 다들 이런 인간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생리결석이 꼭 필요한 학생들이 당연히 있다.
같은 여자로서 생리통의 고통을 모른다 할 수 없기에 진짜 생리통으로 아픈 학생들은 안쓰럽고, 안타깝다. 이런 학생들은 병원도 다니고, 한의원도 다니고 하지만 산부인과 진료도 만만치 않거니와, 뚜렷한 원인도 찾기 힘들다. 약이나 시술의 효과가 명확하지도 않아서 생리통이 심한 학생들은 별 차도 없이 매달 끙끙댄다.
이런 학생들을 생각하면 있어야 하는 제도이긴 한데-
모두가 오기 싫은 날, 수행평가가 많은 날, 유독 참여하기 싫은 학교 행사가 있는 날.
그런 날만 골라서, 학교 안 오는 쿠폰처럼 생리결석을 '유용하게' 이용하는 학생들을 보면 열받는 건 사실이다.
모두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
생리통 때문이 아닌데,
다른 애들도 생리결석 다 쓴다는 성화에 못 이겨
"선생님. 오늘 OO이가 생리통이 심해서 생리결석으로 결석하겠습니다."
라는 문자를 보내는 학부모님들도,
"네. 어머니. OO이 생리결석 처리하겠습니다. 푹 쉬고 내일은 정상등교 시켜주세요."
대답하는 교사도,
다음날 수줍게 결석서류를 들이미는 학생도.
모두가 거짓말을 하고, 속아주고, 모르는 척한다.
이것이 교육적으로 옳은 일인지.
학교에서 못 본 눈으로 모르는 척 서류만 갖고 오면 지나가야 하는 일인지.
너의 권리니 마음껏 눈치 보지 말고 써라고 가르쳐야 하는 것인지.
생리결석 쓰고 스카에서 편하게 공부하는 것을 이해해 주어야 할 일인지, 모른척 해야 하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죽어도 학교에서 죽어라', '아파도 학교는 가는 곳이다'의시대에서 나는 자랐다.
아파도 친구들과 싸워도 학교는 가야만 했다.
결석도 지각도 조퇴도 조심스럽던 시절이었다.
코로나를 지나오며 '조금이라도 아프면 학교에 가지 않는다'의시대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진짜 '조금'이라도 아프면 학교에 오지 않는다.
1년에 190일가량 등교하는 학교에 지각, 결석, 조퇴, 결과 없이 꼬박꼬박 등교한 학생들은 진짜 대단한 학생들이다. 칭찬하고 상을 줘도 마땅치 않을 판에 요즘 시대의 개근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내가 봤을 때는 학업우수상만큼 큰 표창을 줘야 될 형편인데, 1년 개근은 생기부에 기록만 할 뿐, 종이 상장도 없다.
'개근'이라는 단어는 '성실'이라는 단어와 함께 쓰여야 한다.
'개근 거지'라는 질 떨어지는 조롱 섞인 합성어에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
작년 담임으로 근무할 때, 그날도 한 학급에 10명씩 생리결석으로 학교가 텅텅 빈 날이었다.
내가 맡은 수업은 선택과목으로 여러반 학생들이 한 교실에 모여서 수업하는 날이었는데, 유난히 여학생이 많던 그 클래스는 남학생들 7명 정도만 출석하여 앉아있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마라탕 먹고 있어요', '코노 갔어요'하며 듣고 싶지 않은 생리결석자들의 동태가 인스타를 통해 퍼지고, 그것이 또 나의 귀로 흘러들어오고 있었다. 수많은 생리결석자들에 대한 울분이 죄 없는 이 생리도 안 하는 남학생들에게 터졌다. 수업시간 내 농담을 가장 잘 받아주던 센스쟁이 남학생과 몇 마디 토론을 나눴다.
"야. 너네는 좀 억울하겠다. 이 인간들 중에 생리통 때문에 아파죽겠는 인간들 몇 명이나 될까? 생리결석 말고 남학생들도 뭐 만들어 달라고 교육부에 건의 좀 해. ㅋㅋ"
"그니까요. 그냥 다 공평하게 1달에 1번 학교 빼줬으면 좋겠어요. 우리도 학교 나오기 싫은 날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