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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도봉봉 Nov 05. 2024

이유를 알 수 없는 베스트셀러

깨달음을 얻었으니 좋은 책이긴 한 건가

나는 베스트셀러는 안 봐.

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절대 안 봐' 주의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꼭 챙겨보지도 않는다.


그런데 글을 쓰고 난 뒤로는 억지로라도 챙겨보려고 한다. 글을 쓰거나 책을 내려는 사람이면 '나는 베스트셀러는 안 봐.', '나는 자기 계발서는 안 봐.' 하는 것도 아집이며 쓸데없는 자존심이라며, 사람들이 어떤 책을 좋아하는지, 요즘에는 어떤 책이 팔리는지, 팔리는 책들의 주제가 무엇인지 체크하기 위해서라도 베스트셀러는 꼭 챙겨보라는 말을 들은 후로는 베스트셀러를 꼭 살펴본다.


오냐. 그럼 봐주지.

점에 가서 베스트셀러 중 하나를 집어 들었다. 고전을 통해서 삶의 자세를 배운다는 책이었다. 삶의 자세는 배울 수 없었고, 솔직히 좀 실망했다. 아무리 고전에서 배우는 책이라고 해도 인용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어떤 부분은 한 페이지가 모두 인용이었다. 저자는 어떤 한 권의 책 전체에서 가슴을 울리는 한 문장(이 아니라 한쪽..)을 옮겼을지 모르나, 앞뒤 연결이 잘 되어있지 않아 (설명이 있긴 했지만) 그 감동이 나에게는 전달되지 않았다. 심지어 앞에 나왔던 책이 뒤의 다른 챕터에 또 나오기도 했다. 저자의 생각은 눈곱만큼 있었다.


이렇게 책 쓰면 나도 열 권은 내겠다? 스멀스멀 꼬인 마음이 올라왔다. 하지만 포기하기 싫어 인내심을 갖고 끝까지 봤다. 인용한 책들이 모두 고전이라니 그중에 내가 읽고 싶어지는 책이 있나, (혹시나) 메모해 둘 문장이라도 있나 싶어서 일단 끝까지 봤다. 그러나 남는 책도 없고, 남는 문장도 없었다. 혼자서만 달려가는 심각한 독립영화를 본 느낌이었다. 내가 수준이 딸려서 이해를 못 하는 건가 싶어 묘하게 기분도 나빴다.


어떻게 이런 책이 베스트셀러가 될 수가 있지?

서평도 엄청 좋던데, 그건 다 광고인가?


짜증을 내며 책을 탁! 덮는 순간, 쓸데없는 걱정이 스쳐갔다.

"나중에 내 책도 사람들이 읽고 이렇게 화내며 덮으면 어떡하지?"


글을 쓰고 난 이후로, 내 이름 찍힌 진짜 '종이책'의 작가가 되고 싶다는 소망이 생겼다.

그런데, '일단 '책'이라는 것을 내고 싶다'라는 욕망을 앞세우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 작가 됐다! 책 나왔다!" 자랑하기 위해서 배울 것 하나 없는 책을 내면서, 불쌍한 나무들을 없애는 양심 없는 환경파괴자가 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다.


나중에 내 책이 나왔을 때, (서점에 나의 책이 깔릴지도 의문이지만) 누군가 우연히 집어든 내 책을 욕하면서 내려놓는 일은 없도록 해야겠다. 사람들이 서평에 별 하나나 반개쯤 갈기면서 중고 서점에 팔러 가는 시간도 아까운 책이라는 악평을 남기는 책이라면, 그런 책은 세상에 탄생시켜서는 안 되겠다는 마음을 먹어본다. <프란츠 카프카>도 죽을 때, 원고를 태워버려라 하고 죽었는데, 내가 뭐라고 수준 미달의 책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내려고 한단 말인가?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귀가 닳도록 하는 말이 있다.

잘 짜인 연극 같은 수업보다 생활 연기 낭낭한 드라마 같은 수업이 더 좋을 수 있다고.

선생님이 한 번씩 실수도 하고, 그걸 지적도 하고, 같이 고민도 하는 수업도 괜찮을 수 있다고.

패드로만 보는 홀로그램 같은 1타 강사보다 학생이 피곤한 것도, 수학을 못하는 것도 알아주는 동네 공부방 선생님이 훨씬 좋은 선생님일 수 있다고.

미친 수학 천재 말고, 나보다 조금만 더 잘하는 사람에게 더 많이 배울 수도 있으니, 선생님 따지지 말고, 누구라도 나보다 나은 사람에게는 무엇이든 어떻게든 다 배우라고.


누구라도 나보다 나은 사람.

이 책을 쓴 작가도 나보다는 낫다.

책도 고 (심지어 여러권) 베스트셀러 작가.

나은 정도가 아니라 위인 수준이다. 나에 비하면.


1타 강사는 논리와 생각을 꽉 묶어놓고 멱살 잡고 빈틈없이 끌고 간다. 올바른 길로만.

의심의 여지가 없고 효율적이고 명확하다. 그냥 다 스펀지처럼 흡수만 하면 된다. 떠 먹여주는 대로.

그런데 수학은 똥판에서 굴려야 깨달을 수 있다. 본인이 머리 쥐어뜯으며 어려운 문제, 쉬운 문제 다 풀어보고 눈물, 콧물 다 흘려야 수학 머리가 트인다.


글도 이렇지 않을까?

나도 글똥판에서 더 굴러보자고 다짐한다.

1타 강사 뭐시기 따지지 말고, 누구에게든 뭐든지 배워야겠다.

다시 한번, 겸손을 장착한다.  많이 배우고, 더 진지하게 글을 써야겠다고 다짐한다.


내가 매일 하던 말처럼, 잘 짜인 연극 같은 훌륭한 책 보다, 빈틈 있는 책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이쯤 되면 베스트셀러가 된 이유가 있긴 있는 건지도.

이 책을 통해서 글쓰기의 자세를 배우고, 용기도 얻었다.

이것보다는 잘 쓸 자신 있다는? ㅋㅋ


Ein Buch muss die Axt sein für das gefrorene Meer in uns.
책이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가 되어야만 한다.     -프란츠 카프카

책은 도끼다.

어차피 나는 금도끼, 은도끼 만들기는 능력부족 같으니, 다이소에 파는 드라이버처럼, 작고 볼품은 없어도 누군가에게는 꼭 쓸모있는 도끼를 만들기만해도 행복하겠다.


작고, 쓸모있게 사부작 사부작.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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